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가운데 20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앞에 고인을 추모하는 근조화환들이 놓여져 있다. 박종민 기자최근 초등학교 교사가 폭행을 당하는가 하면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는 등 교권 추락을 보여주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지난달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6학년 담임교사가 교실에서 제자에게 심한 폭행을 당해 전치 3주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받아 출근하지 못한 채 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 18일에는 서초구의 서이초등학교 1학년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데, 그 배경에 심각한 교권침해가 자리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 사안은 아직 경찰 수사 중이지만, 고인의 외삼촌은 20일 기자회견에서 "학부모 갑질이든, 악성 민원이든,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든, 그것이 이번 죽음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밝혀져야 한다"고 성토했다.
교사들 "교권붕괴 심각한 수준…극심한 정신적 고통 호소 늘어"
서울 서초구의 서이초등학교 교사가 교내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시교육청 앞에서 해당 초등교사 유가족이 입장을 밝히고 있다. 황진환 기자교원단체와 교사들은 현재의 교권붕괴 상황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교사들이 학생지도는 물론 학부모와의 소통 과정에서 폭행이나 욕설, 악성 민원, 악의적인 아동학대 신고에 시달리는 등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인천에서는 2021년 11월 30대 학부모가 초등학교 교실에 들어가 수업 중이던 교사의 목을 조르고 욕설을 했다가 경찰에 입건됐다. 지난해 충남 천안에서는 손자가 잃어버린 휴대전화를 찾으려던 할머니가 교사와 다투는 과정에서 폭언과 삿대질을 한 사실이 알려졌다.
전교조가 지난해 9월 전국 유·초·중·고·특수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624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했을 당시, 응답자의 92.9%는 아이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아동학대로 의심받아 신고당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학생(학부모 포함)에게 폭행을 당한 교사는 1133명에 달했다. 교권 침해 심의 건수는 2020년 1197건에서 2021년 2269건, 2022년 3035건으로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학생부장을 맡고 있는 서울 동작고 최민재 교사는 "조금만 혼내면 학부모들이 민원을 넣고 교사들을 아동학대로 신고해, 교사들이 생활지도에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최 교사는 "학생들을 정당하게 지도할 수 있는 교권 관련 법률은 미비하다"며 "학원 선생님도 있고 해서, 교사에 대한 권위가 과거에 비해 실추되고 있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 도봉구에 있는 모 고교 교사는 "직접적인 폭력은 아니라고 해도 욕설이나 폭언 정도는 경험한 분들이 주변에도 꽤 있을 것"이라며 "그래도 실제 고소가 잘 안 된다. 일단 교장·교감이 본인들 승진 때문에 막는다"고 털어놨다.
이어 "만약에 고소를 했을 경우 그 이후의 직장 생활을 생각도 해야 한다"며 "학교 자체가 굉장히 보수적인 집단이어서 시끄러운 걸 굉장히 싫어한다"고도 했다. 그러니 교사들이 결국은 참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는 "교권은 교사의 권리가 아니라 '교사의 교육권'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교원단체들 "악성 민원 방지책 마련 등 실추된 교권 바로잡아야"
교원단체들은 초등학교 교사 사망사건 원인을 철저하게 규명하는 건 물론, 악성 민원 방지책 마련 등 실추된 교권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교사노조 정혜영 대변인은 "일부 담임 교사들의 경우 악성 민원에 시달리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며 "교육당국에서는 학부모가 교사에게 직접 수시로 연락해 민원을 제기하지 않고, 중간에 관리자를 통하거나 서면으로 하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국교총은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보호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즉시 통과시키라고 촉구했다. 또 무분별한 민원, 아동학대 신고에 대해서는 반드시 응당한 책임을 묻는 법‧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달란 입장이다.
한국교총 조성철 대변인은 "학생이나 학부모의 무분별한 악성 민원이나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교원들이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지금 교단에서는 '일부 선생님들의 교권 침해를 넘어선, 공교육 전체의 붕괴 상황을 보여주는 민낯이 아닌가'라는 우려가 상당히 높다"고 전했다.
"학교, 공동체 역량 약화…극단적 학부모 통제하는 완충장치 없어"
서울 서초구의 서이초등학교 교사가 교내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시교육청 앞에서 한 학생이 추모메시지를 쓰고 있다. 황진환 기자한국교원대 김성천 교수는 "최근 들어서 학교에서 갈등이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공동체적인 역량이 상당히 약한 상태"라며 "특히 학부모들이 조직화가 안 돼 있어서, 건강한 학부모들이 극단적인 학부모들을 통제하는 내부의 완충장치가 없어서, 곧바로 교사를 대상으로 민원을 넣거나 소송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분명히 문제"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학부모 교육 등 학부모 정책도 필요한데, 교육청의 예산이나 조직이 아주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교권을 확립하고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이 법적으로 충분히 보장돼 균형 잡힌 교육현장이 되도록 하겠다"며 21일 교원들과 '교권 확립을 위한 현장 간담회'를 갖기로 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최근 교사 폭행 사안 등 심각한 수업 방해, 교육활동 침해가 벌어지고 있고 학교폭력 관련 학생에 대한 교원의 생활지도를 무력화하는 악의적인 민원과 고소가 급증하고 있다"며 "교권을 바로 세우기 위한 특단의 대책 마련을 위해 교육부, 국회 교육위원회와 함께 법적, 제도적 정비를 위한 테이블을 만들어 구체적인 진전이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