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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과 밤이 거꾸로'' 새벽 2시에 깨어나는 육거리시장

청주

    ''낮과 밤이 거꾸로'' 새벽 2시에 깨어나는 육거리시장

    소매상인 물건사러 몰리는 ''''깜짝 도깨비시장''''

    청주 육거리시장의 신새벽은 소란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육거리시장의 심장부가 아니라 사지의 끄트머리 모세혈관의 피돌기에서부터 역동성이 느껴진다. 육거리 새벽시장은 새벽 2시면 깨어나기 시작한다. 육거리에서 속칭 꽃다리 쪽으로 인도 위에 펼쳐지는 난장이기에 좋은 자리를 잡으려는 노점상들이 자정무렵부터 진을 쳤다가 이 시간이 되면 장사를 준비하는 것이다.

    전국에서 모여든 농산물들을 부리기 위해 화물차들도 어깨싸움을 벌이느라 경적소리를 돋우고, 상자에 든 짐에서부터 늙은 호박 덩어리, 양파자루, 배추포기 등이 내려져 차곡차곡 쌓이는 새벽 서너시 쯤이면 얼추 손님 맞을 준비가 마무리 된다.

    손님이 가장 많이 몰리는 시간은 오전 5시를 전후해서다. 육거리시장을 제외한 청주시내 10여군데 크고 작은 재래시장의 소매상인들이 대부분 육거리 새벽시장에 와서 그날 팔 물건을 구입하기 때문이다. 짐을 부리던 화물차가 빠진 자리에 이번에는 콜밴 차량들이 꼬리를 문다. 낮에는 청주시 수동 인쇄골목에서 용달업을 하는 이영생(48)씨도 매일 새벽 육거리시장을 찾는다. 이씨는 새벽나절 주로 가경동에서 야채 노점을 하는 김순이(65·가명) 할머니의 장보따리를 운반해주고 하루 2만원 정도 일당을 받는다.

    낮과 밤을 거꾸로 사는 생활

    육거리시장 새벽회 소속인 강수철(62·가명)씨

     

    육거리시장 새벽회 소속인 강수철(62·가명)씨는 새벽나절에 잠깐 자리를 펴는 노점이지만 고구마, 양파, 오이, 버섯 등을 상자로 파는 어엿한 도매상이다. 손님을 맞는 시간은 오전 5시부터 8시 반까지 3시간 남짓에 불과하지만, 도매상인 강씨의 노동은 하루 전날 오후 8시부터 시작된다. 산지로 직접 물건을 구하러가거나 청주보다 장바닥이 넓은 대전시 오정동, 노원동의 농산물시장에서 물건을 구매한 뒤 청원군 문의면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면 새벽 1시.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겁지만 아내와 함께 발걸음을 돌려 시장을 찾는다.

    ''''옛날에는 새벽시장을 도깨비시장이라고 불렀는데, 새벽에 섰던 장이 한낮엔 파장이 되는 것도 신기하지만 시세를 알면 물건을 헐값에도 사고 자칫 잘못하면 비싸게도 살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 강씨의 설명이다.

    강씨는 그래도 ''''육거리시장의 한 근이 대형매장이나 동네 슈퍼마켓의 한 근과 같을 수는 없다''''며 ''''젊은 사람들은 농산물까지 죄다 인터넷에서 구입하는 세상이 됐지만 덤 때문에 육거리 새벽시장을 찾는 단골손님들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찾는 사람마다 단골손님이라 그런지 때로는 짓궂은 농담도 오고가는데, ''''오이끼리 가격 차가 너무 난다''''고 따지는 손님에게는 ''''이쁜 거는 ''''뺑끼칠''''을 해서 더 비싸다''''고 둘러대며 흥정을 거부한다.

    문의가 고향인 해방동이 강씨는 당초 보충역으로 군대가 면제됐지만 1968년 김신조 등이 남파돼 청와대를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1970년대 초 군입대가 결정돼 결국 베트남전쟁까지 참전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15년 전부터 자신이 재배한 농작물을 조금씩 내다팔던 강씨는 10년 전부터 아예 농산물 도매상으로 본래의 직업을 바꿨고 이제는 농사가 부업이다.

    보리밥 팔아 7남매 키운 나원남 할머니

    청주 육거리시장의 보리밥 할머니 나원남(75)씨

     

    끼니때가 되어도 밥술을 뜰 여유도 없을 만큼 분주한 새벽시장이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장터 한구석에서는 길표 보리밥이 30년째 인기다.

    보리밥 할머니 나원남(75)씨가 대접에 보리밥이나 찰밥을 고봉으로 퍼주면 다리없는 교잣상에 둘러앉아 콩나물, 무채, 열무 등을 듬뿍 넣어 비벼먹는 패스트푸드 방식이다. 목이라도 메일라치면 총각무를 넣어 끌인 구수한 시래깃국이 해결사다.

    석교동이 집인 나 할머니는 새벽 1시부터 밥을 짓고 국을 끓여 5시면 어김없이 시장에 나온다. 한참 때는 하루 100여 그릇을 팔았지만 단골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온다는 요즘은 기껏해야 50그릇이면 하루장사가 끝난다.

    ''''1인분에 2000원인 이 보리밥으로 7남매를 기르고 다 가르쳤는데, 지금은 아들·딸들이 반대해서 그냥저냥 하루 2~3시간 장사를 한다''''는 것이 나 할머니의 설명이다.

    길표 보리밥집은 시장 아낙들의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공간이다. 매일 이곳을 찾는다는 한 할머니는 ''''젊었을 때 나무절구에다 보리를 찧어 밥을 해댔는데 보리눈깔이 빠지면 뒤지게 혼나 다시는 보리밥을 안 먹으려고 했는데…''''라며 말끝을 줄이다가 ''''이제는 소화도 잘 되고 별미라서 먹는다''''고 토를 단다.

    움직이는 本다방 주인 김화진 할아버지

    청주 육거리시장의 本다방 주인 김화진 할아버지

     

    새벽시장에서 커피를 파는 김화진(69) 할아버지는 움직이는 本다방의 주인이다. 낡은 80cc 오토바이에 찬장 같은 구조물을 얹은 본다방은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육거리시장에 나타난다. 잠 덜 깬 몽롱함을 깨우는데는 설탕이 듬뿍 든 본다방 커피가 제격이라는데, 커피나 프림을 타서 저을 일도 없이 컵을 대고 꼭지를 틀면 바로 커피가 흘러나온다.

    명절 두 번만 빼고 363일 새벽시장에 나온다는 김 할아버지는 고향인 경북 상주에서 45년 전 청주로 터전을 옮긴 뒤 30년 동안 양은냄비를 팔았다. 자전거에 오토바이에 손수레를 연결해 청주시내 골목골목을 누빈 것. 15년 전부터는 오토바이를 개조해 본다방을 운영하고 있다.

    김 할아버지는 ''''나이 먹어서 할 일은 아니지만 건강을 생각해서 일을 한다''''면서도 ''''나 바뻐''''라는 말을 남기고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김 할아버지는 5시30분에 상당공원으로 다방을 옮긴 뒤 오전 나절에만 영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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