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서울 도심 보수·진보단체 대규모 집회. 연합뉴스어김없이 보수·진보 양 진영의 집회가 열렸다.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는 두 쪽으로 쪼개졌다.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자유통일당 등 보수단체는 29일 광화문 인근 동화면세점 앞에서 모여 효자동 방면으로 행진을 이어갔다. 진보 성향 시민단체 촛불전환행동도 같은 날 오후 청계광장에서 정부 규탄 집회를 열고, 용산 대통령실 앞쪽으로 행진했다. 신자유연대가 촛불행동에 맞대응 집회를 열기도 했다.
29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광화문광장 인근 세종대로와 용산 대통령실 인근은 매주 주말,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 몸살을 앓고 있다. 과거 촛불집회 당시 광장과 거리가 정치적 갈등을 넘어선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면 정치 양극화가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광장이 '분풀이'의 공간으로 퇴색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수 단체 집회에서는 "문재인·이재명 구속", "주사파 척결" 구호가 다른 쪽에서는 "윤석열 퇴진·김건희 특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난주 주말도 경찰 추산, 보수·진보 진영에서 5만 2000명이 집결했다. 경찰은 보수 측은 3만 6000명, 진보 측은 1만 6000명이 모였다고 발표했다. 이에 촛불행동 측은 경찰이 집회 참석자를 적게 추산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양 진영 간 세대결을 의식한 탓인지 경찰은 이번 주 집회부터 참가 인원 집계를 별도로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함께 거리에 있지만, 상대를 향해 쏟아내는 말은 혐오로 얼룩지고 있다. 이날 보수 집회에 연단에 오른 한 인사는 "이건 전쟁이다. 둘로 쪼개졌다. 전부 주사파 탓이다"라고 발언했다.
매주 자유통일당 집회에 참여한다는 70대 염모씨는 "저쪽(진보진영)과는 대화가 안 된다. 윤석열 탄핵, 김건희 특검은 미친놈들이 하는 소리"라며 "우리 우파 세력이 더 세서 지난주도 좌파 세력이 행진을 포기했다"고 자부했다.
29일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김건희 특검. 윤석열 퇴진 12차 촛불대행진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종민 기자반면, 촛불행동 집회에 참석했던 60대 최모씨는 "과거 그들(보수진영)은 감히 길거리에 나올 수 없었다"며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아주 지긋지긋한 것들이다"고 말했다.
촛불행동 측은 "우리가 집회를 이어가는 동안 반대편은 '촛불을 끄자'는 구호를 외친다"며 "특히 유튜버들이 집회 방해를 노골적으로 한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찰은 두 진영 사이 충돌을 막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집회가 있을 때면 최대한 두 진영 간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로가 상대를 이해 못할 집단으로 낙인찍으며, 세대결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인다.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자유통일당 등 보수진영은 매주 집회 신고를 한 상태고, 촛불행동 등 진보진영도 매주 김건희 특검 윤석열 퇴진 촛불 집회를 열 예정이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두 세력 간 대결 구도는 연말을 넘겨 다음 총선까지 이어질 것"이라며 "각 진영의 정치인들이 지지자들을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각 진영의 디딤돌 삼는 정치 논리에 대해선 "진보진영은 현재 상황에서 대통령 탄핵이 현실적으로 어려우니, 퇴진을 외친다. 상대 진영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으니 이재명을 구속시켜라, 윤석열을 지켜내자고 한다"며 "일종의 광장의 대결을 펼치고 있는 상황으로 일반 국민들이 볼 때는 여당과 야당이 똑같아 보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29일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김건희 특검. 윤석열 퇴진 12차 촛불대행진 참가자들이 행진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거리가 세대결로 얼룩질수록 광장은 분풀이 장소로 남을 뿐 일반 시민들과 멀어질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집회 시위의 자유지만, (광장 등이) 자기들만의 분풀이 장소가 되지 않기 위해선 설득과 공감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많은 국민들이 얼마나 호응하는지도 알 수 없는 집회들이 관성적이고 지속적으로 벌어지는 것이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의 행복 추구권과 충돌할 측면이 있다"고 했다.
구 교수는 이와 같은 상황이 6년 전 촛불집회와도 구별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촛불집회에서 광장은 정치적 갈등을 넘어서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측면이 있다"며 "이후 양 진영이 더 극단적으로 양극화하면서 서로 설득하고 대화하는 공간이 거의 존재하지 않게 됐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