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구청장 보궐선거 지원 나선 한동훈(왼쪽 사진)과 이재명. 연합뉴스 부산 금정구청장과 전남 영광·곡성군수, 인천 강화군수, 서울시교육감을 뽑는 재·보궐선거가 16일 치러진다. 이번 재보선은 당초 기초단체장을 뽑는 '미니 선거'로 간주됐지만 4·10 총선 이후 민심을 가늠할 수 있는 첫 선거라는 점과, 기존 전망과 달리 요동친 판세 때문에 여야가 사활을 걸면서 판이 커졌다. 텃밭 사수, 전국정당 발판 마련 등 나름의 목표를 두고 선거전에 나선 각 당 지도부는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향후 진로와 정국 주도권에 있어 다른 운명을 맞이할 전망이다.
야권 단일화 변수 부산 금정, 한동훈 시험대
이날 재보선은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투표가 진행된다. 당선자 윤곽은 밤 늦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인천 강화와 전남 곡성은 각각 이 지역에서 우세한 지지율을 이어온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유리한 싸움을 펼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부산 금정은 전통적으로 보수세가 강한 지역으로 평가돼 왔지만, 최근 낮은 당정 지지율과 야권의 단일화 공세로 여야 후보가 초접전을 벌이는 모양새다. 전남 영광의 경우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 야 3당 후보들이 각축전을 펼치고 있어 최종적으로 누가 깃발을 꽂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같은 판세를 의식한 듯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재보선 전날인 15일에도 부산 금정을 찾아 자정까지 지원 유세에 나섰다. 한 대표는 이번 선거기간 금정만 6번 찾았다. 그는 이번 금정 보궐선거에 대해 '혈세 낭비'라고 표현해 논란이 된 민주당 김영배 의원을 빌미로 야권에 대한 공세 수위를 끌어올리는 동시에, 용산 대통령실에 인적 쇄신을 요구하는 등 대통령실과 '차별화'된 태도를 취하며 보수층에 지지를 호소하는 양방향 전략을 펼쳤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역대 최저치인 20%대에 머무는 상황과 야당이 압승을 거둔 지난 총선부터 지금까지 내세우고 있는 '정권 심판론'을 의식하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금정의 낮은 사전투표율이 정부·여당에 대한 실망감이 표출된 것으로 보고 막판 지지층 결집에 한창이다. 대장동 개발 의혹 관련 재판으로 15일 부산을 찾지 못한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 엄중한 경고를 무시하는 정권에 민심이 얼마나 무서운지 일깨워주자"고 강조했다. 민주당과 후보 단일화 후 이 대표의 요청으로 14일 부산 금정 지원 유세에 나선 혁신당 조국 대표는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국민의힘이 8번 중 7번 이겼으니 험지라고 하는데 통상적 과거 상황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임을 피부로 느꼈다"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조 대표는 "야권 단일 후보가 이기면 집권 세력 내부에 큰 파문 일어날 텐데 한동훈 대표가 대표직을 유지하겠느냐"며 여당 상황을 전망하기도 했다.
국민의힘이 금정에서 패배하면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콘크리트 지지층'까지 잃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국정 동력이 더욱 떨어질 수 있다. 한 대표도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전망이지만, 한 대표 측은 연일 공개되고 있는 '명태균·김대남 녹취록' 등으로 인해 김건희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는 점 등을 언급하며 자칫 금정에서 패배하더라도 한 대표 책임론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야당은 이를 공세의 기폭제로 삼으면서 정국이 요동칠 전망이다. 반면 국민의힘이 승리할 경우에는 텃밭을 지켜낸 만큼 큰 호평을 받기는 쉽지 않겠지만, 당과 여권 내 추가적인 논란을 예방할 수 있는 저지선은 지켜냈다는 평가가 나올 전망이다. 한 대표의 당내 입지 또한 다소 여유로워지고, 대권 주자로서의 위신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전남 영광군수 야당 3파전…'텃밭 수호' 절실한 민주당
마지막 유세하는 영광군수 후보자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장세일·조국혁신당 장현·진보당 이석하·무소속 오기원 영광군수 후보가 유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표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일극(一極) 체제'로 정권 탈환을 준비하고 있는 민주당의 최대 관심사는 전남 영광군수 선거다. 야권 후보 단일화로 여야 간 일대일 대결이 펼쳐지고 있는 부산 금정과 달리 영광에서는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 야 3당 후보들이 오차범위 내의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영광은 사전투표율이 역대 최고치인 43.06%를 기록할 만큼 선거 분위기가 뜨겁다.
'텃밭'으로 불리는 호남 지역 선거인 만큼 민주당으로서는 승리가 절실하다. 자칫 타 야당에게 영광군수 직을 내줄 경우 책임론 공방은 물론, 이 대표 리더십에도 상처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11월로 예정된 공직선거법 위반·위증교사 혐의 재판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 대표 책임론이 불거질 경우, '사법 리스크'가 더 커질 수 있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광주·전남 비례대표 득표율이 혁신당보다 낮았다. 이번 선거마저 패하게 된다면 호남 민심의 경고등이 커진 것으로 보고 호남에 대한 전략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반면 4·10 총선 압승에 이어 이번 선거에서도 민주당이 승리할 경우, 이 대표는 호남 지지 기반을 다지며 당 장악력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사법 리스크'로 인한 부담을 상대적으로 줄이면서 집권 플랜 가동에 더욱 집중할 수 있을 전망이다.
'전국정당' 발돋움 노리는 혁신당…진보정당 '존재감' 각인하려는 진보당
민주당이 아닌 혁신당이나 진보당이 승리할 경우, 이들 소수 야당에게는 정치권에서의 공간을 넓힐 기회가 생기게 된다. 혁신당은 영광군수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창당 이후 내내 달고 있던 '비례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을 전망이다. 전국정당으로서의 이미지도 얻을 수 있게 된다. 지난 총선에서 비례득표율 24.25%를 기록한 것이 민주당의 대체재 내지는 보완재로서 얻은 '반사 이익'만이 아니라 자체 경쟁력을 갖췄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가능해질 수 있다. 아울러 영광군수 선거를 토대로 2026년 지방선거 준비에도 박차가 가해지는 한편, 호남 내에서 민주당을 위협하는 존재로도 인식될 수 있다. 이번 재보선을 앞두고 일찍부터 '한달살이'를 하는 등 선거전에 뛰어든 조국 대표 또한 입지가 다져질 전망이다.
'깜깜이' 국면 전 막판 여론조사에서 1위를 기록한 진보당도 선거 승리 시 얻어갈 전리품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지난 총선에서 지역구 1석과 민주당과 함께 꾸린 비례 위성정당을 통해 얻은 2석을 합해 3석으로 원내정당에 복귀했지만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던 상황에서 다시 당명을 각인시킬 수 있을 전망이다. 정의당의 원내 진출 실패로 인해 얻게 된 진보계 정당의 맏형이라는 타이틀도 공고해지는 한편, 이번 선거 진보당 돌풍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이른바 '밑바닥 선거운동', '풀뿌리 선거운동'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