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환 기자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마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 같은 처지다.
마음은 조기대선이라는 '콩밭'에 가있는 게 90% 이상으로 보이는데, 그 마음을 차마 입 밖으로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자당 소속 대통령이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직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 △조기 대선 자체가 대통령의 파면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 대선 출마 언급은 곧 불충(不忠)으로 보는 내부 분위기 △자신이 "12·3 비상계엄은 민주주의 파괴 행위"라고 밝혔던 '원죄의식' 등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한 답변을 요구받을 때마다 그와 그의 측근들은 해를 보며 달이 아니라고 말하는 식의 신공을 각기 선보이고 있다.
5일 아침, 오 시장의 의중을 언론에 충실히 실어 나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김병민 정무부시장도 그랬다.
오 시장의 대선 출마를 묻는 MBC 라디오(김종배의 시선집중) 진행자의 공격적인 질문에 그는 물 흐르듯 피해갔다.
▶ 김병민 부시장의 MBC라디오 인터뷰(25년 3월 4일) |
◎ 진행자 > 만약에 조기 대선 치러지면 경선 참여하시는 거죠? 오세훈 시장. 여기서 대답이 어떻게 나올지 알겠는데 ◎ 김병민 > 헌재 판단 중인 상황에서 뭔가 정치적인 얘기를 드리기에는 어려운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 진행자 > 그게 모범 답안이죠. 근데 만약에 경선에 참여하신다면 시장직은 유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버리는 게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 김병민 > 가정에 입각한 사실 질문이시잖아요. 그리고 지금은 워낙 헌재의 선고 과정 속에서 이를 바라보고 있는 국민적 시선들이 많이 다양한 것 같습니다. ◎ 진행자 >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준표 시장은 버리겠다고 얘기를 해서 여쭤보는 건데요. ◎ 김병민 > 각자 정치인들마다 자기가 처한 입장이 있고 본인들의 주장이 있으니까 홍준표 시장께서는 시종일관 굉장히 확고한 입장들을 해왔잖아요.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날 탄핵 이후로 헌재의 판단을 지켜보고 있는 과정에 추가적인 정치 행보에 대해서 말을 아껴오고 있어서 이 부분은 제가 얘기 드리기에는 좀 한계가 있다. ◎ 진행자 > 알겠습니다. 궁금해서 여쭤는 봤습니다. 오늘 인터뷰는 여기서 마무리해야 될 것 같네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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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왼쪽)이 4일 오후 오세훈 서울시장(오른쪽)의 예방을 받고 있다. 서울시 제공앞서 오 시장도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1월 22일)고 말하는 등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대선 출마로 확실히 기울었음을 짐작케 하는 물증과 심증은 이어지고 있다.
5일 하루 상황만 보자.
오 시장은 이날 아침 한 포럼에서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구호인 '마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카피한 '코가(KOGA, 한국을 다시 성장토록)'라는 신조어를 세상에 공개했다.
오후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찾아서 경제 재도약을 위한 자신의 구상에 대해 의견을 청취했다. 전직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수업을 받는 대통령 후보의 모습을 연출해낸 것이다.
그런가 하면 오 시장은 재임중인 서울시장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자서전 성격의 책을 이달 말 출간하겠다고 예고했다.
'다시 성장이다'는 제목의 신간은 국가의 미래 비전과 정책 구상을 담고 있어서 '딱 대선 출마용'이라는 관측을 불러 일으켰다.
최근 그가 던지고 있는 정책들도 대선용 아이템으로 불릴 만 하다. 지난달 전격 발표한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하려는 취약계층 청소년 전용 교육 플랫폼 '서울런' 등이 그 것이다.
갑자기 오는 12일 발행한다고 5일 밝힌 '서울사랑상품권'도 그렇다.
지역 화폐로 쓰이는 서울사랑상품권은 통상 설, 추석과 같은 명절에 발행한다.
액면가보다 5% 저렴하게 사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이점 때문에 판매 시점에 구매 사이트가 마비될 정도로 인기가 높은 상품권이다.
지난 1월 설을 앞두고 올해 발행액의 절반인 750억원을 발행한 뒤, 윤석열 탄핵선고를 목전에 둔 다음주에 745억원어치를 추가로 발행하기로 한 것은 다분히 유권자를 의식해 내린 결정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런 정황을 놓고 봤을 때 그는 부인하거나 회피하지만 이미 대선 그라운드에 올랐음이 명백하다.
연합뉴스그런데도 오 시장측이 대선과 거리를 두는 듯한 메시지를 내고 있는 것은 대통령 탄핵을 놓고 나뉘어 있는 국민의힘 내부 사정을 반영한 것으로도 보인다.
국민의힘 안에서도 12·3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인식하면서도 차마 내란으로 부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도 오 시장은 '서자'였던 홍길동이다.
탄핵 반대 세력이 현 국민의힘의 '적자'라면 오 시장은 '서자'인 셈이다.
12·3 계엄 다음날 그는 카메라 앞에 서서 "명분 없는 비상계엄 선포는 민주주의의 본령을 거스른 행위였다"며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고 정면 비판했다. 그 뒤로 그는 극우세력으로부터 '배신자'로 낙인 찍혔다.
그러나 오 시장은 '의적' 홍길동의 길을 걸어야 한다.
부당한 권력과 부패한 세력에 맞섰던 홍길동처럼, 반(反) 민주세력과 동행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대다수의 일반 시민들과 동행해야 한다.
그것이 서울시장으로서 그가 그토록 매진해온 '동행' 정책과도 부합하고, 그것이 곧 '상식과의 동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