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군함도' 스틸컷(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역사가 심용환이 영화 '군함도'를 둘러싼 역사 왜곡 논쟁에 대해, 그간 강제징용에 무심했던 우리네 자기 반성이 빠져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심용환은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긴 글을 통해 "'군함도' 가지고 왜 나한테 그러는지 모르겠으나 하도 물어봐서 편하고 좀 독하게(?) 답변 남깁니다"라고 운을 뗐다.
"봐야 하나? 본인 자유겠죠. '라이언 일병 구하기'부터 '어벤져스', '덩케르크'까지 다양한 영화를 모두 편하게 보고 즐기지 않나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경우에는 너무나 단순 치졸한 플롯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참상이 잘 묘사되었고, '어벤져스'는 정말 말 그대로 재밌는 상상 가운데 즐거움을 누리고 하는데 왜 '군함도'는 못 본다는 거죠? 사람들이 영화 '남영동' 보고 흥분하기 보다는 '변호인' 같이 적절하게 재밌지만 어느 정도 사실과 환상이 합쳐진 영화보면서 더 깊이 공명하고 그러지 않나요?"
그는 "역사 왜곡? 글쎄요. 정확히 말씀드리죠"라며 글을 이었다.
"영화 초반부에 나온 강제징용의 실상은 우리 영화 역사에서 처음, 그리고 비교적 잘 묘사가 되었어요. 아무것도 아닌 듯 스쳐지나가는 장면 하나하나에 고증적 요소가 들어있는데 이 부분을 캐치하는 영화 기사 하나 보기 힘들더군요. 선대금 형식으로 징용자들에게 이동경비를 부담하게 하는 것부터 소지섭이 젖은 다다밋장 들면서 화내는 모습 같은 것들은 모두 정확한 역사적 사실이고 우리 영화에서 처음 나온 것들이죠."
이어 "허구 또한 있습니다. 광복군이 핵무기 사용을 알았다던지, 유력 독립운동가가 징용현장에서 노동을 했다던지, 광복군이 그를 구하러 침투하려 했다던지, 노동자들이 대탈출을 했다던지 하는 것들은 모두 영화적인 상상력이죠. 아무래도 제가 연구자니까 더 예민하지 않았을까요?"
심용환은 "그런데 예를 들어 영화 '암살'은 어떻죠? 100% 허구에 불가능한 이야기예요. 김구와 김원봉이 사이가 좋았다? 말도 안되는 소리죠. 영화 '밀정'은 어떻죠? 황옥이 애국자였다? 이 또한 조금도 확신할 수 없고 영화의 후반부 전체가 상상이죠. '덕혜옹주' 같이 정말 질낮은 영화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가 꽤 괜찮게 감동받은 장면들 좋다는 영화들은 대부분 허구에 의존하고 있습니다"라고 지적했다.
◇ "매우 도덕적인 견지에서 '심판'하는 듯한 태도에 동의 안 돼"
(사진=역사가 심용환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이상한 애국주의! 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툭 까놓고 이야기하죠. 몇 해 전 몇 백만이 보았던 '귀향'만큼 못 만들고, 위안부 이야기를 왜곡한 영화도 드물죠. 강제동원의 현실은 차라리 '군함도'가 훨씬 정확합니다. 군인이 마을에 와서 가족유착관계가 좋은 딸을 끌고 갔다? 그런 증언록을 읽어보신 적이 있나요? 전 여태까지 수년째 위안부 관련 자료를 보고 있지만 귀향에 나온 절반 이상은 사실 오히려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 것들 투성이었습니다."
그는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 사람들이 비판을 하거나 지적을 했었나요? 제가 끝내 글을 안 쓰려다가 쓰게 된 이유는 명확합니다"라며 "이상한 애국주의에 빠져 있고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굉장히 경직화된 사고를 하려고 한다는 거예요"라고 꼬집었다.
"보기 싫으면 안보면 그만이죠. 재미없으면 재미없다고 말하면 그만이에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매우 도덕적이고 고증적인 측면으로 비판을 하면서 뻣대는 희한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니까요. 냉정히 물어볼게요. 이 영화 나오기 전에 '징용'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나요?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문제인 줄 정말로 지적할 수 있나요? 솔직히 말해 상영관 독점에 관한 비판을 제외하곤 정말 빈깡통 같은 비평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 같아요."
심용환은 "양비론? 아니! 저는 매우 어설프지만 감독이 중요한 지적을 했다고 생각해요"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위안부 중개 민간업자의 대부분이 조선인이다? 역사적 사실이죠. 하시마섬 말고도 숱한 곳에서 기생형 친일파들이 같은 동족 등쳐먹은 거? 역시 사실이죠. 소지섭, 황정민 등을 사용해서 매우 어설프게 이 문제를 건드렸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졌다라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선과 악의 구도로 식민지배 시대를 바라볼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매우 애국적이고 바른 역사관이라고 생각할 것인지 저는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이어 "일본 잘못했죠. 누가 잘못하지 않았다고 했던가요. 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이 순응했고, 악용했고, 같은 조선인을 괴롭혔다는 사실 같은 것에 대해서 왜 이야기 못하죠?"라며 "프랑스의 경우 1970년대 이후 나치의 유태인 학살에 적극 협력한 프랑스인들의 죄에 대해 인정하고 사죄하고 최근에는 알제리 식민지배 문제 등에 관해서 고뇌하고 있는데요"라고 지적했다.
"모든 영화가 그렇듯 저 역시 이 영화를 보면서 이래저래 아쉬운 것이 많아요. 하지만 매우 도덕적인 견지에서 영화를 '심판'하는 듯한 태도에 대해서는 도무지 동의가 안 되네요. '이미 알고 있었고, 애도하고 있었다'식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 모두 모르고 있었고, 국가건 국민이건 누구도 징용에 관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죠. 어떤 의미에서건 전 자기반성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이리 쉽게 조리돌림을 하는지 어처구니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