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합니다. 공장에서, 사무실에서, 거리에서, 가정에서 오늘도 일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쉼없이 조금씩 세상을 바꾸는 모든 노동자에게, 일터를 찾은 나와 당신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판깔아봅니다. [편집자 주]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CJ대한통운 강남2지사 터미널 택배분류 작업장에서 택배기사들이 택배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사진=윤창원 기자)
올해 9명의 택배기사가 과로사한 가운데, 이러한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대책을 정부가 3년 전에 이미 발표한 것으로 확인됐다. 관계부처들이 전담 '태스크포스'(TF)까지 꾸려 이를 추진하겠다고 대대적으로 밝혔지만, 법 개정·제정으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모두 무산됐다.
정부가 대책을 다 내놓고도 택배회사의 반대와 입법 미비 등을 핑계로 손을 놓고 있는 사이 3년 동안 14명의 택배기사가 현장에서 스러졌다. 전문가들은 "법이 없다고 손 놓고 있을 것이 아니라 정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행정조치를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3년 전 국토부 '택배서비스 발전방안' 발표…과로사 막을 대책 '총망라'
지난 19일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열린 한진택배 규탄 기자회견에서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숨진 택배노동자를 위한 묵상을 하고 있다.(사진=이한형 기자)
23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2017년 11월 국토교통부는 택배기사 근로계약서·산재보험 확대 등 처우 개선 대책이 담긴 '택배서비스 발전방안'을 발표했다. 그 해에만 택배기사 4명이 과로사로 숨지자 정부가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당시 국토부는 "택배기사에게 일반 근로자와 유사한 초과근무 수당과 휴가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근로 조건을 기입한 표준계약서를 마련할 것"이라며 "택배기사의 산재보험 가입을 확대하기 위해 산재보험 적용제외 사유를 질병 등 불가피한 사유로 제한한다"고 밝혔다.
이어 "소비자는 온라인 쇼핑업체에게 2500원의 택배요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실제 택배회사에 지불되는 택배요금은 평균 1730원"이라며 "택배회사가 실제로 받는 요금을 소비자가 알 수 있도록 '택배요금 신고제'도 도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택배 종사자의 노동 강도는 현재보다 수월해지고 막힘없는 택배 서비스가 소비자에게 제공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개선대책의 시행 및 모니터링을 위해 관계기관 합동 전담팀(TF)을 구성·운영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국토교통부 제공)
이는 모두 택배노동자들이 과로사를 방지하기 위해 오랫동안 요구해 왔던 내용들이다. 특히 택배기사는 산업재해에 쉽게 노출되지만, 택배사 강요로 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택배요금 신고제 또한 과로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 대책이다. 이는 택배사가 대형 업주에게 '백마진'(리베이트)을 주는 것을 금지하고, 이 돈을 택배노동자 수수료 인상이나 인프라 확충 등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제도를 말한다.
하지만 올해 9명의 택배기사가 스러진 현재, 정부의 대책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우선 산재보험 가입은 여전히 유명무실이다. 최근 사망한 택배기사들의 '산재적용 제외 신청서'는 대필까지 된 것으로 밝혀져 파장이 일었다.
표준계약서 마련 역시 노사 협의가 결렬되면서 중단됐고, 산재보험 가입 확대는 법률 개정을 시도했지만 택배사와 보험사 등의 반대로 실패했다.
택배요금 신고제 또한 시행령 입법 예고까지 진행됐지만,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실제 요금이 시장 요금이며 운임 신고시 택배업체간의 담합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을 내면서 무산됐다. 당시 "2022년까지 핵심 추진과제들을 완료할 예정"이라며 꾸린 TF는 여론의 관심이 시들해지자 유야무야 사라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당시는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하면서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며 "어떻게 보면 그 당시의 한계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당시 학습한 것을 바탕으로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일명 택배법) 제정을 계기로 다시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용노동부 관계자 역시 "TF가 사실 가동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해당하는 내용들은 각 소관과에서 추진되고 있다"면서 "산재보험 확대 등은 현재 국회에서 법안이 발의돼서 통과시키려고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