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무차별적인 '딥페이크 성범죄' 확산과 맞물려 피해자 지원 필요성도 부각되고 있지만, 일부 지역에는 정부가 운영하는 디지털성범죄 전문 상담소가 아예 없어 지원 공백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운영 중인 기관에선 인력난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어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여성가족부(여가부)가 운영하는 '디지털성범죄 지역특화상담소(특화상담소)'는 전국적으로 총 14곳에 설치돼 있다. 구체적으로 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울산‧세종‧충북‧충남‧전북‧전남‧경북‧경남‧제주에 각각 한 곳씩 있다.
특화상담소는 전문 상담사를 통해 피해자를 지원하는 기관이다. 불법 영상물 삭제 등을 위해 피해자들을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센터), 경찰청과 연계해주는 사업도 진행한다.
허위 영상물‧불법 촬영물 유포 등으로 불안에 시달리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경우 대면 심리 상담 수요가 높다. 특화상담소에선 피해자 심층 상담, 수사기관 동행, 법률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데 모두 대면이 중요하다.
아동‧청소년 성범죄 피해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 '탁틴내일' 이현숙 대표는 "특히 청소년들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가 재발생하는 경우가 있는데 오프라인에서 또래 청소년들과 자조 모임 등을 하면서 심리적 안정을 느끼게 된다"며 "경찰서를 가거나 법률 지원을 받으려면 실제 상담원 등과 대면 접촉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피해자들로선 거주지와 상관없이 특화상담소 접근이 쉬워야 하지만, 서울과 경기, 강원 지역에는 해당 상담소가 아예 설치돼 있지 않다. 다만 서울시와 경기도는 지방자치단체 조례를 통해 피해자 지원센터가 자체적으로 마련돼 있다.
여성가족부. 연합뉴스그러나 강원도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전문적으로 대하는 정부‧지자체 차원의 상담소가 사실상 없어 사각지대에 놓인 모양새다. 강원도는 조례에 따라 기존 성폭력 상담소에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업무를 위탁하고 있지만, 해당 상담소에서는 전문 인력과 시스템을 갖춘 특화 상담소가 별도로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속초성폭력상담소‧장애인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디지털 성범죄에 특화된 상담소가 필요하다. 일반 성폭력 상담소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밀착 지원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며 "(디지털 성범죄)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인력이나 시스템이 구축돼야 하는데 어떤 제도적 장치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기존 업무도 있다 보니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신속하게 조치를 취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은 외상이 없는 경우가 있어 의료 지원에 있어서도 물리적 성폭력 피해자와 차이가 있다"며 "그들은 사건이 끝나도 자신의 사진 등이 공유될 것이라는 불안함이 계속 있지만, 일반 상담소에선 시스템이 없어 삭제 지원에도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여가부는 내년에서야 뒤늦게 강원도에도 특화상담소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여가부 노현서 디지털성범죄방지과장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현 정부 국정 과제에 지역특화상담소를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며 "현재 지역특화상담소를 14개소 운영하고 있고, 내년도에 강원도를 추가해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화상담소와 연계해 딥페이크 합성물 등 불법 촬영물 삭제를 지원하는 디성센터는 서울에 한 곳에만 있는데,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디성센터는 지난해 24만여 건의 성범죄 영상물 삭제를 지원했지만, 정규 인력은 지난 6월 기준 15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영상물 삭제 인력 한 명당 한 해 1만 6천 건에 달하는 영상물을 삭제하고 있는 셈이다.
센터는 내년에 정규직 직원 2명을 채용하기로 했지만, 빠르게 진화하는 인공지능(AI) 기술에 기반한 '딥페이크 합성물' 확산 속도를 따라잡긴 역부족으로 보인다.
여가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25일까지 디성센터에 접수된 '딥페이크 합성‧편집' 피해자 수는 총 502명이다. 이들 가운데 10대는 238명, 20대 이상 성인은 261명이다. 최근 해당 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커지고, 전국적으로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는 만큼 하반기엔 피해 접수 건수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전날 사진 속 얼굴과 음란물을 자동으로 합성해주는 '텔레그램 봇' 8개를 확인하고 입건 전 조사(내사)에 착수했다. 이 봇들 가운데 22만 명‧40만 명 규모의 텔레그램 봇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딥페이크 성범죄와 관련해) 폭넓게 수사하고 있어 텔레그램 봇 숫자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