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윤창원 기자지난달 28일 인사청문회부터였다. 당시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2022 개정 교육과정'에 '자유민주주의'를 표기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논란을 예고했다.
"자유민주주의는 이념으로, 이를 주입해서는 안 된다"는 무소속 민형배 의원의 질의에 대해 이 장관은 "자유민주주의는 헌법 가치다. 민주주의도 여러 가지가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그냥 민주주의와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한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2011년 이명박 정부에서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을 할 때도 그랬다. 역사과 교육과정 시안 개발을 책임졌던 '역사 교육과정개발 정책연구 위원회'의 뜻을 무시하고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꿔 '개정 역사과 교육과정'을 고시, 위원 대다수가 사퇴하는 등 파문이 인 바 있다.
다시 이 장관이 교육부 수장을 맡게 된 지 이틀 만인 9일, 교육부는 15명의 정책연구진 의견을 묵살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표현을 삽입한 '2022 개정 교육과정안'을 행정예고했다.
교육부는 "역사 교육과정의 경우 현대사 영역에서 '자유'의 가치를 반영한 민주주의 용어 서술 요구가 제기돼, 행정예고안에 '자유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용어를 명시했다"고 밝혔다. 고등학교 한국사 과목 성취기준 및 해설에 '자유민주주의' 및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반영하고, 중학교 역사 과목 해설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반영했다.
역사교과 정책연구진은 교육부의 거듭된 요청에도 '민주주의'로 포괄적으로 표현하는 게 맞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헌법 전문, 관련 법규, 역대 교육과정 사례, 국민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는 이유를 들어 '자유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포함시켰다.
교육부는 그러면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로 대체하는 것은 아니며, 맥락에 따라 자유민주주의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용어를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행정예고안 중 고교 한국사 해설에는 '민주주의'라는 표현이 들어있다고도 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9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및 특수교육 교육과정 개정안 행정예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하지만 이에 대해 '무늬만 자유민주주의·민주주의 병기(竝記)'일뿐, 실제로는 '자유민주주의 회귀'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박래훈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가장 큰 기준인 성취기준에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 정부수립 과정을 탐색한다'고 돼 있다"며 "다른 부분(해설)에 민주주의가 들어갔으니 병기라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과거에 자유민주주의를 교육과정에 무리하게 집어넣었을 때도 4.19 이후라고 이야기를 해오다, 이제는 아예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우리나라 현대사 전체를 자유민주주의로 규정하고 있다"며 이는 "과거보다 더 과거로 회귀하는 퇴행적인 교육과정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 장관이 교육부 장관에 재취임하자마자 이명박 정부 때 추진했던 뉴라이트 역사인식의 회귀를 선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교조는 "이 장관이 교과부 장관 시절 주장한 '자유민주주의'는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을 거치며 사라졌으나, 이 장관의 복귀와 함께 교육과정에 되살아났다"며 "역사 교과 교육과정에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무리하게 끼워 넣으면서 문맥에도 맞지 않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리나라 헌법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은 1972년 박정희 군사정권의 유신헌법에서 처음 등장해 오늘에 이르지만,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은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다.
보수진영에서는 '인민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도 있는 만큼 '자유민주주의'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역사학계는 '자유민주주의'는 독재정권 시절에 '반공이념'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측면이 있고, 무엇보다 우리나라 현대사의 발전과정을 모두 표현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며 '민주주의'로 표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