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서울고검, 서울중앙지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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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와 관련해 주요 혐의로 꼽히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를 둘러싼 검찰과 법원의 치열한 법리 공방이 예상된다.
검찰이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 재판 등에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잇달아 무죄로 판결한 법원의 판단에 "법리 오해"라며 공개적으로 정면반박했기 때문이다.
20일 검찰 등에 따르면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전날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등검찰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헌법이나 정부조직법에서 어떤 기관의 역할과 권한을 명시한 경우도 있지만, 대개 공무원의 직무를 법령으로 설정하는 것은 입법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무원의 직무 권한과 범위가 어느 정도에 해당하느냐는 법 해석의 문제"라며 "과거 대법원 판례를 보면 직권남용에 있어서 직무라는 개념은 기본적으로 공무원의 지위와 관련해 사실상 넓게 봐왔다"고 덧붙였다.
특히 윤 지검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 사건에서 무죄가 난 '친인척 회사 다스 소송을 챙겨보라'고 한 것은 대통령 직무권한 밖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실제로는 사익을 위해 한 것이기 때문에 권한 남용"이라며 "권한 남용이 되면 지시를 받은 공무원은 법률상 의무없는 것이기 때문에 의무없는 일을 시킨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지검장은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원이 명문으로 한정한 것은 법리를 잘못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는 취지냐" 묻자 "네"라고 답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정계선 부장판사)는 지난 5일 이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두 가지 직권남용 혐의를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대통령 재직 시절 자동차 부품업체인 다스의 미국 내 소송을 지원하고 차명재산의 상속세를 절감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공무원을 동원했다는 혐의다.
하지만 재판부는 "대통령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가 될 수는 있지만 직권남용 범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직권남용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지시가 대통령의 권한에 속해야 하는데 소송 지원이나 상속세 절감 방안 등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을 대통령 권한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도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보수단체를 지원하도록 요구한 직권남용 혐의를 받았지만, 마찬가지 논리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특정 단체에 자금지원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법령상 근거가 없다는 게 판단의 이유였다.
뿐만 아니라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도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인턴 직원을 채용하도록 압박을 가해 직권남용 혐의를 받았으나 무죄가 나왔다.
직권남용과 관련한 주요 재판에서 줄줄이 무죄 판단이 나오는 상황인만큼, 법조계에서는 이들 판결을 놓고 법원이 사법부 수사에 대비해 '무죄' 포석을 미리 깔아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법행정권남용 의혹 수사에서도 핵심은 결국 직권남용 혐의를 어떻게 적용, 해석하느냐에 달려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검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나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고영한·박병대·차한성 전 법원행정처장 등이 특정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행정처 심의관이나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하여금 판사 뒷조사를 시키는 등 의무 없는 일을 하도록 했다고 보고 있다.
기소후 단계에서 법원이 과연 이를 얼마만큼 받아들일 지 여부도 놓쳐서는 안될 '쟁점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