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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WBC, 돌이켜 보면 위기가 아닌 때가 있었나

    '국민 감독, 또 다시 중책을...' 김인식 WBC 대표팀 감독은 2006년 1회와 2009년 2회에 이어 내년 3회 대회 사령탑을 맡았다. 사진은 2009년 2회 대회에 앞선 대표팀 출정식에서 김 감독이 출사표를 밝히는 모습.(자료사진=노컷뉴스)

     

    야구 국가 대항전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주축으로 뛰어야 할 선수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빠지게 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국 야구는 '국민 감독' 김인식 KBO 기술위원장을 사령탑으로 선임, WBC 준비에 돌입했다. 2006년 초대 대회 4강, 2009년 2회 대회 준우승을 이끈 명장 김 감독은 지난해 프리미어12 우승까지 일궈내며 기대감을 높였다. 더군다나 내년 대회는 A조 1라운드를 처음으로 한국에서 치른다.

    하지만 내년 WBC 대표팀은 구성에서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메이저리그(MLB) 정상급 마무리로 거듭난 오승환(세인트루이스)은 해외 도박 전력으로 여론이 좋지 않아 빠져 있고, 중심 타선으로 기대를 모은 강정호(피츠버그) 역시 음주 운전 사고로 역시 출전이 불투명해졌다. 간판 타자 김현수(볼티모어)는 내년 팀내 입지를 위해 WBC 대신 스프링캠프를 선택해야 한다는 현지 언론의 보도도 있었다.

    부상자들도 적지 않다. 왼손 에이스 김광현(SK)과 불펜 요원 이용찬(두산)은 팔꿈치 수술로 출전이 불가하고, 재간둥이 2루수 정근우(한화)도 지난달 무릎 수술로 출전을 장담할 수 없다. MLB 베테랑 추신수(텍사스)도 잦은 부상 전력 탓에 구단의 대회 출전 허락이 떨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김 감독을 비롯한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당초 김 감독은 지난 9월 취임 기자회견에서 논란이 불거진 오승환에 대해 "속죄하는 마음으로 대표팀에 뛰어야 하지 않겠나"라는 견해를 밝히며 발탁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기술위원회를 거치면서 오승환의 이름은 명단에서 빠졌다. 강정호의 음주 사건이 터지자 김 감독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은 미국 메이저리거 강정호(피츠버그)가 지난 6일 오후 서울 강남경찰서에 출석하는 모습.(자료사진=이한형 기자)

     

    하지만 지금까지 국제대회에 나선 야구 대표팀을 돌이켜 보면 위기가 아닌 때가 거의 없었던 게 사실이다. WBC만 해도 2006년 1회 대회를 빼면 최강의 전력을 구성하지 못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도 일부 선수들이 빠진 상황이었다. 지난해 프리미어12도 대표팀은 당시 삼성 소속이던 윤성환, 안지만, 임창용의 도박 스캔들 파문으로 전력에 누수가 있었다.

    그럼에도 대표팀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리며 한국 야구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렸다. 2009년 WBC에서는 3년 전 4강을 넘어 준우승이라는 쾌거를 달성했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9전 전승 금메달 신화를 썼다. 지난해 프리미어12에서는 압도적인 에이스 오타니 쇼헤이(니혼햄)가 버틴 일본을 넘어 우승을 차지했다.

    2006년 1회 WBC 대표팀은 그야말로 호화 멤버였다. 당시 MLB에서 뛰던 박찬호(샌디에이고), 김병현(콜로라도), 서재응(LA 다저스), 김선우(신시내티), 최희섭(보스턴) 등이 총출동했고, 일본을 정복한 이승엽(지바 롯데)과 이종범(KIA), 구대성(한화), 이병규(LG), 박진만(삼성) 등 국내파까지 신구 조화를 이뤘다. 이들은 일본, 미국 등을 연파하며 세계 4위라는 성과를 냈다.

    하지만 WBC 2회 대회 때는 전력이 다소 약화됐다는 평가였다. 1회 대회 투타의 핵심이던 박찬호(다저스)와 이승엽(요미우리)이 각각 소속팀 계약과 부상으로 빠졌다. 그 많던 메이저리거는 추신수(당시 클리블랜드)뿐이었고, 해외파도 임창용(야쿠르트)까지 2명뿐이었다. 김인식 감독도 뇌경색 여파로 온전치 않은 몸이었다. 그러나 봉중근(LG), 윤석민(KIA), 정현욱(삼성), 이범호(한화), 이용규(KIA) 등 국내파들의 맹활약으로 준우승의 값진 결실을 맺었다.

    '국민 노예' 2009 WBC 대회에서 당시 삼성 소속이던 정현욱이 역투하는 모습.(자료사진=삼성)

     

    이에 앞선 2008년 베이징올림픽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즌 중인 8월에 대회가 열리는 까닭에 메이저리거들은 오지 못했고, 해외파도 이승엽 1명뿐이었다. 전승 우승을 장담했던 일본과 아마 최강 쿠바, 종주국 미국과 험난한 승부를 해야 했다. 그러나 당시 김경문 감독이 이끈 대표팀은 이승엽을 비롯해 류현진(한화), 김광현(SK), 정대현(SK), 이대호(롯데), 김동주(두산) 등이 똘똘 뭉쳐 금메달을 수확해냈다.

    다만 대표팀은 지난 2013년 WBC 때는 1라운드 탈락이라는 쓴잔을 마셨다. 당시도 대표팀은 류현진(다저스), 김광현(SK), 봉중근(LG) 등 좌완 3인방이 빠졌고, 김진우(KIA), 홍상삼, 이용찬(이상 두산) 등이 부상으로 교체되는 등 정상 전력이 아니었다. 결국 대표팀은 복병 네덜란드에 덜미를 잡혀 2라운드 진출이 무산됐다.

    결국 2006 WBC 이후 주요한 국제대회 성적을 보면 대표팀 구성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강한 정신력과 대비를 갖추느냐가 성패를 좌우했는지를 알 수 있다. 사실 2013년 WBC 때는 이전 대회들의 값진 성과에 취해 선수단이 자칫 방심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1라운드쯤은 당연히 통과하겠지 라는 다소 안일한 생각이 탈락이라는 뼈아픈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대회 성적에 따른 당근이 컸다. 1회 WBC는 전 세계 메이저리거들이 총출동하는 첫 국제대회라는 점에서 기대가 컸고, 대표팀 전력도 최상으로 짤 수 있었다. 이후 4강 성적을 내자 병역 혜택이라는 예상치 못한 선물도 받았다. 2008 베이징올림픽은 당연히 병역 혜택이 걸려 있었고, 2009년 WBC 대회는 이런 전례로 병역 혜택에 대한 선수들의 기대감이 컸다.

    2006년 WBC 대회에서 이종범이 일본과 2라운드 경기에서 결승타를 때려낸 뒤 환호하는 모습.(자료사진)

     

    하지만 다른 종목들과 형평성을 들어 올림픽, 아시안게임 이외의 대회에 병역 혜택은 더 이상 주어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런 점이 2013 WBC 대회 실패의 한 원인으로 꼽기도 했다. 선수들에게 특별히 동기 부여가 될 만한 당근이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국제대회 출전 후유증으로 부상을 입는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대회 출전에 대한 열정을 저해하는 요소라는 지적도 있었다. 모 구단 감독은 "사실 부상의 위험이 크기 때문에 WBC 출전은 선수들에게 자칫 독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다만 지난해 프리미어12에서 보듯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대표팀은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점을 다시 입증했다. 당초 개최국 일본에 밀릴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지만 끈끈한 팀 워크로 4강에서 숙적 일본에 대역전극을 이뤄내며 우승까지 달성했다.

    이런 점을 보면 오히려 위기, 전력 열세라는 평가가 나올 때 한국 야구는 더 큰 힘을 발휘할 때가 많았다. 2008 베이징올림픽, 2009 WBC 선수단장을 역임한 고(故) 하일성 전 KBO 사무총장은 생전 "한국 야구는 저변에서 미국, 일본 등에 뒤지는 게 사실이지만 대표급 선수들만 본다면 결코 밀리지 않는다"면서 "여기에 태극마크를 달면 선수들이 실력을 120% 발휘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내년 WBC 역시 이런저런 이유들로 벌써부터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다. 물론 2013년 WBC처럼 대표팀 전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 1, 2회 대회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숱한 위기를 극복해온 한국 야구의 저력을 입증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중요한 것은 대표팀에 대한 뜨거운 응원과 관심, 여기에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이다. 태극마크에 대한 선수단의 자부심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돌이켜 보면 WBC 등 국제대회에서 한국 야구의 위기가 아닌 때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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