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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신 퇴장…한국야구 '3김 시대'의 완전한 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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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신 퇴장…한국야구 '3김 시대'의 완전한 종언

    '역사에 저물다' 30년 넘게 한 시대를 풍미하며 한국 야구를 이끌어왔던 명장들의 이른바 '삼김 시대'가 막을 내렸다. 지난 3월 김인식 감독(왼쪽부터)에 이어 23일 김성근 감독이 물러나면서 2014시즌 뒤 사령탑 인생을 마무리한 김응용 감독의 뒤를 이었다.(자료사진=노컷뉴스, 한화)

     

    야신(野神)의 시대가 저물었다. 더불어 프로야구 초창기부터 30년을 넘게 이어온 이른바 '삼김(三金) 시대'도 완전한 종언을 고했다. 한국 야구 역사의 거대한 족적을 남겼던 3명의 김 감독들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서게 됐다.

    한화는 23일 밤 "김성근 감독의 사의 표명을 수용하기로 하고 이상군 투수코치를 감독 대행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이어 "김 감독은 지난 21일 삼성과 홈 경기 뒤 일부 퓨처스 선수들의 대전 훈련을 계획했으나 이에 대한 우려를 밝힌 구단 측에 구두로 사의를 표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따라 김 감독은 올 시즌까지인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지휘봉을 내려놓게 됐다. 2014시즌 뒤 김 감독은 계약금과 연봉 5억 원씩 총 20억 원에 한화와 3년 계약을 맺었다.

    당초 김 감독은 지난 시즌 뒤 경질 가능성에 제기됐다. 거액을 들여 FA(자유계약선수)와 현역 메이저리거 외인 등을 영입했지만 2년 연속 가을야구에 나서지 못한 성적표와 혹사 논란으로 대표되는 김 감독의 무리한 경기 운용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일단 구단은 김 감독이 임기를 마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시즌에 돌입했다. 그러나 지난해 김 감독의 유임과 동시에 박종훈 선수단장이 선임되면서 갈등의 씨앗이 뿌려졌다. 한화는 김 감독은 1군 운영에만 집중하게 하고, 선수단 관리와 육성은 박 단장이 맡는 이원화 정책을 공표했다. 김 감독의 권한이 축소된 것이었다.

    이에 선수단 전체를 장악하는 스타일의 김 감독은 스프링캠프 때부터 여러 차례 박 단장과 충돌했다. 시즌 개막 뒤에도 김 감독은 지난 2년처럼 2군 선수를 불러 직접 테스트하려고 했지만 박 단장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번 사퇴의 배경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야구사에 거대한 족적 '三金'

    이번 사퇴는 사실상 김 감독의 KBO 사령탑 인생의 마지막일 가능성이 높다. 75세의 고령인 데다 한화에서 성적이 좋지 않아 향후 다른 구단이 불러줄 확률은 지극히 낮다. 여기에 또 다시 구단과 대립각을 세운 끝에 물러난 모양새도 다른 구단이 부담을 가질 만한 부분이다.

    김 감독의 퇴장으로 KBO 리그 초창기부터 한국 야구를 이끌어온 김 씨 성(姓)의 명장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김 감독에 앞서 지난 3월 김인식 국가대표 감독(70)이 사령탑 은퇴를 선언했고, 한국시리즈(KS) 10회 우승에 빛나는 김응용 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76)도 2014시즌 한화를 마지막으로 감독직을 내려놨다.

    이들 3명의 김 감독들은 한국 야구 역사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들이다. KBO 리그를 주름잡은 것은 물론 국제대회에서도 한국 야구의 위상을 드높인 명장들이다.

    먼저 김 회장은 1980~90년대 최강 해태(현 KIA)를 9번의 KS 우승으로 이끌었고, 2002년 삼성의 창단 첫 KS 우승 비원도 풀었다. 2004년 말 삼성에서 역대 최초로 감독 출신 구단 사장이 된 김 감독은 통합 우승 4연패, 정규리그 5연패의 발판을 놨다. 역대 KBO 최다승 감독(1567승)에 빛나는 김 회장은 지난해는 야구협회장으로 선출돼 한국 야구의 근간이 될 아마추어 육성에 힘쓰고 있다.

    '삼김의 리즈 시절' 2009년 WBC 대표팀을 맡은 김인식 감독(왼쪽)과 2008년 SK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김성근 감독, 2002년 삼성의 창단 첫 우승을 견인한 김응용 감독의 모습.(자료사진=노컷뉴스, 삼성)

     

    김인식 감독도 두산에서 두 번의 KS 우승을 이끌었다. 1995년 OB 시절 첫 정상에 오른 김 감독은 2001년에는 공교롭게도 김 회장의 삼성을 KS에서 꺾었다. 김 감독은 1986년부터 89년까지 해태 수석코치를 맡아 김 회장을 보필해 4연속 KS 우승을 합작한 바 있다. 김 감독은 특히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과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2009년 WBC 준우승, 2015년 프리미어12 우승 등 국제대회에서 값진 성적을 거둬 '국민 감독'으로 칭송받았다.

    김성근 감독은 1984년 OB를 시작으로 태평양, 삼성, 쌍방울 사령탑을 거쳤다. LG를 맡은 2002년에는 김 회장의 삼성과 KS에서 접전을 펼쳤다. 비록 2승4패로 우승컵을 내줬지만 치밀한 작전과 계산으로 김 회장으로부터 "야구의 신과 경기하는 것 같았다"는 칭찬을 받았다. 야신의 별명이 생긴 계기였다.

    이후 김 감독은 한동안 야인으로 머물다 2007년 SK 지휘봉을 잡았다. 이때부터 김 감독의 사령탑 인생이 꽃을 피웠다. 그해 김 감독은 개인은 물론 SK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고, 이듬해 2연패를 달성했다. 2009년 KIA에 밀렸지만 2010년 다시 KS 정상에 올라 야신의 명성을 확인했다.

    ▲한화는 김 감독들의 무덤인가

    이들 삼김 감독들은 공교롭게도 한화에서 프로 사령탑 경력을 마무리한 공통점이 있다. 때문에 한화는 명장들의 무덤이라는 영광스럽지 못한 별명이 붙었다.

    가장 먼저 한화에서 프로 경력을 마감한 감독은 삼김 중 가장 막내인 김인식 감독이다. 김 감독은 2005년부터 한화를 맡아 나름 성과를 냈다. 그해 정규리그 4위로 준플레이오프(PO)에서 SK를 꺾고 PO까지 진출했다. 이듬해는 정규리그 3위로 KS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2007년에도 정규리그 3위로 PO에 나섰다.

    하지만 2008년과 09년 연속 가을야구에서 소외됐다. 특히 2009년에는 뇌경색 후유증에도 김 감독은 WBC 준우승을 성과를 거뒀지만 정작 팀은 최하위에 머물렀다. 결국 시즌 막판 김 감독은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한화에서 성적은 삼김 중 가장 나았던 김 감독이었다. 그러나 이후 KBO 팀들의 부름은 받지 못했고, 2015 프리미어12 등 국가대표 감독으로 활동했으나 올해로 그마저도 마지막이 됐다.

    그 뒤를 이은 김 감독은 김 회장이다. 김 회장은 2013년 무려 9년 만에 KBO 사령탑으로 복귀했다. 한화도 KS 10회 우승에 빛나는 김 회장의 경력을 믿었다. 그러나 2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며 재계약에 실패했다. 화려했던 해태, 삼성 시절을 감안하면 김 회장의 감독 말년은 상대적으로 불우했던 셈이다.

    '한화는 삼김의 무덤?' 김인식(왼쪽부터), 김성근, 김응용 감독은 KBO 리그에서 마지막으로 지휘봉을 잡은 팀이 한화라는 공통점이 있다. 마지막 시즌 모두 하위권에 머물며 시즌 중 사퇴하거나 재계약이 무산됐다.(자료사진=노컷뉴스, 한화)

     

    이어 '독수리 군단'의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이 야신이다. SK에서 물러난 이후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를 이끌며 야인으로 지냈던 김성근 감독은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 속에 그룹 최고위층의 지시로 발탁됐다. 성과도 있었다. 2015년 끈질긴 야구로 만년 꼴찌팀 한화에 새 바람을 불어넣으며 '마리한화'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양날의 검이었다. 매 경기 KS와 같은 총력전을 펼치면서 선수들이 버텨내지 못했다. 필승 계투진은 하루가 멀다 하고 등판하는 통에 수술대에 오르거나 나가 떨어졌다. 야신에 대한 부담감에 김 감독이 조급해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2년 동안 6, 7위에 머문 한화는 김 감독에 줬던 전권을 제한하면서 신뢰를 거뒀고,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다.

    그러고 보니 삼김 시대 이전에도 이글스를 이끌었던 명장 김 감독은 또 있었다. 바로 한화 이전 빙그레 시절 전성기를 이끈 김영덕 전 감독(81)이다. 김 감독은 1987년부터 1993년까지 빙그레를 맡아 오렌지 돌풍을 일으켰다. 1988년부터 5시즌 동안 4번 KS에 진출했다. 그러나 해태에 3번, 롯데에 1번 우승컵을 내줬고, 1993시즌 뒤 물러났다. 이후 LG 2군 감독을 맡았지만 KBO 1군 무대에 나서지는 못했다.

    '삼김 시대'의 종언은 KBO 리그 초창기 감독군의 퇴장을 의미한다. 이제 KBO 최고령 사령탑은 김경문 NC(59) 감독이다. 트레이 힐만 SK 감독을 제외하고는 프로 초창기 혹은 그 이후 선수로 뛰다가 지휘봉을 잡은 세대들이 KBO 감독들이다. 어쩌면 '김 감독'들의 퇴장은 시대적 요구인지도 모르겠다. '삼김 시대'의 종언에 따라 새로운 KBO 리그 시대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도 팬들의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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