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가뭄="">은 호주의 정치부 기자 출신 정치평론가 애너벨 크랩이 가사 노동 불평등 현상을 촘촘하게 분석한 보고서이다.
"고위직에 오른 여성이 부족하다기보다는 고위직 진출을 도와줄 사람, 즉 '아내'가 집안에 부족한 거죠." 저자의 이 대사에는 이 책의 제목이 왜 '아내 가뭄'인지가 잘 드러나 있다. 일터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노동 문제로 취급하지만 집안에서 벌어지는 '노동 문제'는 단순한 '집안 문제'로 끊임없이 사소화되는 현상,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저출산 문제, 젊은 층의 감소와 노년층 증가에 따른 사회적 부담의 확대, 장기화된 불경기와 이미 고착화된 저성장. 이 수많은 심각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실마리 또한 바로 이 대사 속에 담겨 있다. 페미니즘이 단지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닌 인류를 구원할 영역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이유다.
'일과 가정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들'을 돕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던 토니 애벗 총리(자유국민연립당 출신 28대 총리)가 내각에 여성을 단 한 명만 임명하자 문제의 심각성을 더욱 크게 자각한 저자는 '아내의 유무와 사회적 성공의 상관관계'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이 책은 그 수많은 통계와 자료를 집약한 결과물이다.
이 책의 내용은 얼핏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인다. 지난 수십 년간 여성의 사회 진출은 꾸준히 늘었지만, 아직도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은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인식되고 있고, 그 결과 사회 각계각층에서 여성 지도자를 만날 수가 없다는 현실을 재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살펴보면 상상을 웃도는 수준이다. 예를 들어 전업주부 남편의 비율을 보면 1979년 2퍼센트였던 것이 현재 3.5퍼센트 수준으로 거의 변화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퓨리서치 센터, 미국 사례). 이 정도면 '여성 해방'이라는 단어를 꺼내기 민망할 지경이다. 가사 노동 시간에 대한 OECD 국가의 평균 통계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아내가 3시간 반 동안 가사 노동을 할 때 남편이 3시간 동안 함께 가사 노동을 하는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선진국의 사례도 등장하지만 평균을 내보면 남편은 2시간 21분, 아내는 4시간 33분으로 거의 두 배 차이가 난다.
이 책에 등장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사례는 더욱 심각한데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남편 40분, 아내 3시간 14분으로 자그마치 다섯 배 수준이다(통계에 따라 열 배 차이가 나는 자료도 있다). 과연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데도 가사 노동을 꺼내지 않고 페미니즘을 논할 수 있을까? 저자의 주장대로 우리는 '일터에서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인지에만 관심을 가질 뿐, 가정과 일터를 연계시키지' 않는다. 또한 그 결과 젠더의 불평등 문제는 더욱 고착화되고 이는 사회의 변화,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직업 세계에 진입하는 여성의 수를 어떻게 하면 늘릴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췄지만 앞으로는 가사 노동의 세계에 진입하는 남성의 수를 어떻게 하면 늘릴 수 있을까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책 속에는 육아와 가사 노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시도하는 남성들이 일터에서 어떤 차별적 시선을 받고 있는지 생생한 증언들이 담겨 있다. 남성이기 때문에 사회적 패자, 왕따 취급을 당하는 사례가 빈번한 것이다. 전업주부 남편이 받는 차별과 사회적 시선 폭력은 말할 것도 없다. 또한 이러한 편견이 워낙 견고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가사 노동 불변의 법칙, 즉 여성은 생계 부양 능력이 커져도 가사 노동 시간이 오히려 더 늘어나고, 남성은 생계 부양 능력이 없어도 오히려 가사 노동 시간이 여성보다 줄어드는 현상에 대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더불어 법과 제도적 장치로서 남성의 육아휴직 제도를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CBS노컷뉴스 김영태 기자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