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괴물' 스틸컷. NEW 제공※ 스포일러 주의
'괴물'(怪物)이라는 단어 안에는 괴상하다는 뜻이 담겼다. 즉, 남들과 '다르다'는 의미다. 우리는 누군가를 '괴물'이라 낙인찍지만, '괴물'로 주홍 글씨가 새겨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누가 괴물을 만드는 걸까.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신작 '괴물'을 통해 던지는 질문들이다. 동시에 우리가 괴물이라 불렀던 누군가에게 괴물이란 단어가 가진 세 번째 뜻을 부여한다. 바로 남들과 다른 특별함을 지닌 반짝이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싱글맘 사오리(안도 사쿠라)는 아들 미나토(쿠로카와 소야)의 행동에서 이상 기운을 감지한다.
용기를 내 찾아간 학교에서 상담을 진행한 날 이후 선생님과 학생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흐르기 시작한다.
한편 사오리는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미나토의 친구 요리(히이라기 히나타)의 존재를 알게 되고, 자신이 아는 아들의 모습과 사람들이 아는 아들의 모습이 다르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이후 태풍이 몰아치던 어느 날, 아무도 몰랐던 진실이 드러난다.
외화 '괴물' 스틸컷. NEW 제공'아무도 모른다' '어느 가족'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 일상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칸은 물론 전 세계 평단과 관객을 사로잡아 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괴물'로 다시 평단과 관객의 마음을 훔쳤다.
일본 최고의 각본가로 알려진 사카모토 유지와 협업한 '괴물'은 몰라보게 바뀐 아들의 행동에 이상함을 감지한 엄마가 학교에 찾아가면서 의문의 사건에 연루된 주변 사람들 모두가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게 되는 이야기다. 감독 특유의 사려 깊은 시선과 따뜻한 감성으로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결국 '누가 괴물인가'라는 물음으로 돌아간다. 이를 위해 감독과 작가는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질문으로 향하도록 길을 낸다. '괴물'은 세 개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첫 번째는 싱글맘 사오리의 시점, 두 번째는 호리 선생님(나가야마 에이타)의 시점 그리고 세 번째는 미나토의 시선이다.
각 시선 속에는 시점의 주체가 바라보고 만나는 세상이 담겼다. 싱글맘 사오리에게 학교와 호리 선생님은 기이하고 부당하다. 미나토와 자신을 향한 이해할 수 없는 대응과 말들이 사오리의 내면을 난도질하고, 그에게 학교와 호리 선생님은 '괴물'이 된다.
호리 선생님의 시선에 담긴 세상 역시 부조리하다. 학부모들의 도를 넘은 항의 속에 교권은 추락하고, 학교의 평판을 위해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고개를 숙여야 한다. 호리 선생님에게는 학교의 시스템과 일부 학부모의 시선이 '괴물'과도 같다. 그리고 사건의 진실과 관계없이 자신을 폭력 교사로 낙인찍은 언론과 사회 역시 괴물일 뿐이다.
외화 '괴물' 스틸컷. NEW 제공아이인 미나토가 만난 시선에서는 어른들의 세상, 일률적인 규칙과 틀에 박힌 삶을 강요하는 사회야말로 '괴물'이다. 그렇지만 오히려 어른들과 세상은 자신과 요리를 괴물이라 부른다. 이 세 사람의 시점에서 만나는 인물들은 저마다의 시선처럼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그것이 세 사람이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괴물로 비치는 세상, 그 세상에서 순수하게 자신들을 지켜내는 것은 미나토와 요리 두 아이뿐이다. 어른과 사회의 시선 안에서, 어른과 사회로 인해 괴물이 된 둘은 서로에게만은 빛나는 세계가 된다. 둘에게 '괴물'은 단지 '괴상하게 생긴 물체'나 '괴상한 사람'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르고, 또 조금 특별하거나 귀중한 존재이기도 하다.
영화가 세 사람의 시선에서 동일한 상황과 행동, 말을 비춘 것은 바로 틀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한다'는 명제는 사실상 대부분이 '거짓'이 될 때가 많다. 우리는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막상 눈앞에 상황이 닥치면 쉽게 '나'의 입장, 내가 경험한 바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제3자의 눈으로 볼 때도 쉽지만은 않다.
'괴물'은 각자의 시선을 넘어 제3자의 시선이라는 게 때로는 얼마나 비겁하면서도 쉽게 타인을 오해하게 만드는지, 그리고 직접 상대방의 시선에서 상황을 바라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우면서도 쉬운 일인지 체험하게 만든다. 그리고 결국 부끄럽게 만든다. 타인을 함부로 '괴물'로 보는 우리야말로 '괴물'일 수 있다는 점을 스스로 깨닫게 만들면서 말이다.
외화 '괴물' 스틸컷. NEW 제공세 개의 시점을 하나씩 거칠 때마다 오해와 이해를 거쳐 부끄러움에 다다른다. 그렇게 영화 내내 서로 다른 시선으로 상대와 상황을 바라본다. 함부로 오해하고 타인을 낙인찍고 세상에서 격리하고 배제하려는 세상에서 과연 '진짜 괴물'은 누구이며, 괴물을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반복한다. 그 질문에는 우리 스스로 느꼈던 부끄러움, 즉 우리의 '시선'과 우리 사회의 관습 내지 고정관념 등으로 불리는 견고한 '구조'라는 답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질문과 답에 이르기까지 서로가 서로에게 괴물이 된 어른과 관객들은 미나토가 던진 "난 왜 태어났지?"라는 질문이 아프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러한 질문을 꺼내게 만든 데는 우리 어른들 역시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른과 세상이 오해와 낙인찍기에 빠져 있는 동안 아이들은 서로를 구원하고, 그들만의 행복을 찾는다. 사람의 뇌를 가졌건, 돼지의 뇌를 가졌건, 누군가에게 괴물이라 불릴지언정 '행복'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임을 어른들과 이 세상에 외치면서 말이다.
영화는 아이들을 좇아가는 과정에서 세심함을 잃지 않는다. 자칫 단순히 어른들의 이기심과 부조리에 파묻혀 희생되는 아이들만을 그리지도 않고, 아이들만의 세계와 그들의 마음을 함부로 다루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괴물'을 진정 빛나게 만드는 지점이다.
'괴물'을 빛나게 하는 사려 깊은 지점은 또 있다. 바로 아이들을 괴물로 낙인찍은 그 어른들을 쉽사리 '괴물'이라 낙인찍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안에 속해 있는 어른들 역시 가해자이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괴물을 만들어내고 그들을 배척하는 사회와 제도 속에서 우리는 늘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다. 싱글맘 사오리와 호리 선생님처럼 말이다. 이것이 '괴물'을 여타의 영화와 다르게 만드는 지점이다.
외화 '괴물' 스틸컷. NEW 제공누구든, 어느 사회든 내부에 괴물은 존재한다. 그렇기에 '괴물'의 시선과 질문은 일본을 떠나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다. 또한 어떤 사건 혹은 상황의 결과를 접할 때 비로소 다시 되새기지만 잊고 사는 것들, 잊었던 것들을 다시금 꺼내 되짚어 보는 일들, '괴물'은 바로 이러한 과정을 재차 밟을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된다.
'괴물'은 고레에다 감독을 왜 '거장'이라 부르는지 다시 한 번 명백하게 입증했다. 일상을 포착하는 그의 시선과 어린 배우들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연출력은 사카모토 유지의 각본과 만나 진정 빛을 발한다. 여기에 안도 사쿠라, 나가야마 에이타 등 성인 배우는 물론 쿠로카와 소야, 히이라기 히나타 등 어린 배우들이 빛나는 열연으로 관객들의 눈과 마음을 놓아주지 않는다.
거장의 사려 깊으면서도 아름다운, 그렇지만 확고한 질문을 만나는 일이야말로 올해가 가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다.
126분 상영, 11월 29일 개봉, 12세 관람가.
외화 '괴물' 메인 포스터. NEW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