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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성범죄' 잡으려면 '국제공조' 필요한데…"7년째 논의중"

사건/사고

    '디지털성범죄' 잡으려면 '국제공조' 필요한데…"7년째 논의중"

    • 2020-06-26 05:00

    [조주빈 검거 100일, 우리 사회 달라졌나④]
    '웰컴투비디오' 검거에서 빛났던 '국제공조'
    교묘해지는 디지털성범죄 잡으려면 필수
    국제 조약 존재하지만…"7년째 부처간 조율"
    "법으로 잠입수사관 신변 보호해야" 목소리도

    '박사' 조주빈이 검거된 지 100일이 넘었다. 온라인에서 은밀히 자행되던 성착취 범죄에 경악한 우리 사회는 이후 숱한 대책을 쏟아냈지만 '실제' 변화가 있었는지 묻는 다면 확신에 찬 답은 어려워 보인다. CBS노컷뉴스는 연속 기획으로 '디지털 성범죄'의 현 상황을 점검하고, 이를 뿌리 뽑기 위한 앞으로의 과제를 짚어봤다.[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박사' 조주빈 검거 100일…달라진 檢警, 그러나 여전한 법원
    ②야한 채팅할 사람…미성년자 일상 파고드는 그루밍
    ③텔레그램 못 잡는 'n번방 방지법'이 n번방 방지할까?
    ④'디지털성범죄' 잡으려면 '국제공조' 필요한데…"7년째 논의중"
    (계속)

    (사진=연합뉴스)

     

    ◇국경 넘나드는 디지털 성범죄…국제공조는 선택 아닌 '필수'

    2018년 2월 28일. 미국 연방법원 판사는 태평양 건너 한국 충청남도 당진시에 거주 중인 손정우(23)를 상대로 구속영장을 발부한다. 같은 해 5월 우리나라 경찰은 손정우 검거에 성공한다. 추적이 어려운 '다크웹'에 숨어 수년간 전 세계인을 상대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공유해 온 '웰컴 투 비디오(W2V)'의 운영자가 붙잡힌 순간이다.

    드러난 범죄 행각은 충격적이었다. 2015년부터 W2V를 운영한 손정우는 영상 업로드 페이지에 "성인 포르노는 올리지 말 것"이라는 안내 문구를 넣었을 정도로 오로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만 집중적으로 유통했다. 국내 경찰에 파악된 동영상만 약 22만건으로, 영상에 나오는 피해자는 신생아까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계 회원 규모는 무료회원 약 120만명, 유료회원 약 3천명 정도인 것으로 드러났다.

    '손정우 검거'는 국제공조가 빛난 사례로 꼽힌다. 당시 우리나라 경찰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국세청(IRS)·연방검찰청, 영국 국가범죄청(NCA)과의 공조수사로 본 사건을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후 독일 연방경찰청 등을 포함한 32개 국가의 수사 기관이 공조해 W2V 유료회원 310명을 검거했다. 이 중 한국인은 223명으로 전체의 72%에 달했다.

    나날이 진화하는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뽑기 위해 오늘날 '국제공조'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성착취물 공유 사이트가 해외에 서버를 둔 경우, 우리나라 수사기관이 이를 직접 수사할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갈수록 접속한 IP주소와 가입자 추적이 어려운 해외 메신저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도 문제다.

    (사진=연합뉴스)

     

    ◇"7년째 관계 부처 조율중"…그동안 소라넷→n번방 진화

    디지털 범죄와 관련해 국제공조 수사의 필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지만 정작 이를 위한 '다자간' 국제 조약에 우리나라는 아직 가입하지 않은 상황이다. 지금껏 국제공조 수사는 사건에 따라 해당 국가에 개별적으로 요청하는 데 그쳤다.

    현재 우리나라 국제공조 수사는 대부분 '국제형사경찰기구'(ICPO·인터폴)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성범죄에 관해서는 '소라넷', '텔레그램' 등 이슈화가 된 사건에 한해 단발적으로 공조를 요청해 왔다. 일반 외교 채널을 통한 공조보다는 빠르고 효율적이지만 갈수록 복잡하고 교묘해지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수사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이다.

    이 때문에 하루빨리 '사이버범죄조약'(the Convention on Cybercrime)에 가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01년 11월 23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사이버범죄 국제회의에서 출발해 '부다페스트조약'이라고도 불리는 해당 조약은 컴퓨터 시스템이나 데이터에 대한 불법 접속(DDos 공격 및 해킹), 지적재산권 침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유포 등 인터넷에서 발생하는 여러 행위를 범죄로 규정한다

    이 조약에 가입한 국가들은 '핫라인'을 설치해 디지털 범죄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있다. 범죄가 발생한 경우 서로 트래픽·데이터 자료 협조와 신속한 자료보존, 긴급상황 시 도움 등을 요청할 수 있다. 국제 공조수사를 위한 규정과 절차도 마련돼 있다. 현재 미국과 독일, 영국, 일본 등 65개국이 가입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부는 '7년째' 논의만 하고 있다. 아직 단 한 차례도 가입서 제출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작년에는 수시로 정부 부처 간 합동 회의를 열었는데 아직 조율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라며 "'가입하자'라는 최종 결론도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각 정부부처 간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조약 수준에 맞도록 국내법이 개정돼야 하는데 일부에서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국내 입법 수준이 현재 부다페스트 협약이 원하는 것에 이르지 않았다"면서 "다양한 부처의 다양한 법이 얽혀 있다"고 말했다.

    정부 부처끼리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사이 디지털 성범죄는 '소라넷'(2016년), 'AVSNOOP'(2017년), '웰컴투비디오'(2018년), 'n번방'(2019년)으로 진화해왔다.

    (사진=연합뉴스)

     

    ◇디지털 성범죄 갈수록 '폐쇄적'…"잠입 수사관 신변 보호 법제화"

    손정우 검거에 빛을 발한 것은 '국제 공조' 이외에도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잠입수사'다. 미국 연방수사관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구매자로 위장해 손정우에게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사이트에 있는 가상화폐 지갑에 여러 차례 돈을 넣으면서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추적했고, 결국 한국에 있는 손정우의 IP주소를 특정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이미 현장에서 '잠입수사'가 이뤄지고 있다. 잠입수사는 말 그대로 수사관이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거나 몰래 숨어들어 수사하는 방식을 말한다. 크게 '범의유발형'과 '기회제공형'으로 나뉘는데, 법적으로 허용되는 것은 '기회제공형'이다.

    '범의유발형'은 범의(범죄를 저지를 의도)가 없는 사람에게 범죄를 저지르도록 유인하는 수사방식을 말한다.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예로 들면 경찰이 성착취물 판매 사이트를 만들어 둔 뒤 접속하는 사람들을 모두 검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애초 해당 사이트가 없었다면 범의가 생기지 않았을 수도 있으므로 이를 활용한 수사는 불법이다.

    반면 '기회제공형'은 경찰이 성착취물 판매자에게 접근해 돈을 주고 이를 구매함으로써 범죄를 완성하도록 만드는 것을 말한다. 이런 수사방식은 이미 '성착취물을 판매하겠다'는 범의가 존재하는 사람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합법이다.

    하지만 문제는 경찰이 '기회제공형' 수사를 하더라도 상대가 '함정 수사에 당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데 있다. 이런 경우 우리나라는 '판례'에 의해 해당 수사가 기회제공형인지, 범의유발형인지 나누고 위법 여부를 판단한다. 판사 손에 수사 경찰의 운명이 달려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경찰은 명확한 법제화를 통해 수사관의 신변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판례'나 '위법성 조각 사유' 등을 통한 수사관 신변 보호는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법률로써 잠입수사를 보장하지 않으면 범죄자들이 수사관을 고소·고발하는 등 악용할 수 있다"면서 "그러면 결국 검찰과 법정에 의해 수사관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건데 이를 감수하면서 잠입수사에 나설 경찰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n번방 사건처럼 경찰이 잠입수사 과정에서 성착취물을 구매하는 등 범법 행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며 "수사한 경찰관이 처벌받지 않도록 이에 대한 법제화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경찰은 잠입수사를 법으로 명문화한다면 그 자체로 범죄심리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도 보고 있다.

    ◇성범죄 피해자 중 '5세 이하'만 1년에 36명…"아동·청소년 보호 우선시해야"

    올해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이 발행한 '성범죄백서'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성범죄 피해자 중 19세 미만은 2만3367명(31.2%)이다. 이 중 피해자가 '5세 이하'인 경우는 360명(0.5%)이다. 1년에 '5세 이하' 아동 36명이 성범죄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 시스템이 '아동·청소년'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한국사이버보안협회 김현걸 이사장은 "사이버 성범죄와 관련해 수사기관과 협조하며 증거수집부터 검거까지 지켜본 결과, 가장 어려운 점은 해외나 국내에서 서버를 빌려 활동하는 이들을 추적하는 것이었다"면서 "수사기관이 서버에 영장을 청구해 자료를 받다 보면 이미 자료를 지우는 등 늦은 경우가 많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버를 빌려주는 업체에서 자체적으로 이들을 검열한다면 어느 정도 디지털 성범죄를 줄일 수 있을 거라고 봤다. 하지만 이건 또 정보통신망법이나 개인정보보호법에 저촉되더라"면서 "최소 피해자가 미성년자임이 드러난 경우만이라도 서버 임대 업자가 의무적으로 서버를 들여다보게끔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부 개인정보 침해를 감수하더라도 아동·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 또한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아동 보호는 우선되기 어려웠다"면서 "아동들은 유권자가 아닌 반면, 여러 업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입법 로비를 해왔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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