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의 올림픽은 끝났나' 2011년 러시아로 귀화한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가 2018 평창동계올림픽 출전을 위해 CAS에 긴급 제소까지 했지만 물리적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다. 사진은 지난해 한체대 빙상장에서 러시아팀과 훈련을 하는 모습. 이한형 기자
쇼트트랙 황제 빅토르 안(33 · 한국명 안현수)은 과연 옛 조국에서 열리는 올림픽 무대를 밟을 수 있을까.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결정을 번복해달라고 긴급제소를 했지만 되돌릴 시간이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스위스 로잔 본부의 CAS는 6일 "32명의 러시아 선수들이 IOC의 결정과 관련해 긴급 제소를 해옴에 따라 CAS 특별 임시본부가 중재 절차를 시작했다"는 설명을 발표했다. 32명 안에는 빅토르 안을 비롯해 바이애슬론 안톤 시풀린, 스드스케이팅 루슬란 무라쇼프 등이 포함돼 있다.
CAS는 "이들을 평창동계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도록 한 IOC의 결정에 대한 것"이라면서 "선수들은 CAS가 IOC의 결정을 뒤집고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AR)로 올림픽 출전을 허용해달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어 "오는 7일 이와 관련한 심리를 진행한다며 가능한 한 빨리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IOC는 러시아의 평창올림픽 참가 희망 선수 500명 명단 중 빅토르 안을 비롯한 111명을 제외했다. 국가 주도의 도핑 조작 파문을 밝힌 '맥라렌 보고서'에 따라 금지약물 복용 의혹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대해 빅토르 안은 결백을 주장하며 IOC에 공개 서한을 보내는 등 반발했다. 그러나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방한한 자리에서 "러시아 선수들의 개인 정보를 취합한 결과 약물 이력에서 깨끗한 선수 169명이 올림픽에 초대를 받았다"면서 반발을 일축했다. 이런 상황에서 빅토르 안 등 러시아 선수들이 긴급 제소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2011년 러시아로 귀화한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가 지난해 한체대 빙상장에서 진행된 훈련에서 러시아 대표팀 코치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이한형 기자
하지만 물리적인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평창올림픽 쇼트트랙 엔트리 제출은 사실상 마감된 상황이다. 대한빙상경기연맹에 따르면 국제빙상연맹(ISU)는 6일 출전국 팀 리더 미팅을 열고 부상자가 나올 경우를 대비한 교체 명단(Late replacement)까지 제출을 마감했다.
부상자가 나오더라도 이 명단 안에서 교체가 이뤄져야 하는데 여기에 이름이 없다면 출전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연맹에 따르면 ISU 관계자가 "오늘 명단이 마감되면 더는 엔트리 교체가 없다"고 못박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빙상계 인사는 "보통 대회 개막 2일 전에 예선 조 배정이 이뤄지는데 그때까지 명단에 이름이 오르지 못하면 출전은 불가능하다"고 귀띔했다. 연맹 관계자는 "보통 예선 조 배정은 경기 전날 하지만 사실상 부상자 교체 명단에도 없다면 출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설명했다.
CAS는 7일에야 특별 임시본부가 중재에 들어간다. 이날 판결이 나오더라도 이미 명단 체출은 6일 마감된 상황이 된다. IOC가 특별 조치를 내리지 않는 한 빅토르 안 등의 출전은 불가능하다.
CAS의 번복 판결이 나와도 IOC가 따를 가능성은 극히 떨어진다. IOC는 이미 전날 CAS로부터 징계 무효 판결을 받은 러시아 선수와 코치 15명에 대해 평창올림픽 참가 불허 방침을 밝혔다. CAS의 판결에도 기존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뒤늦게 CAS에 제소한 러시아 선수들의 목소리를 IOC가 들어줄 확률은 거의 없다.
AP통신은 CAS에 긴급제소한 32명의 선수 중 일부가 평창올림픽 출전이 극적으로 허용될 경우를 대비해 이미 일본 등 주변국에 있다고 전했다. 빅토르 안도 그 중에 포함됐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2006년 토리노,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3관왕에 오른 빅토르 안의 화려한 마무리는 이뤄지지 않을 공산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