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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장애가 있지만 당구 선수의 꿈은 정상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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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는 장애가 있지만 당구 선수의 꿈은 정상이란다"

    '얘들아, 보고 있니?' 김영섭이 10월 31일 '휴온스 PBA-LPBA 챔피언십' 남자부 결승에서 다비드 마르티네스와 명승부를 펼친 뒤 팬들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PBA'얘들아, 보고 있니?' 김영섭이 10월 31일 '휴온스 PBA-LPBA 챔피언십' 남자부 결승에서 다비드 마르티네스와 명승부를 펼친 뒤 팬들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PBA
    장애를 딛고 프로당구(PBA) 정상에 도전했지만 아쉽게 한 걸음이 모자랐다. 그러나 아내와 두 자녀에게 자랑스러운 가장의 면모를 확인했다.

    한국 3쿠션 베테랑 김영섭(47)이 생애 첫 PBA 결승에 올랐지만 우승까지 이루지는 못했다. 10월의 마지막 날 경기도 고양시 빛마루방송센터에서 열린 '휴온스 PBA-LPBA 챔피언십' 남자부 결승에서 다비드 마르티네스(스페인·크라운해태)와 풀 세트 접전 끝에 3 대 4(15-14 3-15 15-13 15-11 5-15 8-15 6-11)로 졌다.

    세트 스코어 3 대 1까지 앞섰던 경기라 더 아쉬움이 남았다. 한 세트만 잡으면 생애 첫 우승과 상금 1억 원을 거머쥘 수 있었지만 고비를 넘지 못했다. 앞서 2번의 우승을 일궜던 마르티네스의 승부처 집중력과 경험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김영섭은 후회 없는 승부를 펼쳤다. 무명, 게다가 장애라는 어려움을 딛고 이뤄낸 PBA 결승 진출이라 더 값졌다. 개인 최고였던 4강을 넘어 준우승까지 이뤄냈다. 경기 후 김영섭은 "아쉬운 건 조금 있지만 첫 결승이라 감격적이었고, 기분은 좋다"고 미소를 지었다.

    김영섭이 '휴온스 PBA-LPBA 챔피언십' 남자부 결승에서 다비드 마르티네스를 상대로 매섭게 샷을 구사하고 있다. PBA김영섭이 '휴온스 PBA-LPBA 챔피언십' 남자부 결승에서 다비드 마르티네스를 상대로 매섭게 샷을 구사하고 있다. PBA
    김영섭은 고교 졸업 뒤 19살에 고향인 경남 창원의 한 공장에 취직해 첫 출근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불법 유턴 차랑에 치어 100일 넘게 병상에 누워야 했고, 오른 발에 큰 상처를 입어 뒷꿈치 재건 수술까지 받았다. 의족이나 목발을 사용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장애 6급 판정이 나왔다.

    여기에 김영섭은 일찍 결혼하게 돼 2000년 첫째, 2002년 둘째를 낳는 등 20대 중후반부터 가정을 책임져야 했다. 김영섭은 "밀레니엄 베이비에 이어 한일월드컵 베이비까지 낳았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이어 "불편한 다리와 일찍 결혼해 가정을 꾸려야 하는 조건들이 힘들었지만 당구가 좋아서 쳤다"면서도 "그러나 당구 선수를 해서는 애들을 키우기가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큐를 놓고 생업에 뛰어들었다. 김영섭은 "어머님께서 마산 어시장에서 장사를 하셨는데 같이 일을 배웠다"고 했다. 둘째를 낳은 2002년부터였다.

    하지만 당구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김영섭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2007년부터 당구장 매니저를 하면서 다시 큐를 잡았다"고 말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듯 운명이었다. 당구장도 2년 동안 운영하기도 했다. 다만 선수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매니저가 더 나았다.

    전국장애인체전을 휩쓸었다. 김영섭은 "3쿠션과 1쿠션까지 금메달을 다수 따냈다"고 했다. 더 큰 물에서 놀고 싶었다. 그래서 김영섭은 2019년 PBA 출범과 함께 프로로 전향했다.

    비장애인, 특히 최고의 선수들과 대결이 쉽지는 않았다. 김영섭은 "경기를 하면서 자신이 없던 적은 없었다"면서 "PBA 방식이나 환경들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적응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육체적으로 힘든 건 아니지만 오래 서 있다 보니 다리가 붓는다"고 했다. 큰 걸림돌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다른 선수들에게는 없는 핸디캡.

    '휴온스 PBA-LPBA 챔피언십' 남자부 결승 뒤 시상식에 나선 김영섭. PBA'휴온스 PBA-LPBA 챔피언십' 남자부 결승 뒤 시상식에 나선 김영섭. PBA
    하지만 김영섭은 멋지게 이겨냈다. 김영섭은 "우승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가족들은 결승에 간 것만으로도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라고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아내는 결승에 올라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라면서 "아이들도 중간 고사 기간이라 경기를 보진 못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준우승 상금 3400만 원도 크다. 이전까지 누적 상금은 2000만 원이었다. 김영섭은 "아이들이 국립대를 가서 학비는 들지 않고 장학금을 받는다"고 자랑하면서 "집사람이 알아서 할 것이기에 상금에 대한 권한은 없지만 응원해주신 팬들에게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밝혔다.

    이제는 우승을 노려볼 만하지 않을까. 김영섭은 "어차피 평생 당구를 할 거 같은데 꾸준하게 열심히 하면서 좋은 성적이 가끔 나오면 좋겠다"면서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승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웃었다. 그런 김영섭의 미소에 장애의 그늘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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