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우슈 간판 서희주가 28일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창술 경기를 펼치고 있다. 보은=대한우슈협회제 34회 회장배 전국우슈선수권대회가 열린 28일 충북 보은국민체육센터. 오는 9월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에 나설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한 중요한 대회다.
몸을 풀며 경기를 준비하는 우슈 여자 투로 간판 서희주(29·전남협회)는 자못 긴장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순서가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장지에 나섰다.
자유자재로 다루는 곤과 창은 마치 살아 있는 뱀처럼 휘며 춤을 추었다. 날렵한 점프와 절도 있는 동작은 그야말로 무림 고수, 그 자체였다. 우슈는 무술(武術)의 중국어 발음이다.
서희주는 여자 장권전능 부문 1위에 올라 태극 마크를 달았다. 앞서 장권(9.46점), 검술(9.21점)에 이어 이날 창술(9.36점)까지 총점 28.03점으로 고가빈(G스포츠평택시우슈클럽)을 제쳤다.
경기 후 서희주는 "4년 전 아시안게임에서는 아쉬움이 너무 컸다"면서 "절실하게 4년을 기다린 만큼 항저우에서 좋은 성적을 내서 아쉬움을 털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 서희주는 몸을 풀다 경기 직전 무릎 부상으로 기권을 해야 했다.
당시 서희주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서희주는 "경기 전 훈련을 하다가 오른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됐다"면서 "진짜 5분 전에 그랬는데 아직까지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는데 그게 한 달은 갔다"고 힘든 시절을 회상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 서희주가 경기 직전 무릎 인대 파열로 기권한 뒤 눈물을 쏟는 모습. 노컷뉴스서희주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우슈 역사를 새로 썼다. 투로에서 여자 선수 사상 최초로 아시안게임 메달(동)을 따낸 것. 빼어난 실력에 외모까지 '미녀 검객'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우슈 간판 스타로 거듭났다. 기대를 안고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 나섰는데 경기도 못 하고 부상으로 기권해야 했으니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서희주는 "당시 몸이 굉장히 좋아서 더 아쉬웠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서희주는 "아시안게임 이후 은퇴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더 각성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서희주는 "무릎 수술만 2번을 해서 포기해야 하나 생각이 많았고 정신적으로 힘들었다"면서도 "그러나 현재는 10개월 전 수술 때만큼 기량이 많이 올라왔다"고 귀띔했다.
무릎 인대는 물론 아킬레스건 파열까지 몸이 성한 데가 없다. 서희주는 "투로 선수들은 점프 동작이 많아 착지하면서 발목과 무릎에 충격이 많이 간다"면서 "인대는 물론 무릎 연골까지 파열이 됐는데 지금 인대가 내 인대가 아니다"고 했다. 다른 사람의 것으로 인대 재건 수술을 한 것이다.
만신창이가 돼도 서희주가 우슈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한국 우슈의 간판이라는 책임감 때문이다. 서희주는 "사실 인천아시안게임 이후 은퇴를 하려고 했는데 우슈가 너무 좋아 더하게 됐다"면서 "자카르타-팔렘방 이후 진짜 은퇴하려고 했지만 부상으로 아쉬움이 남았다"고 했다. 이어 "우슈 때문에 주목을 받고 방송도 출연하게 됐는데 골프 박세리, 펜싱 남현희 언니처럼 종목의 간판이 돼서 널리 알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한국 우슈의 위기 때문이기도 하다. 서희주는 "지난 대회 선발전 때보다 출전 선수가 크게 줄었다"면서 "이러다 우슈가 사라질 것 같다"고 쓸쓸하게 말했다. 이어 "남자는 그래도 실업팀이 12개 정도 되는데 여자는 전무해 미래가 없는 선수들이 떠난다"면서 "우슈를 알리고 팀이 창단되기 위해서는 아시안게임 등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2019 충주세계무예마스터십 당시 금메달을 따낸 서희주. 협회그나마 서희주는 상황이 좀 낫다. 국가대표로 선발돼 선수촌에서 훈련을 하면 하루 6만5000 원의 훈련 수당을 받는다. 여기에 세계선수권대회 2번 우승과 아시안게임 동메달 등으로 연금을 받아 실업팀 선수만큼은 아니어도 근근히 생활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다른 여자 선수들은 다르다. 서희주는 "여자 우슈 선수들의 환경이 열악하다"면서 "운동을 하다가 그만두는데 팀만 있으면 돌아올 선수들이 많다"고 했다. 이어 "(인천아시안게임 이후) 방송에 나가 팀 창단 필요성을 역설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2019년 우연히 시작했지만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도 책임감이 있다. 서희주는 "다른 사람들은 회사에서 관리해주는데 나는 선수까지 하면서 혼자 관리하는 게 버겁더라"면서도 "별 생각 없이 가볍게 시작했는데 구독자가 1만 명을 넘는 등 많아지면서 책임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훈련 및 대회 영상 올려줬으면 좋겠다는 분들이 많은데 쉽지 않다"면서 "구독자 1만 명에서 정체기"라고 귀띔했다.
올해는 서희주가 본격적으로 우슈를 시작한 지 20년이 되는 해다. 본인도 생각이 많다. 서희주는 "20대는 돈 신경 안 쓰고 운동이 좋으니까 했다"면서 "하지만 우리 나이로 30살, 취직할 나이가 됐는데 수입이 많지가 않다"고 자조적인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서희주는 우슈에 진심을 쏟기로 했다. 도장을 운영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입문한 서희주는 "마냥 우슈가 좋았다"면서 "은퇴하기도 늦은 나이지만 노련미와 연륜이 생겼고 몸만 버텨준다면, 다행히 몸도 괜찮으니 더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후배들에게 "열정과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하면 좋은 날들이 있을 것"이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 본인이 잘 돼야 한다는 것이다. 우슈도 롤 모델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희주는 "아시안게임은 물론 세계선수권에도 나가 연금 상한선도 채우고 싶다"면서 "그래야 후배들이 본받고 따라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킬레스건이, 인대가, 연골이 파열돼도 미녀 검객이 우슈를 놓지 못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