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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B컷]아내 살해한 변호사의 변명…경찰은 '혈흔'으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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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

    [법정B컷]아내 살해한 변호사의 변명…경찰은 '혈흔'으로 답했다

    편집자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아내를 둔기로 때려 살해한 혐의(살인)를 받는 대형 로펌 출신 미국 변호사. 연합뉴스  아내를 둔기로 때려 살해한 혐의(살인)를 받는 대형 로펌 출신 미국 변호사. 연합뉴스 
    국내 유명 법률사무소 출신의 미국변호사가 법정에 섰습니다. 이혼소송 중이던 아내를 때려 숨지게 한 살인 혐의 피고인 신분으로 말이죠.

    법조인인 그는 여느 살인 혐의 피고인들처럼 "살인에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죽일 생각은 없었다, 혹은 사망할 줄 몰랐다는 말이죠.

    오늘 '법정B컷'은 경찰 과학수사대가 그의 말을 조목조목 반박한 그날의 법정으로 가보겠습니다. 그 중심에는 말 없는 목격자라 불리는 '혈흔'이 있었습니다.

    살인 고의 없었다?… 과학수사대는 다르게 봤다


    미국변호사 A씨는 지난해 12월 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아파트에서 이혼 소송으로 별거 중이던 아내를 둔기로 폭행하고,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로 붙잡혔습니다. A씨는 재판에 와서는 살인 고의가 없었다며 살인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공판이 열린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법 법정은 방청객으로 가득 찼습니다. 피해자의 유족들이 방청석을 가득 메웠죠.

    재판이 시작됐고, 재판부는 먼저 방청석을 향해 말을 건넵니다. 별안간 가족을 잃어 황망하고 분노한 유족들에게 전하는 당부의 말이었죠.

    2024.03.19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 아내 살해 변호사 공판 中
    재판부 "여러분들이 피고인의 어떠한 행동, 변호인의 어떠한 한마디에 굉장히 크게 반응을 보이십니다. 엄벌 탄원서를 읽어보면 제가 신경 쓰지 못한, 재판부가 신경 쓰지 못한 부분에 대해 '이렇게 반응하시는구나' 생각이 듭니다"

    "다만 법정에서는 그걸 억누르셔야 합니다. 피고인의 죄상을 밝히는 것이 이 법정의 의무이듯이 피고인의 변명을 듣는 것도 법정의 의무입니다. 일희일비하지 마시고 감정적 동요에 자신이 먹혀 들어가는 것을 멀리 해주시길 바랍니다"

    피고인의 변명을 듣는 것도 법정의 의무라 밝힌 재판부, 그렇게 이날 재판은 시작됐고 서울경찰청 과학수사대 소속 경찰이 증인으로 나섭니다. 범행이 벌어진 종로구 아파트 현장을 감식한 담당자죠.

    현재 A씨는 피해자와 몸싸움이 벌어지자 고양이 장난감으로 폭행하고, 제압하기 위해 목을 누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목을 조른 것이 아니라 누른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죠. 참고로 고양이 장난감은 쇠로 만들어진 막대 형태의 둔기였습니다.

    살인 고의가 없었다는 A씨의 주장. 과학수사대의 분석은 어땠을까요?

    2024.03.19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 아내 살해 변호사 공판 中
    검사 "혈흔은 어디서 발견됐습니까?"

    경찰 "작은방 앞쪽과 작은방에서 크게 확인됐고 벽면과 서랍장, 천장까지 튀었고요. 후방 휘두름 혈흔 이탈도 발생했습니다"
     

    검사 "거실 통로와 작은방 좌우 벽면, 작은방 내부… 서랍장은 어디였습니까?"

    경찰 "장식장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가기 전에 피고인 유전자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몇 개 물어봤습니다"
     

    검사 "기억나는 것이 있습니까?"

    경찰 "제가 그전에 현장에 있던 혈흔을 보니 피해자는 낮은 자세, 피고인은 높은 자세였습니다. 그리고 피고인이 제압이 안 돼서 손으로 목을 누르면서 머리를 가격했다고 얘기해서 혈흔 형태와 일치한다고 봤습니다"

    검사 "피고인이 손으로 피해자 목을 누르면서 쇠 파이프를 휘둘렀다고 진술했습니까?"

    경찰 "네"
     

    검사 "증인이 말한 얼굴에서 나타난 특이점은 목을 어느 정도 눌렀을 때 발생합니까?"

    경찰 "정확한 것은 어렵지만 목을 맨 변사에서 많이 관찰됩니다. 체중까지는 아니어도 상당히 많은 압력을 실어야 됩니다"

    A씨는 거실에서 폭행을 시작해 작은 방까지 따라가 둔기를 휘두른 것으로 조사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검찰은 A씨가 바닥에 누워있는 피해자의 목을 졸라 숨지게 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를 증명하려는 검사의 질문이 이어집니다.

    2024.03.19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 아내 살해 변호사 공판 中
    검사 "혈흔의 방향, 최종 위치를 보면 (피고인이 폭행하며) 거실에서 작은 방으로 들어간 것으로 보이는데 맞나요?"

    경찰 "네. 그렇게 추정됩니다"

    검사 "현장에서 바닥이 아닌 문이나 벽에서 발견된 혈흔 중에 뭉개진 형태를 확인한 것이 있나요?"

    경찰 "뭉개진 형태라면 어떤 것을 말하는 건가요?"
     

    검사 "혈흔이 튀었는데 누가 접촉해서 혈흔이 번졌거나 그런 형태 말입니다"

    경찰 "벽면 쪽에선 그런 것을 못 봤습니다"

    검사 "검시 사진을 제시합니다. 목 부위인데 상처를 보면 상당한 힘이 상당 시간 가해진 것으로 보이는데 맞나요?"

    경찰 "동일하게 생각합니다. 조흔이라고 하는 손톱자국도 확인됩니다"

    검사 "피해자가 서 있는 상태에서는 이 정도 상처를 내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경찰 "네. 맞습니다"
     

    검사 "만약 피해자가 서 있는 상태에서 피고인이 목을 졸라서 상당한 힘을 가한 경우라면 피해자가 벽이나 구석에 몰려있는 상황에서나 이 정도 힘이 가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현장 벽면에선 혈흔이 뭉개지거나, 피해자의 머리에서 나온 피가 벽면에 뭉개진 형태로 있는 것은 발견되지 않았죠?"

    경찰 "네"


    이번엔 A씨 측 변호인이 질문에 나섭니다. A씨가 목을 누른 행위로 피해자가 사망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 A씨 측의 주장입니다.

    2024.03.19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 아내 살해 변호사 공판 中
    변호인 "목이 졸려 사망한 경우에는 설골이 쉽게 부러지죠?"

    경찰 "네"

    변호인 "부검 결과 설골 골절이 확인되지 않았고 목 부위 손상 상황에 대해 부검의의 소견 만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된 것도 알고 계시죠?"

    경찰 "네"

    변호인 "설골 골절이 확인되지 않는다면 강한 힘으로 목을 졸랐다고 볼 수 없는 것 아닌가요?"

    경찰 "부검 결과에서 경부압박 질식과 두부 손상 둘 다 확인됐습니다. 꼭 설골 골절로 사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부압박 질식은 경부가 압박되는 과정에서 뇌로 가는 혈액이 끊겨서 사망에 이르는 것도 있고, 설골 골절 만으로 죽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설골 골절은 과정 중에 개연성 있는 단서일 뿐이지 꼭 연관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변호인 "손으로 목을 졸랐다고 단정하기에는 흔적이 명확하지 않잖아요?"

    경찰 "경부압박 질식사에 발견되는 손상으로 보기에 충분했습니다. 양손으로 졸랐다고 하기에는 부족할 수 있지만 한 손으로 눌렀다, 졸랐다고 보기에는 충분했습니다"


    경찰의 판단 근거는 혈흔… "강하게 휘둘렀다"


    변호인과 경찰의 질답이 계속 이어집니다.

    2024.03.19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 아내 살해 변호사 공판 中
    변호인 "살해할 정도로 강하게 상당 기간 목을 조른 경우에는 (가해자의) DNA가 검출되는 경우가 다수 존재하죠?"

    경찰 "피해자가 현장에 그대로 있었다는 전제 하에 채취하면 가능합니다. 일반적인 사건에서는 맞습니다. 다만 이 사건은 저희가 도착하기 전에 119에서 응급조치하는 과정에서 식염수 등 여러 물질이 개입했기 때문에 훼손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모든 사건에서 이렇다고 하는 것은…"
     
    재판부 "일반론에 대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정도로 정리하겠습니다" 

    살인 혐의를 적용한 검찰, 그리고 살인 고의가 없었다는 A씨의 주장이 충돌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학수사대 소속 경찰은 또 하나의 중요한 증언을 내놓습니다. 바로 혈흔의 형태였습니다.

    2024.03.19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 아내 살해 변호사 공판 中
    재판부 "이탈 혈흔의 위치나 크기 등에 따라서 피해자에게 가해진 충격의 강도를 추정할 수 있습니까?"

    경찰 "네. 이탈 혈흔이라고 말하는 큰 그룹에서 벗어난 비산흔이 발견되는데 고속, 중속, 저속으로 구분합니다. 고속일수록 혈흔이 작고 가늘게 나타납니다. 현관과 작은방 문을 기준으로 이탈 혈흔이 굉장히 작은 고속 비산 혈흔으로 나타났습니다"

    "고속 비산 혈흔은 강한 힘으로 내려쳐야 나옵니다. 후방 휘두름 이탈 혈흔 역시 매우 작게 나타났습니다. 뒤로 휘두르는 과정에서도 굉장히 세게 휘두른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은 작고 가늘게 튀어나간 '고속 비산 혈흔'을 근거로 A씨가 둔기에 상당한 힘을 실어 피해자를 폭행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둔기를 휘두를 때 팔이 뒤로 젖혀졌다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이때 '후방 휘두름 이탈 혈흔'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이 혈흔 역시 작은 형태였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입니다. 물방울이 맺힌 어떤 물체를 빠른 속도로 휘두를수록 물방울 입자가 작게 날아가는 것을 떠올리시면 이해하기 편할 겁니다.

    2024.03.19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 아내 살해 변호사 공판 中
    변호인 "비산혈흔과 이탈혈흔 구분이 모호할 수 있고요. 머리카락을 흔들거나, 피가 튀거나 여러가지 과정에서도 혈흔이 날아갈 수 있죠?"

    경찰 "머리카락을 흔든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변호인 "격렬하게 저항하는 과정에서 피가 튀는 경로는 다양할 수 있지 않나요?"

    경찰 "그런 행위가 없었다고 판단한 이유는 혈흔의 방향성 일치하고 좌우 방사 형태로 퍼진 형태로 관찰됐습니다. 머리를 흔들었다고 하면 한쪽으로 퍼져야 하지만, 두부 출혈 상태에서 때렸다고 보면 자연스러운 형태입니다. 그래서 가격행위라고 봤습니다"

    재판 내내 경찰 과학수사대의 답변은 단호했습니다. 목을 조른 상태에서 폭행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목 조름은 물론 둔기를 휘두를 때에도 강한 힘이 실린 상태였다고 판단했죠.

    이날 공판에서 A씨 측은 현장에 출동한 서울종로경찰서 경찰들이 진술거부권 등을 고지하지 않았다며 절차상 하자를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위법수집증거를 지적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 'A씨가 목을 졸랐다고 진술했다'는 취지로 적힌 경찰의 수사보고서에 대해서도 그런 진술을 한 적이 없다며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죠. 반면 경찰들은 긴급체포할 당시에 미란다원칙을 고지하는 등 절차를 지켰고, 수사보고서에도 이상이 없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A씨가 살인 고의를 다투고 있는 가운데, 다음 재판에는 2명의 법의학자가 증인으로 나섭니다. 혈흔에 이어 이번엔 또 어떤 말 없는 목격자가 등장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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