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청계천, 영등포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켜 형성된 ‘중계동 백사마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 다가올 겨울을 걱정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
중계동으로 가는 버스1142. 상계역을 지나 나타나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 버스의 종점은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백사마을’이다. 좁고 어두운 골목들이 위태로이 얽혀있다.
왜 하필 백사마을일까. 흰 뱀? 흰 모래밭? 아니다, 그저 중계동 104번지일 뿐이다. 마을 골목길은 희기는커녕 오히려 시커멓다. 백사마을 사람들은 연탄 보일러를 사용한다. 서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다.
고지대로 올라갈수록 골목은 좁고 가팔라진다. 어느 골목은 바로 걷기 힘들만큼 좁다. 마을사람들은 50여년을 연탄수레를 떠밀고 혹은 연탄지게를 지고 이 길을 오르내렸다.
◈ 연탄가격 인상으로 다가올 겨울을 걱정하는 백사마을 할머니현재 연탄가격은 평균 500~700원정도이지만 향후 최고 장당 천원까지 오를 것으로 보인다. 연탄수레가 무거워지는 만큼 삶의 무게도 무거워진다. 30도를 훌쩍 넘는 폭염. 하지만 다가올 겨울을 생각하면 그들은 떨리고 춥다.
서울 중계동 백사마을에서 만난 김병남(75) 할머니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커피로 본 기자를 맞이했다. 대한민국에서 자신만 만들 수 있는 커피라며 쑥스럽게 커피를 내어놓는 할머니는 맛있다는 말에 연신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불량연탄이 부서져내려 다리에 화상을 입었다는 김병남 할머니
그러나 잠시 후, 연탄가격이 올라갈 것이라는 얘기를 듣자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졌다. 연탄가격이 최고 장당 천원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말에 김병남 할머니의 한숨은 인터뷰 내내 끊이질 않았다.
“우리나라 높으신 분들은 너무 높은 곳만 바라보려고 해. 밑에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몰라. 여기 달동네 와서 보면은 진짜 그 분들 화장실만도 못할 것이여 우리집들이…” 라며 서민들을 외면하는 정책에 아쉬움을 표했다.
“다른 건 몰라도 서민들이 사용하는 것이라도 안 올렸으면 좋겠어. 다른 것은 내버려두고 우리 같이 어려운 사람은 연탄이랑 쌀만 있으면 돼. 형편이 좋지 않으면 밥은 소금에 먹어도 되고 물에 말아먹어도 괜찮아. 제발 쌀값, 연탄값 올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부탁이여 부탁... 근데 그걸 어디다 하소연을 해야허나 모르겠네…”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연탄과 관련해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할머니는 연탄가격뿐만 아니라 질 또한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탄은 단단하게 24시간 땔 수 있게 해줘. 자꾸 부서져. 어쩔때는 껍다구만 타고 속 알맹이는 타지도 않는 연탄도 있어. 그런 연탄은 너무 아깝지. 그냥 버려야 되니까...”라고 할머니는 전했다.
또한 할머니는 “얼마 전 버스비도 올랐는데, 움직일 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고 따뜻하게 지낼 수도 없어. 손발이 묶인 기분이야. 나 같은 사람은 한 달에 20만원만 있으면 생활하지만… 윗사람들은 20만원이면 화장지 값도 안될 것이여. 아마 밥 한끼도 20만원짜리 먹을지도 몰라”라고 말하며 서민들의 힘든 상황을 거듭 전했다.
백사마을을 내려오던 중 만난 김금숙 할머니(77)는 한 겨울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연탄을 한 장만 때운다.
“나는 이거 한 장 때우는 것도 감사혀. 거동 불편하고, 더 어려운 사람들이 한 장이라도 더 지원받아서 때야지…”라고 할머니는 말했다.
전기료를 걱정하는 김금숙 할머니. 선풍기와 형광등은 모두 꺼져있다.
◈ 2005년부터 정부의 5차례 연탄가격 인상으로 서민경제만 위축정부는 그 동안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연탄가격을 5차례에 걸쳐 인상했다. 그때마다 인상 폭은 무려 20~30%. 2009년 이후 연탄 소비 가구는 점차 줄어드는 실정이지만 연탄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RELNEWS:right}
최근 정부는 무연탄 가격을 연평균 약 5%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대한석탄공사는 1조 4000억 원에 달하는 부채를 갖고 있다. 이를 줄이기 위해 정부는 무연탄가격을 인상하려는 것이다.
밥상공동체복지재단과 연탄은행전국협의회(대표 허기복·이하 연탄은행협)는 “연탄가격 인상 후에는 배달료 포함 장당 600여원 고지대의 경우 700원, 외딴 오지 및 섬 지역은 최고 1000원까지 줘야 한다”며 각종 물가인상과 함께 서민경제가 더욱더 위축될 것을 우려했다.
달과 맞닿아 있는 달동네 백사마을. 하지만 희망은 멀기만 하다. 이웃에 대한 배려와 온정으로 모자란 희망을 채워나가는 백사마을 사람들. 이 마을을 밝혀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