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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혼내서 미안" 유재학 격려에 보답한 이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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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혼내서 미안" 유재학 격려에 보답한 이대성

    챔피언결정전 6차전 승부처에서 자유투를 던지는 모비스 이대성 (사진/KBL)

     

    이대성이 자유투 라인에 섰다. 2번의 기회가 주어졌다. 자유투는 농구에서 득점을 올릴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이대성의 생각은 달랐다. 엄청난 중압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10일 오후 창원에서 열린 울산 모비스와 창원 LG의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6차전.

    모비스가 75-73으로 앞선 종료 18.2초 전, 이대성이 상대 반칙으로 자유투를 얻었다. 모비스는 이전 수비에서 천대현이 역전을 노렸던 양우섭의 3점슛 시도를 블록해 우승을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이대성의 자유투에 따라 분위기가 뒤바뀔 수도 있었다.

    이대성은 1쿼터 막판 2개의 자유투를 모두 놓쳤다. 74-73으로 쫓긴 4쿼터 종료 52.4초를 남기고 얻은 자유투 기회에서도 1개를 성공하는 데 그쳤다. 마지막 자유투 시도를 앞두고 자신감이 흔들릴 수도 있었다.

    이대성은 침착하게 1구를 성공시켰다. 점수차는 3점이 됐다. 2구마저 성공한다면 사실상 모비스의 승리가 굳어지는 분위기. 그 순간 이대성은 과거 힘들었던 자신의 농구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고 한다. 아니, 일부러 힘들었던 시절을 떠올렸다.

    이대성은 "내가 농구를 하면서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일부러 그렇게 했다. 정말 힘겨울 때가 많았고 그때도 버텼는데 지금 이 순간을 못 버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유투를 던졌다"고 말했다.

    2구가 들어갔다. LG가 승부를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사실상 사라졌다. 모비스는 79-76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결정적인 자유투 2개를 성공시킨 이대성은 프로 데뷔 첫 해에 우승 감격을 누렸다.

    모비스 이대성이 우승을 차지한 후 그물을 자르는 우승 기념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KBL)

     


    ▲"너를 너무 나무란 것 같아 미안했다" 이대성을 살린 유재학의 격려

    이대성은 정규리그 막판 발목을 다쳐 오랜 기간 결장했다. 4강 플레이오프에 출전하지 못했다.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발목은 여전히 부은 상태였고 통증도 있었다.

    이대성은 뛰고 싶었다. "우승 기회가 쉽게 오는 것은 아니다. 나도 큰 무대에서 뛰어보고 싶다. 어차피 내가 팀을 이끄는 역할이 아니기 때문에 수비든 뭐든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뭐든지 하고 싶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이대성은 조금씩 출전 시간을 늘려갔다. 유재학 모비스 감독도 아직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 이대성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가 터졌다.

    모비스는 2차전 3쿼터 막판에 6점차로 앞서있었다. 양동근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 투입된 이대성이 사고를 쳤다. 두 차례 결정적인 수비 실수가 연속 실점으로 이어진 것이다. 모비스는 순식간에 6점 차 리드를 까먹었고 결국 4쿼터에서 역전패를 당했다.

    유재학 감독은 이대성을 벤치로 불러들여 혼쭐을 냈다. 호통 소리가 코트에 울려퍼질 정도였다. 경기가 끝난 뒤에는 "그때 대성이가 수비를 느슨하게 한 것이 뼈아팠다"고 독설을 남겼다.

    그 당시 이대성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대성은 "감독님한테 혼났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내가 잘못한 것이 맞기 때문이다. 우리 팀에서는 수비를 못하면 경기에 뛸 수 없다. 내가 잘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대성은 경기 후 라커룸에서의 일화를 소개했다. "유재학 감독님께서 따로 부르시더니 아까 나를 너무 나무란 것 같다고 오히려 미안하다고 말씀해주셨다. 그 말을 듣고 오히려 힘을 얻었다. 더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후 이대성은 각성했다. 기록은 보잘 것 없었지만 LG의 해결사 문태종을 봉쇄하는 역할에 충실했고 효과도 컸다. 이대성은 2차전 이후 평균 18분을 뛰며 팀에 공헌했다. 발목 통증은 나날이 악화됐지만 이를 악물고 뛰었다.

    어떻게든 팀을 돕겠다는 의지는 날이 갈수록 커졌고 이는 6차전 마지막 자유투를 던질 때의 집중력으로 이어졌다.

    ▲"우승하자 부모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라"

    이대성은 사연이 많은 선수다. 농구 엘리트 코스를 밟아가던 이대성은 중앙대 3학년 때 갑자기 중퇴를 선언, 미국 무대에 도전장을 던졌다. 더 큰 무대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젊음의 패기였다. 또한 이례적이었다. 그래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더 많았다.

    이대성은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남자농구 2부리그 소속인 브리검영 대학 하와이 캠퍼스에서 농구를 계속 했다. 1년 만에 돌아오기는 했지만 그 곳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유재학 감독은 "대성이가 오히려 미국에서 기본기의 중요성을 배워왔다"고 밝혔다.

    농구를 하는 아들을 위해 한평생 뒷바라지를 해왔던 부모는 무모해 보이기까지 했던 이대성의 미국 진출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이대성은 "부모님께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 내 의지가 강했고 열심히 설득을 했다. 우승을 하는 순간 부모님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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