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UPI코리아 제공)
영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Straight Outta Compton)(감독 F. 게리 그레이)은 미국의 전설적인 힙합 그룹 ‘N.W.A(Niggaz With Attitude)’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N.W.A’는 힙합계의 거물 닥터드레와 아이스큐브가 속해 있던 팀으로, 5년이라는 짧은 활동 기간 내내 음악적,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영화의 주된 배경은 1980년대 후반 미국 캘리포니아 주 컴턴이다. 마약을 부추기는 폭력 갱단 탓에 크랙코카인이 급속히 퍼져나가고, LA경찰과 갱단 사이 갈등의 골이 깊은 위험한 지역이다.
범죄가 만연한 사회 속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심한 차별을 겪고 빈곤에 시달리는 삶이 어찌 만족스러울 수 있겠나. 그런 와중에 마약 일로 돈을 만지던 이지-이는 기민하게 움직인다. LA가 곧 힙합씬의 주 무대가 될 것임을 예감한 그는 클럽에서 DJ를 하던 친구 닥터 드레와 DJ 옐라를 찾아간다. 그렇게 변화에 목말라 있던 세 사람이 의기투합하고, 여기에 MC렌과 아이스 큐브가 합류해 힙합 그룹 ‘N.W.A’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힙합이라는 예술로 세상에 반기를 든 ‘N.W.A’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이들은 흑인들의 삶을 오롯이 담아낸 현실적인 가사와 경찰의 무차별적 가혹행위를 직설적으로 비난하는 갱스터 랩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단숨에 랩스타로 떠오른다. 자수성가를 이룬 기쁨도 잠시, ‘돈의 맛’을 본 뒤 점차 초심을 잃어가는데, 유흥과 향락에 빠지고 계약 문제로 갈등을 겪기 시작한다.
이처럼 영화는 ‘N.W.A’의 결성과 성공 이후 갈등, 해체, 재결합 시도, 그리고 멤버 이지-이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중점적으로 소개한다. 어찌 보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들을 굵직한 사건 위주로 담은 특별할 게 없는 전기 영화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매력을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맛깔스럽게 담아낸 음악이 귀를 잡아끈다. 147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딱히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감독은 훌륭한 연기력과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는 기본, 함께 공연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캐스팅 조건을 내걸었는데, 그 덕에 ‘N.W.A’의 전설적인 곡들이 현실감 있게 재현됐다.
화려한 디제잉과 귀에 쏙쏙 박히는 랩은 중간중간 극에 활력을 불어 넣으며, 동시에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실제 캐릭터와 절묘한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배우들의 외모를 보는 건 또 다른 즐거움이다.
또 자극적이고 거침없는 가사, 공연 중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등의 거침없는 행동들은 보는 이에게 불쾌함이 아닌 카타르시스를 전한다. 사회적 문제를 꼬집고, 경찰의 부당한 압력에 맞선 저항적 움직임에서 나온 ‘이유 있는’ 행동이라는 걸 영화가 일러주기 때문이다. 특히 디트로이트 공연에서 ‘F*ck Tha Police’를 부르는 장면은 단연 압권, 배신감에 찬 아이스큐브가 이지-이를 향해 내뱉는 디스 랩도 짜릿한 쾌감을 준다.
극 전반에 흐르는 유쾌한 분위기도 흥미롭다. 경찰에게 끌려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다가도 녹음실에서 만족스런 비트를 만난 뒤 금세 감탄사를 연발하고, 죽일 듯 기 싸움을 벌이던 이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을 보면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
그룹 내부의, 다섯 남자의 우정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점은 아쉽다. 극중 ‘N.W.A’는 철저히 선의 위치에 있다. 영화가 ‘N.W.A’를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 닥터드레는 영화 개봉 후 과거 여성들에게 저지른 폭행을 사과하기도 했다.
아이스큐브의 솔로 앨범 수록곡 ‘블랙 코리아(Black Korea)’가 LA폭동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는데, 영화는 LA폭동 현장을 짧게 스치듯 다루는데 그친다. 때문에 아픔을 지닌 이들은 영화가 ‘N.W.A’의 긍정적 모습만을 강조했다는 비난을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