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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본 역사학자 "이 장면 왜 안 썼는지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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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산성' 본 역사학자 "이 장면 왜 안 썼는지 의문"

    영화 '남한산성'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역사학자인 주진오 상명대 교수가 영화 '남한산성'을 본 뒤 "역사학자인 제가 느꼈던, 그동안 언급되지 않았던 아쉬움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다"며 감상평을 전했다.

    주진오 교수는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어제 영화 '남한산성'을 보고 나오면서 묘한 심정이 들었습니다"라며 글을 이었다.

    "영상도 아름답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어요. 영화의 완성도도 높았다고 생각해서, 되도록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그런데 평소 고증만이 아니라 역사적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온 역사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의문이 머리에 가득차 마음이 무거웠어요."

    영화 '남한산성'은 조선 인조 14년(1636)에 청나라가 침입한 '병자호란'을 다뤘다. 당시 청나라에서 군신(君臣) 관계를 요구한 것을 조선이 거부하자, 청태종은 20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했다. 이에 남한산성으로 몸을 피했던 인조는 결국 45일 만에 항복하고 청나라에 대해 신하의 예를 행하기로 한 굴욕적인 화약을 맺었다. 특히 50만 명에 달하는 조선인이 청나라에 포로로 끌려가 노비로 전락했다.

    지난 3일 개봉한 이 영화는 7일까지 5일 만에 누적관객수 263만 2158명을 기록하며 대목으로 꼽히는 추석 연휴 극장가에서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

    주 교수는 "사실 병자호란은 임진왜란과 함께, 외세에 의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던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며 "하지만 그래도 적을 몰아냈던 임진왜란과 달리, 병자호란은 가장 처절하고 치욕적인 패배였지요"라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다시 떠올리기 싫은 역사였고, 그에 따라 그동안 콘텐츠의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살려낸 것이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의 '역사평설 병자호란' 두 권과, 이 영화의 원작인 김훈 작가의 소설 '남한산성'이었습니다. 그밖에도 한 교수의 학술서적인 '정묘, 병자호란과 동아시아'도 추천해 드립니다. 한 교수의 두 책은 모두 푸른역사에서 나왔어요."

    ◇ "최명길, 난세에 항상 현실 직시하고 균형 있는 태도 취해"

     

    영화 '남한산성'이 척화파(적이나 상대와 화친하는 것을 거부하는 파) 김상헌(김윤석 분)과 주화파(전쟁을 피하고 화해하거나 평화롭게 지내자고 주장하는 파) 최명길(이병헌 분)의 논쟁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 만큼, 주 교수는 역사학자로서 이 부분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을 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첫째, 기록에 보면 최명길이 쓴 항복문서를 김상헌이 찢어 버리자 (최명길이) 이를 다시 주워모았다고 나옵니다. 그러면서 '조정에 이 문서를 찢어 버리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나처럼 주워 모으는 자도 있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고 하지요. 이 장면이 들어갔으면 아마도 명장면으로 남지 않았을까요? 다른 부분에서는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왜 이렇게 실제로 널리 알려진 기록을 쓰지 않았는지 의문입니다."

    그는 "둘째, 김상헌이 자결한 것으로 나오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있습니다. 사실은 자결하려는 시도만 했지요"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에 대해 최명길은 당시, 자결하려면서 사람들 앞에서 시도하는 것은 말려달라는 것밖에 안된다고 냉소를 보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김상헌이 주전론을 주장했던 홍익한, 오달제, 윤집처럼 청군 진영으로 넘겨진 것도 아니었지요. 그들은 심양까지 끌려가 처형을 당했습니다. 이들에 대해서도 영화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어요. 김상헌이 심양으로 끌려 간 것은 그보다 3년 후의 일이었습니다."

    이어 "셋째, 영화에서는 최명길 혼자서 외롭게 항복을 주장하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남한산성 내의 군인들은 항복을 주장하면서, 주전론자들에게 압박을 가했어요"라며 "그것이 당시의 민심이었고, 이 부분은 원작에도 나옵니다. 저는 오히려 이런 부분이 영화에 반영되었으면 더욱 더 리얼리티를 살릴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적었다.

    주 교수는 최명길이라는 인물을 설명하는 데도 중점을 뒀다.

    "넷째, 최명길은 단순히 주화론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강화도 가는 길이 막혀 할 수 없이 남한산성으로 인조 일행이 피신할 때, 홀로 청군의 지휘관 마부대 진영을 찾아가 항의담판을 함으로서 피신할 시간을 벌어준 사람입니다"라고 전했다.

    "물론 영화의 목표가 최명길과 김상헌의 대립을 극대화시키는 데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필요하지 않은 내용은 생략하거나 상상력으로 바꾸어 놓았지요. 위에 지적한 것들은 반영했더라도 감독의 의도에 지장이 없었을 내용만 적어 본 것입니다. 그밖에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할 이야기는 더 많습니다만 이 정도로 하지요."

    주 교수는 "저는 그동안 조선의 역사에서 본 인물 가운데 최명길을 가장 높이 평가해 왔습니다"라며 "그는 난세에 항상 현실을 직시하고 균형 있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지요. 그의 목표는 현실적으로 약소국인 조선의 생존을 찾는 것이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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