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노컷뉴스)
농구 경기에서는 불문율이 있다. 점수차가 크게 벌어져 더 이상 승부가 의미없는 막판 시간대에는 서로가 상대를 자극하지 않는다. 특히 큰 점수차로 앞서있는 팀이 조심한다. 공격 의사를 보이지 않고 경기를 끝내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런데 불문율은 어디까지나 불문율이다. 공식적인 룰이 아니다.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다. 이 때문에 서로 오해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집단 난투극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22일(한국시간) 미국 캔자스주 로렌스 앨런 필드하우스에서 열린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남자농구 1부리그 캔자스 대학과 캔자스 주립 대학의 경기 막판에 양팀 선수들이 이른바 '벤치 클리어링'을 벌였다.
대학 랭킹 3위에 올라있는 강호 캔자스대가 81대59로 크게 앞선 후반 종료 4.6초를 남기고 사건의 발단이 터졌다.
캔자스대의 실비오 드 수자는 코트 중앙선을 넘어와 자세를 낮췄다. 공격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는 팀의 '불문율'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그 순간 캔자스 주립대의 다후안 고든이 드 수자를 강하게 압박해 공을 가로챘다. 그대로 질주해 골밑 레이업을 시도했다.
드 수자는 고든의 막판 스틸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끝까지 쫓아가 슛을 블록했고 슛 시도 이후 넘어진 고든을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양팀 선수들의 감정 다툼이 시작됐다. 선수끼리 뒤엉켰고 이는 집단 난투극으로 번졌다. 벤치에 있는 선수들이 대거 가담했다. 선을 넘은 선수도 있었다. 드 수자는 두 손으로 의자를 집어들었다. 주위 관계자의 제지로 간신히 최악의 사태를 피할 수 있었다.
드 수자가 감정적으로 대응한 이유를 알려지지 않았다. 경기 후 미국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없이 경기장을 나갔다.
추측은 가능하다. 팀이 크게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공격 의사를 포기하고 그대로 경기가 종료되기를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정상적인 플레이로 대응하자 기분이 나빴던 것으로 보인다.
브루스 웨버 캔자스 주립대 감독은 경기 후 현지 언론을 통해 "모두 나의 잘못"이라며 마지막 순간 선수들에게 수비 압박을 하지 말고 물러서라고 더 확실히 지시했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드 수자는 아마도 상대가 불문율을 깼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공격 의사를 먼저 포기한 상황에서 상대가 아무리 큰 점수차로 지고 있더라도 정상적인 플레이로 맞선 것은 매너가 아니라고 여겼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자신도 정상적인 플레이로 맞서 블록슛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집단 난투극에 불을 지핀 드 수자의 행동은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의자를 집어든 행동과 관련해 중징계가 나올 수도 있다고 미국 현지 언론은 전망한다.
농구 경기에서 불문율과 관련된 오해와 감정 다툼은 종종 일어난다.
KBL에서도 최근 이슈가 있었다. 원주 DB 가드 두경민은 지난 15일 서울 SK와의 홈경기에서 팀이 9점차로 앞서 물리적으로 역전이 불가능한 경기 마지막 순간 3점슛을 던졌고 성공시켰다. 슛이 들어가자 두경민은 두 팔을 벌리고 세리머리를 했다.
이날 경기는 두경민의 군 제대 후 첫 홈경기. 세리머니가 나올만 했다. 그러나 마지막 3점슛을 두고 일부 SK 선수들이 불만을 나타냈다. 이미 승부가 끝난 상황에서 굳이 슛을 던졌어야 했냐는 의미로 보였다.
그러나 슛을 던지라고 지시한 것은 DB 벤치였다. SK와 DB 모두 상위권 팀으로 정규리그 종료시 승률과 상대 전적이 같을 경우 맞대결 득실점 차이로 순위를 가려야 한다. 따라서 DB 벤치는 1점이라도 더 넣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SK는 순간 상대가 불문율을 어겼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SK도 지난 10일 같은 이유로 전주 KCC를 상대로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KCC와 승률이 같아질 경우를 대비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불문율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게 갈린다. SK와 DB는 경기 후 서로 오해를 푼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