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황진환 기자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모르는 바람에 오히려 크게 화제가 된 RE100(재생에너지 사용 100%)이 한국에도 있습니다. 바로 한국형 RE100, 'K-RE100'입니다.
글로벌 기업들의 RE100 가입이 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하위 공급사들에 대한 이행 요구도 강해지면서,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내 전기소비자들이 좀 더 쉽게 RE100에 동참할 수 있도록 지난해부터 K-RE100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한국에너지공단 홈페이지 캡처K-RE100 이행을 위한 수단은 ①녹색프리미엄 ②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구매 ③제3자 전력구매계약(PPA) ④재생에너지 발전사업에 지분참여 ⑤재생에너지 설비 직접 설치·사용 등 총 다섯 가지입니다. 이런 방법들로 전기를 사용한 실적을 제출하면 '재생에너지 사용 확인서'를 발급해 주고, 전기소비자는 이를 글로벌 RE100이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홍보용으로 활용하는 것이죠.
그런데 시행 1년을 맞은 K-RE100이 진짜로 재생에너지 사용, 탄소배출 감축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두고는 아직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전기소비자들이 택한 K-RE100 방식이 대부분 ①녹색프리미엄이었기 때문이죠.
①녹색프리미엄은 전기소비자가 일반 전기요금에 '재생에너지 프리미엄'을 얹어 좀 더 비싼 가격으로 한국전력에서 재생에너지 전기를 구매하는 방법입니다. 새로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늘지 않고 기존 설비를 기반으로 쓰는 것이기 때문에 재생에너지를 조달했다는 인증은 되지만
온실가스를 감축한 것으로 인정되진 않습니다. K-RE100 시행 1년을 맞아 지난 2일 열린 대한전기협회 전력정책포럼에서도 이런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71개 기업이 K-RE100에 참여했는데 이 중 94%가 ①녹색프리미엄을 이용했습니다. 다른 방법에 비해 가장 저렴하게 재생에너지 전기를 살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산업용 전기료가 110원일 때 녹색프리미엄은 10원 정도 비싼 120원을 전기요금으로 내게 됩니다. 반면 ②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는 최근 급격히 가격이 오르고 있어 녹색프리미엄(10원)보다 5배 정도 비싸고 ③제3자 전력구매계약(PPA)은 전기소비자와 재생에너지 발전사 사이에서 한전이 망이용료와 각종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10배 가까이 비쌉니다. ④지분참여나 ⑤직접설치 방법에도 중간이용료나 초기 설치비용 등의 문제가 있습니다.
최소 10%에서 두 배나 오른 전기료를 내야 하니 기업들의 참여가 저조한 것은 물론이고, 실질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도움이 되는 ③제3자 전력구매계약(PPA) 방식은 가격 문제로 아예 실적이 0건입니다. K-RE100이 1년간 기업의 돈만 거두고 실제 온실가스 감축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죠.
특히 이같은 상황에서 가장 고충이 큰 곳은 국내·외 대기업들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 압박을 받는 중소·하청기업들입니다. 이번 토론회의 좌장을 맡은 김재언 대한전기학회 회장은 "국내 6대 제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5.4%밖에 되지 않는다"며 "110원에 쓸 전기를 140~150원을 내면서 RE100에 참여해야 하니 굉장히 어려운 건 사실"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연합뉴스패널로 나온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 신성이엔지 김신우 이사도 "포괄적인 ESG 경영이나 해외 대기업들의 RE100 참여를 이유로 중소·중견기업들의 전환까지 유도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자체적으로 재생에너지 전력 시설을 설치하지 못하거나 원가 부담으로 녹색프리미엄조차 이용하지 못하는 중소기업들에겐 정부 주도로 산업단지의 지붕을 일괄 임대해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원을 설치해주는 식의 실효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이태의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RE100은 무엇을 위해, 왜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부터 던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미 내수를 중심으로 경쟁력을 확보한 글로벌 기업들이 기업가치 향상을 위해 RE100을 선언하는 것과 수출 위주의 국내 산업계에서 RE100 참여할 때의 상황은 매우 다르다는 것이죠.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빼놓고 RE100을 무작정 강제할 수는 없다는 지적입니다.
전기소비자와 재생에너지 발전사 사이에 낀 한전의 망사용료 등 비용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 재생에너지 이용 기업에 각종 금융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방안 등이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한전은 올해 최대 20조원의 적자를 예고했고, 금융권에서 융자 혜택을 주는 정도의 지원이라면 기업의 금융부채만 늘리는 꼴이 될 수도 있습니다.
RE100은 전기소비자의 자발적인 참여를 전제로 하지만. 결국은 전력시장구조를 설계하는 정부에 숙제가 쌓이는 모양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