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2차 전원회의에서 사용자위원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왼쪽)와 근로자위원인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자리해 개의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올해도 어김없이 또 나타났다. 수십 년 동안 진전없이 반복되는 최저임금 차등적용 논란, 해마다 되풀이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저임금위원회는 17일 제2차 전원회의를 열어 2023년도 최저임금 심의를 진행했다. 이날도 최저임금 회의 모두발언은 최저임금 차등적용 논의로 노사가 첨예한 갈등을 보였다.
사용자위원 대표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류기정 전무는 "업종별 차등적용에 대해 노동계가 원천 반대하는데, 이는 법으로 보장됐다"며 "최저임금 수준을 감당하지 못하는 업종이 있기 때문에 여러 상황을 감안해서 심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류 전무 주장처럼 현행 최저임금법 4조 1항은 "최저임금을 사업의 종류에 따라 차등 적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최임위의 심의만 거치면 업종별 차등적용은 당장이라도 적용할 수 있다.
실제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된 첫 해인 1988년에는 2개 업종 그룹을 나눠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한 실례도 있다.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경영계 숙원사항이다. 지난 4월 경총이 발표한 '2021년 최저임금 미만율 분석 및 최저임금 수준 국제비교' 자료에 따르면, 전체 임금 노동자 중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은 노동자 비율이 15.3%에 달하는데, 농림어업(54.8%), 숙박음식업(40.2%), 도소매(19.0%) 등 일부 업종의 미만율이 유독 높다.
이들 업종의 경우 영세사업장 비중이 높아 최저임금조차 지급하지 못하고 있어 사실상 최저임금 제도가 무력화됐기 떄문에 최저임금 차등 적용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반응은 차갑기만 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이동호 사무총장은 "업종 구분과 같은 불필요한 논쟁은 걷어버리자"고 강도 높게 비난했을 정도다.
지난 10일 국회에서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가운데 국회 앞 도로에서 한 아르바이트 노조원이 '최저임금 차등적용 반대'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비단 노동계만 반발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최임위에서는 업종별 차등적용에 대해 반대 15표, 찬성 11표, 기권 1표로 부결한 바 있는데, 사용자위원이 9명인 사실을 고려하면 노사를 제쳐두더라도 공익위원들조차 차등적용 주장에 부정적인 이들이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고용노동부 이정식 장관도 지난달 15일 장관 후보로 지명된 후 첫 출근길에서 "수차례 노사 간의 이견 다툼으로 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단일 업종으로 가는 것이 정치, 경제, 사회적인 조건 속에서 맞다고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비단 노동계 출신 장관의 돌출발언으로 보기도 어렵다.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에도 최저임금 차등적용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및 기획재정부 장관의 경우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최저임금 업종별 등의 차등화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저임금 차등화 정책 도입을 위한 현실적 준비가 미흡하다면 소모적 논쟁을 계속하기보다는 조속히 충실한 기초연구·실태조사 등을 위한 연구용역 작업이라도 빨리 시작해 건설적 논의를 위한 기초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얼핏 차등적용을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는 얘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위와 같은 선결조건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도입할 수 없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윤창원 기자추 부총리가 지적한 내용처럼, 차등적용 논란은 이미 최임위 내부에서도 결론을 내린 바 있는 문제다.
2017년 12월 최저임금위원회가 공개한 제도개선TF의 연구 결과에서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발표할 정도로 도입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당시 최임위 TF는 업종별 차등적용에 대해 ①최저임금의 취지상 타당성을 찾기 어렵고 ②최저임금제 시행 첫해를 제외하면 단일 최저임금을 유지했고 ③업종 간 차등 적용이 '저임금 업종'이라는 낙인 효과를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④최저임금 수준을 구분하려 해도 이를 뒷받침할 합리적인 기준·통계가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애초 최저임금의 취지는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해 사용자가 이 수준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법으로 강제해서 저임금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다. 사용자의 지불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특정 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삶'을 희생하라는 주장은 제도 취지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더 큰 문제는 차등적용 대상을 어디까지 인정하느냐에 대해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숙박음식업으로 묶어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할 경우, 직원을 한두명 고용한 동네의 작은 음식점과 십수명이 일하는 서울 시내 고급 호텔·음식점도 모두 최저임금 차등적용 대상이 되고 만다.
1988년 당시 28개 소분류업종으로 나눈 후 2개 그룹으로 나눴지만, 현재 우리나라 경제의 사업장들은 당시와 달리 훨씬 더 다양하게 나뉘어 있어 당장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추 부총리의 지적처럼 최저임금 차등적용이 필요한 사업장의 정확한 규모와 세부적인 업종 분류 등 판단 기준에 대해서는 노사가 공감할 수준의 논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경영계 역시 오랜 최저임금 논의 속에서 위와 같은 사정을 잘 알고 있는데도 해마다 빠짐없이 최저임금 차등적용 논의를 반복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실상 '협상용 카드'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부경대학교 경제학과 황선웅 교수는 "최저임금 차등적용안 자체는 충분히 검토해 볼 수도 있지만, 그러려면 여러 조사를 거쳐야 한다"며 "업종은 어떻게 나눌 것인지, 차등 적용하는 비율은 어느 수준으로 할 것인지 등 다양한 조사를 거쳐야 하는 장기 과제가 될텐데, 당장 최임위 논의에 협상안으로 들고 나오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최저임금 논의는 몇 퍼센트를 인상할 것이냐를 놓고 노사가 다투는 구조인데, 경영계가 판을 흔들기 위한 전술적인 목적으로 차등적용 얘기를 꺼낸다고 봐야 한다"며 "'우리가 차등적용을 양보하니 너희도 양보하라'는 목적이 강한데, 인상률 결정 여부와 성격이 완연히 다른 중장기 제도 개혁 과제를 매년 반복해서 내놓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