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8일 2050 탄소중립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은 오늘(28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참석차 유럽을 방문합니다. 교황과의 면담이나 한미 정상 간의 회담 등이 주목을 받지만 인류의 미래가 달린 회의도 있습니다. 산업을 읽는 인더독 시리즈, 이번 8번째 순서는 '2030년까지 40% 감축, 2050년 순배출 제로 달성'이라는 우리나라의 새로운 '탄소 중립' 달성 목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석탄발전 '퇴출' 명문화…2030 NDC도 기존보다 대폭 강화
탄소중립위원회는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용산구 노들섬 다목적홀에서 2차 전체회의를 열고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2030 국가 온실가스감축목표(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상향' 등 2개 안건을 의결했습니다.
지난 인더독 3편 기사에서 말씀드린 대로 다음달 1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 참석하기에 앞서,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이런 목표를 세우고 2030년까지는 탄소 배출량을 얼마만큼 줄이겠다고 우리 스스로 약속을 한 겁니다.
인천시 서구 경인아라뱃길에서 바라본 서구지역 발전소 모습. 연합뉴스정부는 우선 지난 8월 발표한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 3개 가운데 2050년까지 '순배출량 0'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최종안으로 확정했습니다.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일부 남길 수도 있지만,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배출의 주범인 석탄발전은 '퇴출'을 명문화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우리가 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라며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자 매우 어려운 길이지만 담대하게 도전해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국가 전체가 총력체제로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2050 탄소중립'의 중간 목표 격인 '2030 NDC'는 오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 정점인 2018년보다 40%를 감축하는 안으로 확정지었습니다. 기존의 '2018년 대비 26.3% 감축' 목표를 대폭 상향한 겁니다. 연평균 감축률로 보면 우리나라는 4.71%로, 유럽연합(EU) 1.98%, 미국 2.81%, 일본 3.56% 등 주요국에 비해서도 무척 도전적인 목표입니다.
NDC 상향에 산업계는 '초비상'…"국가 경제 악영향" 주장
초안 발표 당시에도 우려를 표한 경제계와 산업계에는 '초비상'이 걸렸습니다. 산업계는 이번 NDC 상향에 따라 2018년 2억6050만톤에 달했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2억2260만톤으로 14.5% 줄여야 합니다. 탄소 중립이 달성되는 2050년에는 5110만톤만 배출할 수 있습니다.
NDC 상향안 모식도(직접배출량 기준). 기준연도(2018년) 배출량은 총배출량, 2030년 배출량은 순배출량(총배출량–흡수‧제거량). 국무조정실 제공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 5월 탄소중립위원회 출범 이후 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경제·사회적 영향 분석 없이 정부와 탄소중립위가 일방적으로 결정한 부분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기업이 중장기적으로 져야 하는 경제적 부담에 대한 비용 추계는 공개되지 않은 탓에 정책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면서 "급격한 변화가 기업의 생산설비 신·증설 중단, 해외이전, 고용감소 등 국가 경제의 악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논평을 통해 "제조업 비중이 높고 상품 수출이 경제를 뒷받침하는 국내 현실을 고려할 때 탄소 감축과 넷제로 달성을 위한 향후 여정은 기업뿐만 아니라 국민의 삶에 큰 도전 과제이자 부담이 될 것"이라며 "탄소감축 관련 혁신 기술 개발과 상용화에 필요한 막대한 비용과 관련해 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책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경총이 22일 개최한 '탄소중립 정책의 평가와 바람직한 산업전환 방향' 토론회에서는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이 지적됐습니다. 재생에너지 비율이 높아지면 전력 공급 안정성을 해칠 수 있고, 기업 입장에서는 탄소중립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추계와 구체적인 지원 방안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내용입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석탄·LNG·원자력 발전까지 모두 퇴출하는 것은 전력 공급 안정성을 심각하게 저해해 결국 에너지 전환 자체를 좌초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동근 경총 상근부회장도 "지리적·기후적 특성상 신재생에너지 발전 효율에도 한계가 있어 향후 전력 수급 위기와 전기 요금 인상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한국에너지학회, 한국원자력학회 등 에너지 관련 학회 회원 1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79.3%가 산업부문 감축안이 과도하다는 의견을 표명했습니다. 전경련 유환익 기업정책실장은 "국제사회에 보여주기식 감축목표를 설정하기보다는 무탄소 전원인 원자력 발전의 비중 확대, 탄소감축 기술 개발에 대한 지원 강화 등 현실적인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국정감사서도 논란…문대통령 "기업 혼자 부담하도록 두지 않을 것"
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뜨거운 감자'였습니다. 최종안이 확정되기 이전인 지난 5일 열린 산업통상자원부 상대 국감에서 야당은 탄소중립 이행에 필요한 관련 비용도 산출되지 않은 졸속 추진을 문제 삼았습니다.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은 "시나리오를 수립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비용을 정부가 모르쇠로 일관하고 공식적으로 논의도 하지 않는 등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다만 정부는 기후위기대응기금 2조5천억원을 조성하고, 관계부처와 별도 연구용역을 거쳐 12조원 규모의 예산 편성을 추진중이라는 입장입니다. 윤순진 2050탄소중립위원회 민간공동위원장은 지난 18일 "금융, 세제, 기술혁신 지원과 탄소중립법 등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 산업계의 탄소중립 달성 노력을 뒷받침할 것"이라며 "특히 준비가 덜 된 중소기업이 문제를 겪지 않도록 다양한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문 대통령도 25일 국회에서 진행한 2022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전 지구적 과제이자 국가 명운이 걸린 중대한 도전"이라며 "감당하기 어려운 목표라는 산업계 목소리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 혼자서 어려움을 부담하도록 두지 않고 정부가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문대통령, COP26서 '2030년까지 40% 감축' 목표 국제사회 발표
정부는 27일 국무회의에서 2030 NDC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심의·확정했습니다. 환경부는 "제조업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의 산업구조, 늦은 배출정점 등을 고려할 때 쉽지 않은 목표"라며 "정부의 강력한 정책 의지를 반영한 상향안"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를 두고 경총은 "산업계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최종 확정돼 유감"이라며 "산업계를 포함한 이해당사자가 부담해야 할 총비용에 대한 구체적인 추산 결과를 공개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혁신기술 연구·개발 및 상용화에 필요한 예산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실질적인 지원 방안 마련을 요구했습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참석차 28일 출국하는 문 대통령은 다음달 1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서 우리나라의 2030 NDC 상향안을 국제사회에 발표합니다. 정부는 5년마다 국가적인 목표를 점검·평가받아야 하는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따라 올해 내로 유엔에도 제출할 계획입니다.
산업계 반발에도 감축 목표를 대폭 상향한 우리나라처럼 COP26회의를 앞두고 국제사회는 속속 새로운 NDC를 발표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각국의 목표치가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막는 데 여전히 역부족이라는 점입니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26일(현지시간) 지금대로라면 21세기 말까지 지구가 2.7℃ 더 뜨거워질 거라고 경고했습니다.
국제사회는 2015년 파리협정에서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이내로 줄이기로 했습니다.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회의 등을 거치면서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1.5℃ 이내로 제한하기로 목표를 한층 높였고,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한다는 경로를 제시했습니다.
유엔환경계획(UNEP)의 '2021 배출 간극(emissions gap)' 보고서는 국제사회를 향한 '경고'를 담았다. 보고서 캡처UNEP의 '2021 배출 간극(emissions gap)' 보고서의 제목은 "뜨거워지는 지구: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약속은 미완성(The Heat is On:A world of climate promises not yet delivered)"입니다. 보고서는 9월까지 제출한 각국의 NDC 등을 종합할 때 2030년 말까지 줄어드는 배출량은 필요치의 7분의 1에 불과하다며 2100년까지 지구 온도 상승이 2.7℃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번 보고서 발표 기자회견에서 "각국 지도자가 COP26을 준비하는 가운데 천둥 같은 경종을 울리는 것"이라며 "얼마나 더 많은 경고음이 필요한가"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는 각국 정상을 향해 "탄소중립에 대해 대담하고 시의적절한, 또 전위적인 계획을 갖고 글래스고에 와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우리 환경단체도 27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NDC는 체면치레조차 어려운 수준이고,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역시 허구와 기만으로 가득하다"면서 "COP26 참가단을 구성해 한국이 기후악당 국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고 기후정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현지에서 목소리를 내겠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산업계는 우려하고 환경단체는 질타하는, 우리 정부의 목표에 대해 국제사회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전세계 130여 개국 정상들은 보다 진전된 합의를 이룰 수 있을까요. 지구는 계속 뜨거워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 뿐이죠. 다음에는 11월 12일까지 이어지는 COP26 회의 소식을 정리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