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미 2011년부터 이란과의 비밀 협상을 추진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파이낸셜타임스(FT)가 26일 보도했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상원의원 시절인 2011년 12월 8일 오바마 대통령의 비밀 지시를 받고 오만 수도 무스카트로 날아가 이란과의 비밀 협상 채널 구축의 기반을 닦았다.
오만의 술탄 카부스 빈 사이드 국왕은 미국과 이란의 대화를 주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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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채널을 활용한 본격적인 양자 협상은 올해 3월부터 시작됐다.
동맹국은 물론 미국 정부 안에서도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 가운데 윌리엄 번스 국무부 부장관, 조 바이든 부통령의 선임 외교 보좌관인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의 이란 전문가인 푸넷 탤와르가 비밀 협상에 참가했다.
비밀 협상은 강경파인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당시 대통령의 집권 말기 시작됐지만 급진전한 것은 대화파인 하산 로하니 대통령의 등장 이후였다.
이때부터 미국은 이스라엘 등 주요 동맹국과 우방에 이 비밀 대화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비밀 협상은 이란 핵 협상의 최종 타결 때까지 계속됐다.
번스 부장관은 P5+1(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독일)과 이란의 공식 협상에 참여하는 미국 대표단의 일원이 아니었지만 제네바의 회담장 주변에서 이란 관리들과의 막후 협상을 벌였다.
파이낸셜타임스는 "34년 동안의 적대 관계를 깨려면 정교한 외교가 필요했다"며 "비밀 협상이 역사적 합의의 길을 닦았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미국과 이란의 물밑 대화는 역사적인 합의를 이끄는 데 기여했지만 다른 관련국이 양국 간 대화의 깊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에 P5+1과 이란 사이의 공식 협상에 난항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P5+1과 이란은 지난 7∼9일 진행된 제네바 회담에서 최종 타결 직전 상황까지 갔지만 프랑스가 이란의 아라크 중수로 문제를 들고 나오며 타결을 거부한 탓에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와 관련, 한 외교관은 이란에 회의적인 시각이 강한 프랑스에 비밀 협상의 자세한 내용이 제공되지 않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모험을 감수한 이란과의 비밀 대화 채널 구축은 이란 핵문제 해결에 관한 오바마 대통령의 강한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그는 취임 연설에서 "당신들이 주먹을 펴면 우리는 손을 내밀 용의가 있다"고 언급하는 등 집권 초기부터 이란 핵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내에 논란이 일 수 있는 외교정책을 밀어붙이려고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비밀 협상을 활용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다.
한국전쟁 이후 적대 관계를 유지하던 미국과 중국은 1971년 헨리 키신저 당시 국무장관의 비밀 방중을 통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역사적인 1972년 방중을 성사시키며 극적인 관계 개선을 한 적이 있다.
비밀 접촉을 바탕으로 한 이란 핵협상의 잠정 타결로 미국의 외교정책이 군사력에 바탕을 둔 힘보다는 대화 쪽으로 바뀌고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란 핵협상의 잠정 타결 이후 시리아 문제 해결을 위한 시리아 평화회담이 내년 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게 됐다면서 일련의 대화 움직임은 미국 외교 정책의 방향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시리아 평화회담은 겉으로는 유엔이 주도하는 모양새이지만 실제로는 미국이 키를 쥐고 있다.
신문은 "이란 핵협상과 시리아 평화회담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은 미국의 대외 정책이 대화를 통한 외교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