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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B컷]준강간 중에 피해자가 깨면 미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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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

    스페셜 법정B컷

    [법정B컷]준강간 중에 피해자가 깨면 미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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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 "심신상실·항거불능 깨져 준강간 불능미수" 판결
    서울고법 "피해자 두려움에 심신상실 계속" 새 해석
    "사회 변화에 따라 법관의 적극적 성찰 필요"
    법관의 법해석·법형성, 어디까지 가능할까

    그래픽=고경민 기자
    ※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2019.3.28. '준강간죄의 불능미수'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
    김명수 대법원장 "형법 제299조에서 정한 준강간죄에서 행위의 대상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는 사람이고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는 그러한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피고인이 준강간의 고의로 피해자를 간음하였으나 피해자가 실제로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지 않은 경우에는 실행의 수단 또는 대상의 착오로 인해 준강간죄의 구성요건이 충족될 가능성이 처음부터 없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피고인이 행위 당시에 인식한 사정을 놓고 일반인의 위치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할 때 준강간의 결과가 발생할 위험성이 있었다면 불능미수가 성립합니다."

    그냥 강간도 아닌 '준강간'도 어려운데 여기에 또 '불능미수'라니. 마치 외계어를 보듯 딱 읽기 싫어지실 텐데요. 오늘 살펴볼 법정B컷은 지독한 음주문화가 공고한 한국사회에서 가장 빈번히 발생하는 성범죄 양태 중 하나입니다.


    상대방이 술이나 약, 잠에 취하는 등 심신상실·항거불능 상태인 점을 이용해 간음(준강간)을 했는데, 피해자가 범행 직전이나 도중에 정신을 차린 사건들이죠. 피해자가 당혹감과 두려움, 수치심 등으로 즉시 저항하지 못하고 계속 의식이 없는 척 했을 때 가해자를 처벌 할 수 있는지, 도대체 어떤 죄목으로 처벌할 것인지를 두고 대법관 전원이 한 차례 머리를 맞댄 겁니다.

    문제의 사건에서 가해자는 자신의 집에서 배우자, 피해자와 함께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가 배우자가 먼저 잠들자 피해자가 술에 취해 항거불능 상태라고 보고 강간했습니다.

    강간죄가 적용되려면 폭행과 협박으로 피해자의 의사를 제압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 탈락. 준강간죄의 경우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어야 하는데 피해자는 의식이 있는 상태였으니 이 역시 애매합니다.

    이때 판사들이 생각해 낸 묘수가 바로 '준강간죄의 불능미수' 개념입니다. 형법 제27조는 '실행의 수단 또는 대상의 착오로 인하여 결과의 발생이 불가능하더라도 위험성이 있는 때에는 처벌한다. 단,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라고 불능미수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설탕을 독약인줄 알고 다른 사람을 살해하려는 목적으로 먹이거나, 이미 죽은 사람을 산 사람으로 착각하고 죽이려 한 경우죠. 범행 목적은 애초부터 달성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사정이 조금만 달랐다면 정말 사람이 죽었을 위험이 있다고 판단될 때 원래 살인죄 법정형의 하한을 절반으로 감형한 상태에서 처벌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취했거나 잠에 들었다고 생각해서 그 상태를 이용해 (동의를 구하지 않고) 성폭행을 했는데 알고 봤더니 피해자가 의식이 있었던 경우 이같은 불능미수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게 대법원의 논리입니다.

    많은 준강간 사건에서 사건 당시 심신상실·항거불능 상태였어야 할 피해자가 범행 장면 일부를 구체적으로 기억하거나 중간에 정신이 들었다는 점을 근거로 가해자가 '합의된 성관계'라며 무죄를 주장하곤 합니다. 심신상실·항거불능 상태가 아니었다면, 왜 저항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냐는 거죠. (반면 피해자가 기억이 없을 땐 진술이 불분명하다고 무죄 주장을 해 여러모로 입증이 까다로운 범죄입니다.)

    그래픽=고경민 기자
    대법원은 이같은 가해자들의 주장에 선을 그으며 피해자의 상태를 함부로 무죄 방어 수단으로 삼지 않도록 한 겁니다. 일반인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해 봤을 때 당시 피고인이 정신적·신체적 사정으로 성적 자기방어를 할 수 없는 사람을 준강간할 위험성이 있었다면 유죄가 성립한다는 거죠.

    그런데 여전히 찝찝함은 남습니다. '준강간' 범행이 이미 이뤄졌는데 어떻게 '미수'라는 딱지를 붙여 감형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 위에서 본 설탕독살범이나 시체살해범은 결국 피해를 발생시키지 못해 미수에 그쳤지만, 준강간죄의 불능미수범은 어찌됐든 피해자에게 성폭행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 부분에서 대법원보다 한 발 더 나아간 판결이 있어 소개합니다. 심지어 전원합의체 선고보다 1년 일찍 나온 판결입니다.

    2017.12.7. 서울고법 형사9부(함상훈·정재오·이영창) 준강간 사건 판결
    재판부 "피해자는 옆에 다른 남자 동료가 잠들어 있는데도 상사이자 평소에 믿고 있었던 피고인이 자신의 하의를 벗기고 추행하는 사실을 발견해 정신적 혼란을 겪는 와중에 성행위임을 알면서도 피고인을 거부하지 못했습니다."

    "성행위가 이루어지리라고 예상하기 어려운 장소였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피해자가 경악할 만한 상황이었고 … 피해자는 마음 한 편으로 '피고인이 실수한 것이고 곧 정신을 차리고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할 정도로 평소 피고인에 대한 믿음도 강했습니다. … 그런데 피고인은 이러한 믿음을 깨뜨리면서 피해자가 피고인에 대해 더 이상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는 정신적 혼란 상태를 초래했습니다. 피해자가 깨어 있는 것을 안다면 피고인이 어떤 위해를 가할지 예상할 수 없어 극심한 두려움에 계속 잠든 척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 옆에서 자고 있던 동료 역시 술에 만취한 상태여서 쉽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이고, 오히려 이러한 사정이 피해자로서는 소리를 크게 내는 등 섣불리 행동할 수 없도록 작용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위의 사건에서 술에 취해 자던 피해자는 가해자의 준강간 도중 정신이 들었지만 저항하지 못하고 계속 의식이 없는척 했습니다. 당시에도 재판부와 연구관들은 불능미수 처리를 유력하게 검토했습니다. 그러나 피고인의 준강간 범행이 이뤄졌는데 미수범으로 처벌한다는 것이 과연 일반인의 법감정이나 정의감정에 맞는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법·정의감정에 맞춰 법관이 처벌을 달리하면 마녀재판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던 때, 준강간 피해자들의 심리에 대해 설문·연구한 자료가 재판부의 결론을 바꾸는 결정적 한 방이 됐습니다.

    추지현, 준강간의 피해자다움과 '합리적 의심', 2017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성폭력 판례 뒤집기 토론회
    2017년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주최한 '성폭력 판례뒤집기' 토론회에서 나온 내용이었는데요. 준강간 상황에서 중간에 깨어난 피해자들이 즉각 저항하지 못하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 연구 결과였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피해자들은 △당황해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아서 △당시엔 성폭력인지 몰라서 △가해자가 이후로도 나에게 불이익을 줄까봐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심리 상태를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을 추가로 실시해 당시 상황과 심리 상태를 심층적으로 검토했고, 결국 '피해자가 피고인을 두려워 해 계속 자는 척을 했을 때에는 피해자가 여전히 심신상실의 상태에 있는 것과 같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해당 가해자는 준강간의 불능미수가 아니라 기수가 인정돼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이 확정됐습니다.

    해당 재판부는 1953년 제정된 형법 제299조 준강간 조문 속 심신상실·항거불능의 의미를 2017년 현실 속 준강간 피해자들의 상황에 맞게 확대하는 법해석을 한 셈입니다.

    실제 강간죄 역시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2012년 개정 전 '부녀')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라는 한줄 조문이 7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문 속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는 시대의 법감정을 따라 크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까지는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의 명백한 폭행과 협박이 있을 때만 강간이 인정됐다면, 1979년 대법원은 이 정의를 '피해자의 반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라고 수정했습니다. 다시 1992년 대법원은 폭행·협박을 판단할 때 단순히 사건 당시 폭행·협박의 내용과 정도만을 고려하지 말고 '유형력을 행사하게 된 경위와 피해자와의 관계, 성교 당시의 정황 등 제반사정을 종합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가해 정도만이 아니라 피해자의 상태가 더 반영될 수 있게 된 겁니다. 이후로도 2000년대 들어 대법원은 폭행·협박 판단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법관의 적극적인 법해석·법형성이 위험하다는 지적도 상당합니다. 엄연히 피해자는 기존 심신상실·항거불능이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상태에 해당하지 않는데, 법관이 마음대로 그 뜻을 확장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반하고, 법적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죠. 법을 만들어내는 입법자가 따로 있는데 법관이 사실상 법을 선포하는 수준의 법해석을 하면 정당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위의 준강간 사건을 심리했던 정재오 부장판사는 '법관의 법형성과 법선언'이라는 논문에서 그와 같은 지적에 대해 이렇게 답했습니다.

    정재오 서울고법(현 대전고법) 부장판사 '법관의 법형성과 법선언' - 2018 법관연수 연구논문집
    "법률문언(법조문)은 주변영역으로 갈수록 그 외연이 더 불명확하고 특정한 사안이 여기에 포섭되는지가 더 모호하다. 그런 외연마저 사회의식이 변화하고 국민의 법감정과 정의감이 변화함에 따라 요동하면서 더욱 모호하고 불명확하게 된다. 새로운 법적 분쟁이 계속해서 발생할 수 밖에 없고, 법원이 무엇이 법인지를 판단해주기를 모두가 기다린다. 이런 법적 분쟁은 사실상 사법권이 아니면, 다른 국가권력은 사실상 해결하지 못한다. 이에 법관은 법률문언 범위의 경계선을 끊임없이 확인하여 더 명확히 설정하고 때로는 그 경계선을 새로 그어야 한다."

    기존에 그어둔 법해석의 경계가 적절한지에 대해 법관이 현실세계에 발을 디디고 끊임없이 물으며 성찰하는 것 역시 법적안정성을 수호하는 것 못지않은 법관의 중요한 임무라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법관의 주관이 개입할 수 밖에 없는 위험이 있지만, 이는 심리를 공개해 법정 변론과정에서 논증하는 절차를 거치고 그 논증의 내용과 결과를 판결문에 충실히 기재함으로써 방지할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이한형 기자
    '안희정 위력 성폭력'', '텔레그램 성착취' 등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던 사건들을 거치며 법원은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파기하거나 새로운 범죄유형에 대해 전에 없던 강도 높은 처벌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성인지감수성만 강조한 무리한 판결이다', '기존 양형체계에 안맞는 과한 형벌이다' 등의 비판과 우려들이 늘 따라붙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를 변호해온 한 변호사는 "사회는 완만하게 변화하지 않고 계단식으로 발전한다. 기존 시각으로는 다소 파격적인 시도이더라도 수차례의 검증 과정에서 논거의 정당성이 확인된다면 결국은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위력은 있으나 행사하지 않았다'는 안희정 1심 판결이 배척되고, 디지털성폭력에 대한 몰이해가 점점 옅어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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