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뉴스]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김현정의>
KBS 양대 노조원들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서 길환영 사장 출근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다. 황진환기자/자료사진
▶ KBS 기자협회가 나흘째 제작거부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PD협회도 오는 23일 제작거부에 들어가기로 했다.
KBS 이사회는 야권추천이사들이 제기한 길환영 사장에 대한 해임안을 격론 끝에 오는 26일 상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길환영 사장이 사내 특별담화를 통해 재차 사퇴거부 입장을 밝혀 다음 주 있을 KBS 이사회에서 길환영 사장 해임안이 부결될 경우 KBS 제작거부 사태는 장기화할 우려가 높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KBS 제작거부, 왜 장기화가 우려되나?"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 KBS의 제작거부에 모든 직종이 참가하고 있는 거냐?= 지금은 기자협회 단독으로 제작거부를 하고 있다.
KBS 기자협회가 오늘로 나흘 째 제작거부를 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KBS의 모든 뉴스가 파행을 빚고 있다. 뉴스 앵커 13명이 19일부터 제작거부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에 메인 뉴스인 밤 9시 뉴스를 여자 앵커 단독으로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
기자협회에 이어 PD협회도 제작거부를 결의했다. KBS PD협회는 어제 저녁 총회를 열어 오는 23일 밤 12시부터 24시간 제작거부에 들어가기로 했다.
일단 한시적인 제작거부이지만 다음 주부터는 KBS 양대 노조가 총파업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어서 제작거부는 전 직군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제작거부에 어느 정도 인력이 동참하고 있는 거냐?
KBS 길환영 사장이 21일 오전 사내방송을 통해 ‘사퇴 거부’ 의사를 재차 밝힌 가운데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 거주지와 실명을 밝힌 시민들이 KBS의 공영성 회복을 염원하며 내걸은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다. 황진환기자/자료사진
= 기자들의 경우 90%가 훨씬 넘는 인력들이 제작거부에 동참하고 있다.
KBS 기자협회 소속 회원이 550여명인데 이 중 연수자와 휴직자를 제외한 500여명의 회원 중 90%가 훨씬 넘는 470여명이 제작거부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보도본부 소속 보직부장 22명과 팀장 54명 전원이 보직사퇴와 함께 제작거부에 동참하고 있고, KBS 해외특파원 24명도 제작거부에 동참했고 고참기자 대부분도 제작거부에 합류했다.
교양국, 예능국, 드라마국 등 프로그램 제작국 팀장들도 대부분 보직 사퇴하면서 다른 방송 프로그램도 제작 차질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KBS 기자협회와 새노조에 따르면 어제까지 보직을 사퇴한 간부는 256명에 이른다.
업무를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팀장급 308명 중 178명(57%)이 공개적으로 보직 사퇴했고, 사장 직속 부서인 대외정책실과 수신료현실화추진단 팀장급, 기술본부 내 팀장 전원도 보직을 내려놓았다.
이는 그동안 KBS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파업이 있었지만 부장이나 팀장들까지 제작거부에 동참한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KBS 기자협회는 다만 세월호 참사와 KBS 제작거부 사태를 취재 보도할 최소한의 취재인력 10명은 남겨뒀다.
▶좀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왜 이렇게 대규모로 제작거부에 들어간 거냐? KBS 보도의 공정성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 않느냐?= KBS 기자협회 이승준 대변인은 "그동안 KBS 뉴스에 대해 외압설 의혹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보도책임자의 입을 통해서 사실이 확인된 건 처음"이라면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마당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KBS의 국장급 직원도 "보도국장의 입을 통해 사장과 청와대의 뉴스개입 사실이 드러난 만큼 기자들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라면서 "보도본부의 모든 부장과 팀장들이 보직을 사퇴하고 제작거부에 나섰다는 건 그만큼 상황이 엄중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KBS기자협회에서는 그동안 쌓여온 울분이 세월호 보도를 계기로 폭발한 것이라고 진단한다.
결정적인 계기는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발언에서 촉발됐지만 세월호 참사 보도를 보면서 보도파트가 아닌 다른 부서에서도 KBS 보도의 문제점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KBS 기자협회 이승준 대변인은 "공정보도를 위해 내부적으로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겸허히 수용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그동안 내부적으로 싸워도 보고 성명도 내고 제작거부도 하고 파업까지 하면서 지난한 싸움을 했지만 편집권과 데스크 권에 저항하는데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김시곤 국장이나 보도국 간부들이 보도 공정성을 훼손한 실행자들 아닌가?= KBS 내부에서도 그런 비판이 있다.
김시곤 전 보도국장. 윤창원 기자/자료사진
KBS 기자협회의 한 관계자는 "김시곤 전 국장은 공영방송의 수호자가 아니라 보도국장 재임 1년 반 동안 뉴스를 망가뜨린 장본인"이라고 말했다. 특히 보직을 사퇴한 부장이나 팀장들도 길환영 사장과 함께 앞장서서 보도의 공정성을 훼손한 사람들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KBS의 한 중견기자도 "모든 책임이 길환영 사장에게만 있는 것처럼 비쳐지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길환영 사장체제를 바꾸는 것이 시급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한다. 그 이후 보도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개선을 논의하겠다는 것이 KBS 기자협회나 새노조의 입장이다.
▶길환영 사장이 바뀐다고 KBS 보도가 달라질까?= 사실 그 점이 가장 의문이다. KBS 사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 상태에서 길환영 사장 한사람 바꾼다고 KBS가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믿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의 KBS 간부직원들이 길환영 사장의 사퇴를 촉구하면서 보직을 내려놓고 제작거부에 동참하고 있지만 새로운 사장이 임명되면 또다시 지나간 박근혜 정부 1년 반처럼 되풀이 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KBS 간부직원들이나 새노조, 기자협회 관계자들도 이 점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는다.
그래서 길환영 사장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KBS 내부구성원들이 지금처럼 사장퇴진에 한목소리로 뭉쳤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길환영 사장 퇴진투쟁을 계기로 KBS가 국민을 위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KBS의 한 고참기자는 "그동안 부장이나 팀장들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길환영 사장 퇴진 요구를 탓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면서 "KBS가 국민의 신뢰를 받는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시민의 힘을 빌려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학자들도 "KBS가 공영방송으로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내부 구성원들이 권력과 싸워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KBS를 지지하고 성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정관에 the BBC is "to be free from both political and commercial influence and answers only to its viewers and listeners". (자본과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오로지 시청자와 청취자에 응답해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길환영 사장에 대한 해임안이 KBS 이사회에 상정됐나?= KBS 이사회는 20일 임시 이사회를 열어 야당 추천 이사들이 제출한 길환영 사장 해임 제청안 상정 여부를 논의한 끝에 오는 26일 임시이사회에 해임안을 상정하기로 합의했다.
KBS 이사회는 오는 26일 다음주 월요일에 임시이사회를 열어 해임안을 상정한 뒤 길 사장의 소명을 듣기로 했으며 오는 28일 정기이사회에서 해임안 표결을 하기로 했다.
KBS 이사회는 여권추천이사 7명과 야권추천 이사 4명으로 구성되는데 다수인 여권추천이사들이 해임안 상정을 받아들였다는 자체가 이사회도 이번 사안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다.
한 야권추천이사는 "길환영 사장 해임안이 가결될지 부결될지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여권추천이사들이 해임안 상정을 받아들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KBS 새노조에서도 '길환영 사장 해임안이 이사회에 상정됐다는 자체만으로도 길 사장은 더 이상 사장직에 연연해서는 안된다"며 "이사회 표결을 기다리지 말고 하루빨리
자진사퇴하는 것이 최소한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추천이사 4명에 여권추천이사 2명만 가세해도 길 사장 해임안은 가결될 수도 있다.
지난해 3월 MBC 김재철 사장 해임안도 9명의 이사중 야권추천이사 3명에 여권추천이사 2명이 가세하면서 가결된 전례가 있다.
▶그렇지만 길환영 사장은 사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지 않았느냐?
KBS 새노조 조합원 및 취재진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노조 사무실에서 사내 방송을 통해 길환영 사장의 사내방송 특별담화를 지켜보고 있다. 길 사장은 담화를 통해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선동에는 결코 사퇴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며 사퇴 거부 의사를 재차 확인했다. 황진환기자/자료사진
= 그렇다.
길환영 사장은 거듭 사퇴거부 의사를 밝혔다. 길 사장은 어제 사내 방송을 통해 발표한 특별담화문에서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선동과 폭력에 절대로 사퇴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길 사장은 '청와대 외압설'에 대해서는 "9시 뉴스에 대해 구체적 아이템 취재 지시나 기사를 빼거나 바꾸라는 지시한 적이 없다"며 "청와대로부터 그런 전화를 받은 적도 없었다"고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주장을 일축했다.
길 사장은 또 5월16일 발표된 보도국 부장단 성명서에 대해 "도대체 팩트를 확인도 하지 않고 이렇게 일방적으로 과장 왜곡된 주장만을 전제로 부장단이 보직사퇴를 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인 기자협회의 합리적 이성적 결정이라고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길 사장은 "정치적 선동으로 KBS를 또 다시 나락으로 떨어뜨리려는 불법적인 시도가 있다면, 그 어떠한 불법 행동에 대해서도 제 직을 걸고 그 누구보다 엄중하게 사규와 원칙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며 강경대응 방침을 내비쳤다.
길 사장은 그러면서 "노조든 협회든 만나겠다. 터놓고 대화하면서 서로가 쌓였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면서 "제작거부와 불법적인 파업시도를 접고 하루속히 일상의 업무로 돌아와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고 밝혔다.
▶길환영 사장은 사퇴하지 않겠다고 하고 노조는 파업찬반 투표를 진행하는 '강 대 강'의 국면인데 이렇게 되면 제작거부 사태가 장기화 되는 것 아닌가?= KBS 내부에서도 그런 우려가 나온다.
일단 관건은 다음주에 있을 이사회에서 길 사장 해임안이 통과되느냐 여부인데 해임안이 가결된다면 큰 피해가 없겠지만 부결된다면 총파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KBS 사태가 장기화 될 우려가 높다는 얘기다.
지금 KBS는 묘한 상황에 처해있다.
대통령이 KBS 사장을 임명은 하지만 임기 도중에 해임할 수는 없다. 지금 상황에서 청와대가 개입할 경우 오히려 사태를 악화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박준우 청와대 정무수석이 김시곤 KBS 보도국장 사퇴에 대해 "청와대에서 부탁한 결과"라고 말해 논란이 일었는데 길 사장의 사퇴에 관여하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다.
길환영 사장도 여권추천이사들에게 구명운동을 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KBS 내에서 고립무원의 처지로 내몰리고 있는 길 사장이 스스로 구명운동을 하기 어렵고 버팀목이 되어줄 간부들도 대부분 제작거부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에 그 또한 쉽지 않다.
그래서 KBS 제작거부 사태가 장기화 되느냐 마느냐 여부는 이사회의 결정에 달렸다. 물론 이사회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이미 뉴스가 파행되고 있고KBS 내 대부분의 직군들이 길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상황인 만큼 이사회로서도 고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해임안이 부결될 경우 KBS는 2년 전 MBC 김재철 사장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2012년 전국언론노조 MBC본부가 파업했을 때처럼 총파업에 돌입할 경우 장기화 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파업이 장기화되면 KBS의 이미지나 신뢰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며, 길환영 사장은 징계의 칼을 휘두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또 22일부터 6.4 지방선거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됐다는 점과 월드컵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는 점도 변수다.
노동조합도 부담이지만 길환영 사장이나 KBS 이사회가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KBS 내부 구성원들의 결의와 결속력이 대단하다는 점도 큰 변수 중 하나다.
2012년 새노조가 파업에 들어갔지만 1노조는 파업에 동참하지 않았고 보직간부들이나 고참기자들도 제작거부를 하지 않아 파업효과가 적었다.
KBS 양대 노조원들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본관 앞에서 길환영 사장 출근저지 투쟁을 벌이고 있다. 황진환기자/자료사진
그렇지만 지금처럼 막내기수들의 반성문에서 시작됐고 보도본부의 팀장과 부장 전원이 보직사퇴와 함께 제작거부에 돌입했다는 건 그만큼 결의의 수준이 높다는 걸 의미한다.
특히 KBS가 2008년 양대 노조로 분리되면서 공동보조를 취한 적이 없는데 길환영 사장 퇴진에는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고 파업찬반투표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변수 중 하나다.
길환영 사장이 사퇴하지 않고 버틸 경우 KBS 사태는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