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국제노동기구) '협약·권고 적용 전문가위원회'가 한국 정부에 보낸 '직접 요청' 중 ILO 핵심협약 87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관련 내용. ILO 홈페이지 캡처ILO(국제노동기구) '협약·권고 적용 전문가위원회'(전문가위)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대한 검토를 '직접요청(direct request)'한 것으로 확인됐다.
ILO 홈페이지와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전문가위는 지난해 11월 ILO 핵심협약 87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98호(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 이행에 관한 정부 보고서와 노사단체 의견서를 살핀 뒤 23개 항목에 대한 검토를 한국 정부에 직접 요청했다.
앞서 한국 정부가 2021년 '강제노동 금지' 분야의 제29호(강제노동) 협약과 '결사의 자유' 분야의 제87호, 제98호 협약에 가입해 2022년부터 해당 협약이 발효됐다.
이후 ILO는 한국 정부가 실제로 협약을 준수해 이행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 지난해 정기 감시감독 절차를 개시한 상태다.
이를 주관하는 전문가위가 내년 상반기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는 '견해(Observation)'에 앞서 한국 정부에 추가적인 정보·입장을 요구하도록 직접요청(direct request)한 것이다.
직접요청 내용 중 주요 항목을 살펴보면 ILO는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 종사자, 프리랜서 등 비전형 고용 노동자는 물론 자영업자, 농업노동자도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조법 2조 1호에 있는 '근로자' 정의를 확대해 모든 노동자가 노조를 설립·가입할 권리를 인정·보장할 것을 기대한다며 관련 정보를 제공하라고 요청했다.
또 노조 회계 공시 조치의 근거가 된 노조법 27조에 대해 노조 재정 운영을 정부가 점검하는 일은 노조의 행동이 법 규정을 위배한다고 믿을 중대한 사유가 있거나, 다수의 노동자가 이를 요청하는 등의 사유로 국한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수시로 정보를 요구하는 것은 협약에 어긋난다며 정부에게 노사단체와 협의해 법을 개정하고, 관련 원칙에 따라 노조 운영에 개입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라고 요청했다. 또 민주노총이 제기한 의견에 대해 정부의 답변과, 개정된 관련 시행령 사본도 제공하라고 요청했다.
국제노동기구 홈페이지 캡처 이른바 '노란봉투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파업권의 정당한 행사로 인해 어떠한 종류의 제재도 이루어져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정부가 노사단체와 협의해 노동자·노조가 평화로운 쟁의행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당부했다.
다만, 이번 검토 요청은 지난해 11월 이뤄진 것으로, 한 달 뒤인 같은 해 12월 윤석열 대통령이 이 개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내용은 언급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주무부처인 노동부는 전문가위의 '직접요청'이 "실무적인 질문이나 추가 정보를 회원국에 통상적으로 요청하는 것"이라고 해명하고, "회원국의 비준협약 이행보고서를 토대로 요청되며 국제법상 구속력은 없다"고 덧붙였다.
특히 노조법 제27조에 대해서는 "헌재가 합헌 결정한 바 있다"며 "지난해 노조 회계장부 비치·보존 의무 점검은 노조의 민주적이고 투명한 운영 촉진과 조합원들의 알 권리 보장 차원에서 자율점검기간을 운영하면서 의무이행을 확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료제출을 요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노조법 제2조 개정안에 대해서도 "법적 정합성 및 현실 적합성 관련 현장 우려와 노사관계 법·제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안으로 충분한 논의와 검토가 선행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며, 이러한 입장들은 ILO에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노총 류미경 국제국장은 "직접요청은 해당 쟁점에 관련된 ILO의 관련 협약과 기존 해석 원칙에 비춰 문제가 있는 사안을 지적하고, 한국 정부가 이를 해결해 결과를 보고해달라고 요청한 내용으로 구성됐다"면서 "노동부의 반응은 '이거 안 한다고 벌 주겠다는 것은 아니지 않냐. 호들갑 떨지 말아라'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87호 98호 협약을 정부가 비준한 것은 노사관계 법/제도/관행을 협약에 부합하도록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한 것"이라며 "그 약속이 구속력이 없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신뢰를 스스로 포기하겠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대화와 설득의 단계'인 전문가 위원회의 요청이나 견해를 수용하지 않으면 '망신주기'(진정, Representation), 준사법적 절차인 제소(complaint) 및 진상조사위원회 파견, '벌주기 단계'(총회결의를 통한 제재조치)로 이어질 수 있다"며 '대화와 설득의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의무 이행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