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룡 경찰청장이 지난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정인이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에 앞서 고개 숙여 사과를 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경찰이 아동학대 신고 접수 다음날 부서장과 담당 경찰관이 모여 사건을 재검토하는 '전수합동조사'를 '정인이 사건' 3차례 신고 접수 당시 모두 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담당 경찰관들은 "112신고 접수 때만 조사를 하는 줄로 알았다"고 변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수합동조사는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각종 범죄 대응을 위해 지난 2015년 경찰이 도입한 제도지만 일선에서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였다. 이번 사건 이후 경찰은 전수합동조사를 일부 강화해 재차 대책으로 꺼내들었지만, 결국 일선 현장에 안착되지 않는다면 같은 비극이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안치된 정인이의 묘지에 시민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한형 기자
◇정인이 학대 신고 3차례 모두 '전수합동조사' 없었다9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정인이 학대 신고를 3차례 받은 서울 양천경찰서는 신고 다음 날 해야 하는 '전수합동조사'를 3차례 모두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전수합동조사는 전날 신고된 아동학대 관련 사건을 다음날 오전 여성청소년과장 주재 하에 팀장, 학대전담경찰관(APO) 등이 모여 내용 및 현장의 조치결과가 적정한지 여부를 면밀히 검토하고 필요할 경우 수사 등 재조치를 하는 것을 말한다. 조사 이후에는 일주일 내 서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경찰은 정인이 학대 신고를 지난해 5월과 6월, 9월에 접수했지만 그때마다 내사종결이나 혐의없음으로 처분했다. 정인이는 3차 신고 종결 보름 뒤 서울 양천구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경찰이 전수합동조사만 제대로 해서 신고 내용을 되짚었다면 정인이를 살릴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러한 전수합동조사 미실시는 사건 담당 경찰관 징계의 핵심 사유 중 하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징계는 무겁지 않았다. 1·2차 신고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들(팀장 등 2명)은 '주의', 2차 신고 사건 담당자들(팀장 등 2명)은 '경고' 처분을 받는데 그쳤다. 3차 신고를 처리한 담당 팀장 등 경찰관 3명, APO 2명 등 모두 5명은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전수합동조사를 주재해야 했던 책임자인 전직 여청과장(1·2차 신고 담당)과 현직 여청과장(3차 신고 담당)은 '주의' 처분만 받았다. 이 모든 것을 관할해야 했던 양천서장은 애초 징계를 피했지만 파면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등 여론의 공분에 떠밀려 뒤늦게 대기발령 조치됐다.
이들 경찰관 중 일부는 징계 조사 과정에서 "아동학대 112신고만 전수합동조사를 하는 줄 알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전수합동조사는 모든 사건이 대상이며 심지어 3차 신고는 소아과 의사가 112신고를 한 것이라, 앞뒤가 맞지 않는 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