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료품 판매점 대표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바닥에 머리를 박은 직원. (사진=독자 제공)
"이런 개 XX XXX들 오늘 나 말리지마. 다 디졌어. 퇴사들 해. 부당 해고로. 한 달 (월급) 더 줄테니. 당장 짐 싸서 가 집에. XXX들아“"네가 내 개가 돼준다며. (중략) 나 구속되는 일 있어도 법정 합의는 없어."
전북 김제지역 한 대형 식료품 판매점 대표가 직원들에게 폭언과 가혹행위를 일삼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경찰도 수사에 나서는 등 파장이 커지는 모양새다. 해당 대표는 직장 내에서 실수를 저지른 직원 얼굴과 실명을 실은 광고 전단을 수만 장가량 출력, 인근 지역이나 고객들에게 살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대표는 점심시간을 12분으로 제한하거나, 회식 자리에서 옷을 벗고 외설적인 춤을 추라고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표의 갖가지 방침에 부응하지 못해 징계를 받은 직원들은 몸을 숙여 머리를 땅에 박는, 이른바 '원산폭격' 인증 사진 등을 찍어 대표에게 전송하고 겨우 용서를 받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대표는 '설명할 이유가 없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A대표가 단체채팅방에서 직원들에게 던진 폭언들. (사진=독자 제공)
◇일상화된 폭언·가혹행위, "'깍두기 씹지 마라'며 뒤통수 때리기도"CBS노컷뉴스가 확보한 직원 단체채팅방에 따르면 폭언은 일상화돼 있었다. 2017년 5월 20일. 판매점 내 칼국수 진열대의 선입선출(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상품을 맨 앞으로 꺼내두는 일)이 지켜지지 않아 문제가 되자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직원 채팅방에 불호령이 떨어졌다.
A대표는 직원들을 향해 "배가 기울어져도. XXXX들. 쳐다만 보고 있어. 물갈이 하든 가게를 접든 해야지"라고 했다. '기합을 준 뒤 몸이 땀으로 젖지 않으면 휴직 처리하겠다'며 으름장도 놓았다.
개인 영상을 직원 단체방에 올린 직원에게 A대표는 "아예 XX를 해라 잘못 보냈다고. XXXXX …(중략)…(전 직원들은) 오늘까지 이거 보고 느낀 점 써"라고 했다. 이에 직원들은 "쉬는 날도 회사 잘 돌아가나 걱정하면서 쉬는 사람 있는데 개념 좀 가지고 다녔으면 한다", 또는 "침 뱉어버리고 싶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해당 식료품 판매점에서 약 1년간 일했다는 B씨는 이밖에도 당시 자신이 마주했던 상황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평소 대표가 12분 안에 식사를 마치라고 강요한다"며 "'빨리 먹어야 하니 깍두기를 씹지 말라'고 하고, 장난이겠지만 뒤통수도 때렸다"며 "그게 당하기 싫은 직원들은 1, 2분 안에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했다.
회식자리에서 대표의 지시에 따라 상의를 탈의한 전 직원 B씨. B씨 등 당시 자리에 있었던 직원 일부는 '사장의 지시로 B씨가 옷을 벗고, 외설적인 춤을 춰야 했다'고 입을 모았다.(사진=독자 제공)
만행은 근무시간을 넘어 회식 자리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판매점을 퇴사한 한 직원은 "A대표가 회식자리에서 B씨를 앞으로 불러내더니 상의를 벗으라고 했고, 급기야 옆에 서서 노래를 부르던 동료의 몸에 올라타 허리를 다리로 감고 '위아래로 흔들라'고 했다"며 B씨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B씨는 "살면서 처음 당하는 곤욕에 수치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러한 횡포에 입사한 지 일주일 된 직원이 그만두기도 했다. 지난해 3월 3일 한 수습사원은 "일주일간 평생 먹을 욕을 여기서 다 먹은 것 같다. 말씀대로 그만두는 게 맞다고 생각해 그만두기로 했다"고 말한 뒤 단체대화방을 떠났다.
해당 식료품 판매점에서 만든 광고 전단. (사진=독자 제공)
◇ 가혹한 사내 징계…직원은 '원산폭격 인증'하며 사죄B씨는 또 '더 황당한 일을 겪었다'며 기자에게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판매점 홍보 전단으로 추정되는 종이였다. 식료품 가격표 하단에는 직원 유니폼인 붉은 조끼를 입은 남성 세 명이 미소 띤 얼굴로 서 있는 사진이 배치돼 있었고, 사진 좌측에는 이들의 실명과 함께 각자가 행한 잘못들이 적혀 있었다. 직원이 흡연 장소를 지키지 않았거나 외상 영수증 1장을 중복으로 입금했다는 등의 이유였다.
B씨는 사진이 찍힌 경위 등에 대해서도 쏟아냈다. 그는 "어느날 임원 C씨가 밖으로 불러서 따라 나갔는데, 갑자기 '웃으라'며 사진을 찍었다. '왜 찍느냐'고 물어도 C씨가 말없이 웃고 말길래 '전 직원 다 찍나보다' 했다"며 "언젠가 출근해서 보니 계산대 직원들이 손님들에게 이 종이를 나눠주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회사는 전단 10만 장을 출력해 인근 지역 아파트, 상점 등에 뿌렸다"고 주장했다.
B씨에 따르면 해당 판매점의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회식에 빠진 다음 날 식당으로 오래서 갔더니 다짜고짜 휴직 처분을 내렸다"며 "A대표에게 직접 말하기 부담스러워 C씨에게 해결책을 묻자 '벌서는 사진을 찍어 대표에게 보내면 봐줄 것이다'고 해 그대로 했다"고 말했다.
당시 B씨에게 내려진 처분은 '15일 휴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월급 절반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그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원산폭격' 자세를 취한 뒤 동료에게 사진 촬영을 요청했다. 대표에게 사진을 전송한 이후 징계가 3일로 줄었다고 B씨는 회상했다.
A대표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지금은 폭언을 아예 하지 않는다. (제기된 의혹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든다"며 말을 아꼈다. 임원 C씨는 "점심시간을 12분만 주고, 원산폭격을 시키는 게 말이 되느냐. 폭언도 한 적 없다"고 했다. 이어 "전단을 돌린 건 맞지만 사진은 사용 목적을 설명하고 허락을 받은 뒤 찍었다. 전단 수도 10만 장이 아닌 수천 장 정도"라고 덧붙였다.
해당 식료품 판매점 벽에 붙은 각종 자보들. (사진=김민성 기자)
◇ 판매점 직접 가보니…'안방까지 찾아가 사죄하게 하겠다'지난 4일 찾은 판매점 구석구석 갑질의 흔적이 엿보였다. 직원들은 가슴과 등에 이름과 직급이 적힌 명찰이 달린 붉은 색 조끼를 입고 분주하게 일하고 있었다. 그 머리 위로 직원들을 겨냥한 안내 문구가 판매점 출입구 곳곳에 붙어 있었다.
'직원 불친절을 목격하셨다면 전화 주세요. 감봉조치 하겠습니다', '짐이 많은 경우 카운터 앞에서 큰소리로 욕하면 실어드립니다. 40세 이하 욕 금지', '직원 불친절 목격 시 전화 주시면 안방까지 찾아가 사죄하도록 하겠습니다' 등이었다.
직원 험담도 있었다. 'XXX 자식이 자꾸 생선 코너 자리를 비웁니다', 'XX이가 중국산 숙주나물을 국산으로 잘못 표기해 8봉지가 적발돼 과태료 30만 원을 물었습니다' 하는 식이었다. 특정 상호명을 언급하며 'XXXX 사장은 빨리 내 돈 보내라. 개자식아. 내 외상값 빨리 갚아'라고 망신을 줬다.
김제경찰서는 이러한 정황을 확보해 A대표를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이 피해자와 피의자 등을 삼자대면하는 등 수사가 본격화한 뒤에도 A대표는 여전히 피해 직원에 대한 압박을 멈추지 않고 있다.
A대표가 B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들. (사진=독자 제공)
A대표는 지난달 12일 B씨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네가 내 개가 돼준다며. 이번에도 훈방해줘서 고맙다며, 존경한다며. …(중략)… 네 젊음, 건강함 이런 거로 열심히 살아야지. 나 구속되는 일 있어도 너한테 법정 합의는 없어"라고 했다. 또, "무고와 위증 이런 걸로 오히려 네가 당할 거다"고 했다.
B씨는 A대표에게 "저같이 못배운 사람이 와서 월급 다른 회사보다 50만 원 더 준다고 해 당하면서도 참고 일했다"며 "지금도 당하고 있을 직원들에게 이제라도 잘해달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