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희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지난 2020년 7월 고(故) 최숙현의 유골이 안치된 경북 성주군의 한 추모공원을 방문해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고(故) 최숙현 사건 이후 체육 지도자의 자격 요건이 강화됐음에도 미자격자(국가 자격증 미보유자) 규모는 여전히 등록 지도자의 40%를 상회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한체육회는 올해 6월과 7월 체육 지도자 자격 보유와 관련해 수년간의 추이 등을 자체 분석해 작성한 문건에서 이를 적시했다.
25일 CBS 노컷뉴스가 단독 입수한 대한체육회의 '경기인 등록 지도자 자격 관련 검토 보고(2023년 6월 대회 운영부 작성)' 및 '경기인 등록 개정(안) 심의(2023년 7월 대회 운영부 작성)' 문건 등에 따르면 지난 2020년 6월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출신 최숙현의 가혹 행위에 따른 자살 사건 발생 후 대한체육회는 지도자 정보 확인 등을 위한 목적으로 같은 해 11월 경기인 등록 규정을 개정했다.
개정된 경기인 등록 규정에 따라 지도자 등록 자격은 문화체육부 발행 체육 지도자 자격증 또는 교육부 발행 정교사 자격증 보유자로 제한됐다. 체육 지도자 등록 자격을 국가 자격증 소지자로 한정한 셈이다. 개정된 규정은 당초 2024년 1월부터 시행하기로 했으나 시기는 늦춰졌다. 대한체육회가 올해 7월 시행 시기를 2027년까지 3년간 유예한 것.
대한체육회는 시행 시기를 3년 유예하면서 그 이유로 현직 지도자들의 제도 시행에 대한 인식 부족에 따른 시험 탈락 등에 따라 국가 공인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한 인원이 지도자의 40% 이상인 점 등을 들었다. 이들이 지도자 미등록 상태로 활동하거나 직업을 잃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 유예의 주된 이유였다. 일선 체육 현장에서 지도 활동을 하고 있는 지도자들의 생계 유지와 국가 공인 자격증 취득 기회 제공을 위해 시행 시기를 늦춰준 셈이다.
그러나 경기인 등록 규정 개정 3년여가 지난 현재 등록된 지도자 중 국가 공인 자격증 소지자 수는 개정 전과 비슷한 실정이다. 3년이 지난 현 시점에 사실상 바뀐 것이 없는 점을 고려할 때 유예된 규정이 2027년 시행돼도 국가 공인 자격증 소지자 수가 눈에 띄게 증가할지 의문이다. 미 자격 지도자가 국가 공인 자격증을 획득하지 못해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지 못할 시 실업 사태 등 각종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자격증 미 보유자 '2020년 43.0%· 2023년 43.2%'로 제자리 걸음
CBS 노컷뉴스가 단독 입수한 대한체육회의 경기인 등록 개정안 심의 문건 중 경기인 등록 시스템에 등록된 지도자 자격증 보유 현황. 동규 기자경기인 등록 시스템에 등록된 체육 지도자 중 자격증 미 보유자 수는 2020년 1만5335명(43.0%)에서 올해 1만5786명(43.2%)으로 사실상 변동이 없다. 국가 공인 자격증 보유자 역시 2020년 1만6070명에서 올해 1만6424명으로 역시 제자리걸음인 상황이다.
지난 24일 열린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체육 단체 국정 감사에서도 체육 지도자 자격 문제가 등장했다. 임오경(민주) 의원은 이날 "경기인 등록 시스템에 등록한 지도자 자격 보유 현황을 확인해 보니 지난 3년간 국가 공인 자격증 보유자는 크게 늘지 않았다"고 관련 실태를 짚었다.
그러면서 국가 공인 자격증 보유자 규모가 수년째 제자리걸음인 이유를 따져 물었다. 이에 대해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은 "코로나 상황도 있었고 홍보가 덜 된 탓"이라고 답했다. 임 의원은 또 "(바뀐 규정으로) 현재 20%에 해당하는 국제 민간 자격증 보유자는 지도자 등록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임 의원은 "또 하나는 별도의 경기인 등록 시스템을 운영 중인 축구, 태권도, 핸드볼 등의 경우 대한체육회 시스템과 연동이 제대로 되지 않아 지도자 자격 보유 통계가 정확하게 집계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것들을 세밀하게 고려했어야 했다"고 질타했다.
"지도자 등록 못해 실업자 되면 이기흥 체육회장이 책임질 것인가"
대한체육회의 경기인 등록 지도자 자격 관련 검토 보고 문건 중 체육지도자 자격검정 미 시행단체 관련 표. 동규 기자임 의원은 특히 "체육 지도자 자격 검증 미시행 종목인 가라테, 바둑, e스포츠 등 9개 종목의 경우 자격 종목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2027년 규정이 시행되면) 다 자격을 상실해 실업자가 된다. 누가 책임져줄 것인가. 이런 부분들을 빨리 검토해 이 사람들도 자격증을 획득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국민체육공단 조현재 이사장은 "체육 지도자 자격 종목 신설 폐지 등에 관한 문화체육관광부의 고시가 정한 기준에 따라 자격 종목 심사위에서 결정을 하는데 계량, 비계량 심사 기준이 있다.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설명했다.
임 의원은 체육 지도자 자격과 관련한 CBS 노컷뉴스의 별도 취재에 "가장 큰 문제는 등록 지도자 중 국가 자격증 소지자가 많지 않아 제도가 시행되면 대규모의 지도자들이 무자격자로 전락하는 자격 상실 사태 발생 우려가 있다는 것"이라며 "지도자의 20%에 달하는 국제, 민간 자격증 보유자가 지도자 등록을 못해 실업자가 되면 이기흥 회장이 책임질 것인가"라고 대한체육회의 관련 행정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한체육회에서는 규정 시행 기간을 3년 더 유예해 준비할 시간을 준다고 했는데 여전히 지도자들의 인식 부족이 만연하고 지난 3년간 별 실적이 없었는데 시간을 더 준다고 해결이 되겠나. 앞으로 3년간 특단의 대책을 실시하지 않으면 또 여전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임 의원은 이어 "이뿐 아니라 (규정이 시행되면) 국내에서 활동 중인 (국가 공인 자격증이 없는) 외국인 지도자들은 어떻게 되나. 한국을 떠나야 하나. 예외 조항은 세밀하게 고려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체육 지도자 자격 검정 및 연수를 전담하고 있는 국민체육진흥공단도 규정 적용 전까지 최대한 많은 지도자들이 배출될 수 있도록 연수 기관, 교육 프로그램을 늘려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고 최숙현은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에서 팀 내 지도자와 선배 선수의 괴롭힘에 긴 시간 시달리다 2020년 6월 26일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생애 마지막 4개월 동안 경주시청, 검찰, 경찰, 대한체육회, 대한철인3종협회, 국가위원회 등 여러 기관에 고통을 호소했으나 어떤 보호도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