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임 > 안녕하세요. 매주 흥미로운 팩트체크 주제를 갖고 오셔서 오늘은 또 어떤 얘기를 하려나 궁금했는데, 도작(盜作)왕 손창현에 대한 팩트체크를 준비하셨다고요. 손창현이라는 이름이 낯선 분들도 계실 텐데요. 간략하게 소개해주세요.
◆ 선정수 > 손창현은 지난해 1월 남의 소설을 통째로 훔쳐다가 이름만 자기 것으로 바꿔서 각종 문학상을 수상했던 사람입니다. 이후 각종 경력사칭, 표절, 도작, 도용 등 굉장히 엽기적인 행태가 드러나면서 공분을 샀죠.
◇ 조태임 > 남의 것을 내 것처럼 도용하는 것도 나쁘지만, 넓게 보면, 다른 사람의 기회를 뺏는 거잖아요. 그런데 엽기적인 행태가 드러났다고 하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싶어요.
◆ 선정수 > 네 그래서 저희 팩트체크 전문 미디어 뉴스톱이 굉장히 집요하게 이 사람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이 사람에 관한 기사를 쓴 걸 세어봤더니 12건이나 돼요. 모두 공모전 또는 대외활동이라고 부르는 서포터즈, 정책기자단 등에 다른 사람의 것을 훔쳐서 출품하거나, 지원 자격이 되지 않는데도 이력을 속여서 응모한 사례들입니다.
뉴스톱 홈페이지 캡처 ◇ 조태임 >12건이라고 하니 상습적이라고 보여 지는데, 그런데 이런 사기행각이 대부분 수상으로 연결됐다고요?
◆ 선정수 > 저희가 밝혀낸 것은 수상자 발표를 토대로 역으로 추적해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모두가 수상작 또는 대외활동의 경우 선정된 사례들입니다. 얼마나 많이 응모하고 그 중에 얼마나 수상했는지는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조태임 > 네, 그럼,,,손창현의 엽기적인 행각, 대체 뭔지, 최근 사례부터 짚어보죠.
◆ 선정수 > 지난달 23일 강원도청 산하 기관인 강원도여성가족연구원의 강원도 노인복지정책 아이디어 공모전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손창현은 우수상을 수상합니다. 상금 50만원이었고요. 수상 소식이 지역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조태임 > 그런데 그게 다른 사람 것을 가져다 낸, 그러니까 도용이었단 말씀이죠?
◆ 선정수 > 손창현은 '외국인대상 한국생활 가이드(노인일자리 확대방안)'라는 아이디어를 제출했는데요. 국내에 정착하려 하는 유학생 등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노인들이 한국생활 가이드를 해주는 내용입니다. 우수상을 탔는데요. 뉴스톱은 손창현의 이름을 강원도민일보에 보도된 시상 내용을 통해 접한 뒤 아이디어 도용 여부를 검토했습니다.
◇조태임 > 선 기자가 직접 찾아내고 밝혀냈다는 거죠. 흥미진진한데요. 어떻게 됐습니까?
◆ 선정수 > 손창현의 아이디어는 국민권익위 '국민생각함'에 2020년 5월8일자로 공개된 '노인일자리(외국인 대상 한국생활 가이드)'라는 콘텐츠와 동일했습니다. 첫 문장부터 토씨 하나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복붙'한 수준입니다. 추진예산의 금액까지 동일했습니다.
◇조태임 >그런데, 이걸 어떻게 찾아냈어요?
◆ 선정수 > 뭐 복잡한 것은 아니고요. 구글 검색창에 손창현이 낸 응모작의 제목이죠. 외국인대상 한국생활 가이드를 검색하면 원본이 나옵니다. 간단합니다. 공모전 주최 측인 강원도여성가족연구원에 연락해서 손창현이 제출한 응모작 문구를 공개해달라고 요청해서 비교합니다. 그럼 양쪽이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원본이 2020년에 작성된 것이니까 손창현이 도용한 셈이죠.
◇조태임 > 주최측과 손창현의 반응은 어땠나요?
◆ 선정수 > 일단 손창현에게는 다양한 채널로 연락을 해봤는데 전화를 안받고 문자도 응답을 안했습니다. 지난번에는 전화통화해서 잘못했다고 싹싹 빌더니만 이제는 전화도 안 받네요. 강원도여성가족연구원은 상금을 환수하고 수상을 취소했다고 밝혔습니다.
◇조태임 >이건 선 기자가 지적해서 취해진 조치인 거죠?
◆ 선정수 > 손창현에 대해서 고발 또는 수사의뢰 등 사법조치 착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하고요. 손창현은 연구원에는 인용을 하다가 '실수했다 미안하다' 이런 식으로 문자를 보냈다고 합니다.
강원도민일보 캡처◇조태임 > 이 건 말고도 또 발견한 게 있다고요?
◆ 선정수 > 지난 4월에 다른 사람의 암투병기를 도용한 걸 발견해서 기사를 썼는데요. 작년부터 지난 4월까지 저희가 이 손창현의 도작, 도용, 표절, 경력사칭 등을 적발해서 기사로 쓴 게 10건이고요. 사례는 20건이 넘습니다. 이제 그만하겠지 하고 방심하고 있었는데요.
이 강원도여성가족연구원 사례를 계기로 손창현이 4월 이후로 무슨 짓을 했는지 쭉 검색을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또 줄줄이 나왔습니다.
◇조태임 > 또 어떤 것들이 있나요?
◆ 선정수 > 지난 7월에는 국토교통부에서 대학생 기자단을 모집했습니다. 여기에도 손창현은 이름을 올렸습니다. 1980년생으로 올해 우리나이 43세인 손창현이 대학생기자단에 지망해 합격한 겁니다. 지원자격은 대학생 또는 대학원생입니다.
◇조태임 > 손창현은 대학생 또는 대학원생에 해당되나요?
◆ 선정수 > 본인이 대학원생이라고 써냈다고 하는데요. 이 사람은 대학원에서 제적됐습니다. 손창현이 국토부 기자단에 합격한 사실을 파악한 뒤 국토부에 경위를 물었습니다.
이때까지 국토부는 손창현이 도작 행위로 악명이 높은 인물임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국토부 관계자는 손창현이 제출한 지원서류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왜 손창현을 합격시켰냐는 질문에 대해선 "(손창현이) 아직까지 활동한 내용이 없어서 아무런 대가도 지불되지 않았다"고 엉뚱한 대답을 내놨습니다.
◇조태임 > 피해가 없으니 괜찮다 이런 입장이네요?
◆ 선정수 > 국토부는 대학생 기자단 선발과정에서 손창현의 지원 자격도 검증하지 않았습니다. 대학(원) 재학증명서 등 증빙서류를 제출하도록 요구하지 않은 겁니다.
◇조태임 >이건 좀…기본인 거 같은데 이해가 안되네요 손창현도 문제지만, 제대로 거르지 못한 기관도 문제가 많은 것 같은데요. 대학생 기자단 이런 것은 학생들이 취업용 스펙으로 굉장히 선호하잖아요.
◆ 선정수 > 그렇습니다. 기자 지망생 또는 홍보업계로 진출하고자 하는 분들이 굉장히 하고 싶어하는 대외활동입니다. 손창현은 속여서 1명 분의 기회를 빼앗은 거고요, 국토부는 검증을 소홀히 해서 한명의 기회를 날린 거죠.
국토교통부 캡처 ◇조태임 > 또 있나요?
◆ 선정수 > 이번에 찾은 사례만 7건입니다. 아직 5개가 남아있습니다.
◇조태임 > 어떤 것들인가요?
◆ 선정수 > 인천광역시에서 지난해와 올해 모집한 3기 인천청년네트워크위원을 모집했습니다. 여기에 손창현은 나이를 속이고 응모해 선정됐습니다. 응모자격은 39세 이하인데 손창현은 80년생이니까 지원할 수 없죠. 그런데 본인이 37세라고 허위 기재해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이 밖에 서울 성동구청의 청년기자단, 여기에도 나이를 속여서 선정됐고요.
한국장애인개발원의 '장애인정책 청년 모니터링단', 국책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의 국토TV청년크리에이터에 각각 나이를 속여 선정됐습니다. 한국문화재단 대학생 서포터즈에는 대학교에 재학중이라고 속여서 선정됐고요.
◇조태임 >아..뭐랄까요? 자잘한데 참 많아요. 이렇게 해서 얻는 게 뭘까 싶기도 하고요
◆ 선정수 > 공모전인 경우에는 대부분 상금이 걸려있습니다. 많게는 200만원부터 적게는 10만원까지 다양한데요. 공모전의 경우에는 상금을 노리는 것으로 보이고요. 대외활동의 경우에는 활동비, 원고료 이런 게 지급됩니다.
그런데 손창현은 대외활동의 경우 선정되고 나서 활동하지 않는 게 굉장히 많습니다. 아마 선정되는 것 자체로 뭔가 기쁨을 느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태임 > 김민정 작가의 소설 <뿌리> 도작이 굉장히 큰 이슈가 된 게 2021년 1월이에요. 저희 CBS 김현정 뉴스쇼에 육성 인터뷰도 하고, 뉴스톱 인터뷰도 했었고, 지상파 방송에도 출연하고 했었단 말이죠. 잘못했다고 하고 반성한다고 용서를 빈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요. 왜 이렇게 달라지지 않고 계속 이렇게 도용과 표절을 하는건가 이해가 안돼요.
그런데 처벌할 방법은 없는 건가요?
◆ 선정수 > 손창현의 이런 행위는 명백한 불법행위입니다. 공모전에 남의 작품을 도용해서 응모하는 것은 일단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하고요. 공모전을 주최한 기관에 대해서는 업무방해가 성립합니다.
주최측이 정부 또는 공공기관인 경우에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에도 해당됩니다. 응모과정에서 신분증을 위조하거나, 허위 경력을 제출하는 경우에는 공문서 또는 사문서 위조죄로 처벌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손창현 사례에선 피해기관들이 강경하게 대응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몇 군데를 빼고는 상금 회수 정도로 그치고 있죠. 이런 미온적인 대응이 지속적인 위법행위를 가능케 하는 요인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조태임 > 이게 처벌이 약한면도 있어요. 그냥 '운이 안아서 걸렸네, 상금 토해내면 되지' 이런 거잖아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할 것 같아요. 철저히 수사해서 제2, 제3의 손창현이, 또 다른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공모전이 굉장히 많이 열리고 있잖아요. 공모전 주최측이 이런 손창현 같은 사람한테 속지 않으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 선정수 > 지원 자격이 정해져 있는 공모전이라면 지원 자격에 해당하는 증빙서류를 제출하도록 하면 됩니다. 개인정보 활용동의서를 받으면 증빙서류가 위조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나이 또는 거주지를 속이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학력 나이 등을 조작하거나 도용·표절한 작품을 출품할 경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고지하거나 동의서를 받는 것도 방법입니다.
지원 자격을 검증한 뒤에 수상작을 선정하는 단계에선 도작, 도용, 표절 여부를 검증하는 게 필수적입니다. 손창현의 경우에는 대부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복사해 붙여 넣는 수법을 사용했는데요.
응모작의 첫 줄만 검색해봐도 원본을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진전의 경우에는 이미지 검색 도구를 사용하면 됩니다.
◇조태임 >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손창현 이분도 처음에 아마 작은 것에서 시작했을 거에요. '그런데 어! 이거 안 걸리네' 이러면서 계속 해 왔던 게 아닐까 싶은데요. 근데 말씀하신 대로 크게 보면 다른 사람의 기회를 박탈하는 거잖아요. 좀 더 철저한 관리가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