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에서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징벌적 손해배상'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에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윤창원 기자
"이 법 자체가 헌정사의 오점인데 다수결로 밀어붙일 성격도, 여론으로 밀어붙일 성격도 아니다. 헌법의 기본원리에 관한 법, 민주주의 근간에 관한 법인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법리적으로
위헌성이 아주 농후하다."
우리나라 1호 헌법연구관이자 헌법 분야 최고 권위자인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더불어민주당이 강행처리 수순에 돌입한 '언론중재법(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 대해 "법 자체가 궤변에 불과하다"며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단체들과 함께 직접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이 전 처장은 23일 CBS와의 전화인터뷰에서 "현행 법으로 악의적이고 고의적인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얼마든지 형사처벌할 수 있고 법원에서 재량으로 손해배상을 할 수 있다. 우리처럼 완벽하게 언론 피해로 인한 구제제도가 잘 갖춰져 있는 법제도 드물다"며 "언론피해자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은 선진국, 민주국가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 전 처장은 이번 개정안의 핵심인 최대 5배에 달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도입에 대해서는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을 위배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형법상의 명예훼손죄 제도와 정정보도청구권, 반론권 등의 보장을 통해 허위·조작 보도에 대응할 수 있는 상황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추가로 도입하는 것은 과하다는 것이다.
이 전 처장은 "미국 같은 나라도 제조물 책임에서 아주 제한적으로 도입한 법이고 우리도 일반적으로 도입하려다 안했던 건데 이 법을 언론피해자에 징벌적 손배제를 도입해 최대 5배까지 법으로 정한 것은 그 자체가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없다"고 개탄했다.
그는 "법조인으로서 헌법을 실무로 했고 공부한 사람으로서 이 법은 국격을 현저하게 떨어뜨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나중에 두고두고 이런 법은 해외에서도 교과서 사례로 소개할 수 있는, 부끄러운 법이 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용상의 위헌성은 명백하다. 미국에서도 피해 입증이 어렵거나 도덕적 해이의 우려가 없는 경우에 예외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는데 언론중재법은 두 가지 다 해당되지 않는다."헌법학자인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했다.
장 교수는 CBS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미국과 같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보도에 대해서만 특별히 인정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에 대한 특별한 제한이 되며, 결국 언론에 대한 억압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 및 운용에 관한 현행법의 체계에도 맞지 않는다. 사안 자체가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해야 하는 경우라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피해 입증이 어렵거나 도덕적 해이의 우려가 없는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는데 언론중재법은 두 가지에 다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언론의 자유는 국민의 기본권이자 민주주의의 기초로서 매우 중요하다"며 "그렇기 때문에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입법은 다른 입법에 비해 훨씬 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계는 물론 법조계, 학계, 시민단체 모두 반대하는 언론중재법을 더불어민주당이 강행처리하려는 것에 대해 장 교수는 "거대 여당의 폭주"라며 "다수석인 180석을 갖게 되며 그동안 공수처법 처리 등에서 보듯 계속 반복됐고 상임위원장을 독식하며 야당이 무력화됐다. 법사위와 본회의의 실질적 논의없이 다수결로 밀어붙이겠다는 건데 박정희, 전두환 시절 했던 것과 뭐가 다른가?"라며 비판했다.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위헌적 요소 때문에 법원에서 실질적으로 적용하기 어렵고, 결국 헌법소원이 제기돼 위헌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현업단체들은 임시국회에서 언론중재법이 통과된다면
헌법재판소에 위헌 소송을 낼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