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작은 개념미술의 공공연한 관행
-조영남이 먼저 밝히지 않은건 의문
-대작료 10만원은 너무한 처사
-예술은 작가의 피땀? 낭만주의 관념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진중권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
조영남 씨의 미술작품 대작논란이 일파만파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한 무명작가가 나타나면서부터인데요. 이 무명작가 송 씨는 '조영남 씨의 작품을 자신이 8년 간 300여 점 대신 그렸다' 이렇게 주장을 합니다. 어떤 때는 99%를 자신이 그린 적도 있다고 하는데요.
조영남 씨 역시 대작 자체에 대해서는 인정을 했습니다. 다만 '대작은 시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자신의 콘셉트, 자신의 작품이 맞다는 겁니다.' 대중들은 큰 배신감을 느꼈고요. 검찰은 수사에 들어갔죠. 그런데요 희한하게도 미술계에서는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옵니다. 어떤 얘기일까요? 미학을 전공한 동양대 진중권 교수 연결을 해 보죠. 진중권 교수님 안녕하세요.
◆ 진중권> 안녕하십니까?
◇ 김현정> 그러니까 조영남 씨 말에 따르면 '어떤 때는 밑그림을 그려달라 부탁을 했고 어떤 때는 채색을 해 달라 부탁을 했다'는 거고요. 무명 작가 송 씨의 말에 따르면 ‘어떤 때는 99%를 자신이 그렸다’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양쪽 다 대작에 대해서는 인정을 한 거예요. 이런 행위가 과연 용납이 되는 건가요?
◆ 진중권> 사실 현대미술에서는 그건 논란거리가 아니거든요. 왜냐하면 현대예술은 콘셉트가 중요하고, 그 콘셉트를 물질적으로 실현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1%냐 99%냐 양적으로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 김현정> 별로 의미가 없다?
◆ 진중권> 예를 들어서 대표적인 사람, 앤디 워홀 같은 사람도 자기가 그림 그린 것 아니거든요. 대작을 맡긴 작품을 한 번 보기만 하고 사인만 했다고 합니다. '나는 그림 같은 것 직접 그리는 사람 아니야' 이렇게 얘기하고 다녔거든요.
◇ 김현정> 나는 그림 같은 거 직접 그리는 사람이 아니다?
◆ 진중권> 그러니까 대중들이 볼 때는 황당하겠죠. 우리 같은 현대미술 아는 사람들이 볼 때는 당연한 건데, 대중들에게는 좀 당혹스럽게 여겨지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겁니다.
◇ 김현정> 그러니까 지금 진 교수님 말씀대로 그러니까 '콘셉트가 중요한 거다, 핵심은 콘셉트다' 이 말씀이시군요.
◆ 진중권> 그렇죠. 요즘 미대에서는 데생 시험 안 보는 데도 있어요. 콘셉트가 중요하기 때문에요.
◇ 김현정> 지금 조영남 씨의 주장을 보면 '콘셉트는 100% 내 것이었다'라는 거고요. 반면 송 씨는 콘셉트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어서 좀 애매한데요. 만약 콘셉트도 송 씨 것이었다 하면 확실히 문제가 있는 건가요?
◆ 진중권> 그건 문제죠. 그건 빼도 박도 못하는 거고요. 그건 범죄죠.
◇ 김현정> 반면에 만약 조영남 씨 주장처럼 콘셉트는 100% 조영남 씨 거였다라면 그럼 문제가 없는 거고요?
◆ 진중권> 큰 문제는 없는데 그것도 좀 따져봐야 되는데. 대행을 시킨 거잖아요. 그런데 대작이 모든 회화의 모든 장르에서 허용되는 건 아니거든요. 개념미술이나 팝아트 같은 데서 주로 그게 허용이 되는데요. 기계적인 부분, 반복적인 부분입니다. 쉽게 말하면 작가의 터치, 개인적인 터치 같은 게 느껴지지 않는 그런 부분에만 원래 허용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조영남 씨 같은 경우에는 조금 그걸 넘어섰죠.
◇ 김현정> 바로 그 부분을 제가 질문을 드리려고 했어요. 개념미술이라는 장르. 앤디 워홀의 설치미술이라든지 팝아트라든지 이런 장르만 콘셉트가 중요한 거냐? 아니면 일반적인 순수미술, 풍경화 수채화 인물화 이런 것까지도 콘셉트만이 중요한 거냐? 이 질문을 드리려고 했었는데.
◆ 진중권> 아니죠. 콘셉트만 중요시하는 장르들이 있고요. 다른 부분들은 터치 같은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조영남 씨 같은 경우에는 화투를 그린 데서 볼 수 있듯이 이 분이 팝아트의 제스처를 취했거든요. 그리고 작품을 판매하는 방식도 되게 대량 생산 비슷하게 했더라고요. 이런 부분인데, 사실 앤디 워홀도 실제로 대행시킨 부분은 실크 스크린 복제나 이런 거였거든요. 그런데 실제 대작 작가 같은 경우에는 그거 보다는 더 많이 했기 때문에 그 작가의 입장에서는 이게 굉장히 부당하게 여겨질 소지가 있죠.
◇ 김현정> 그러니까 조금 애매한 선에 있는 부분이 있군요?
◆ 진중권> 그렇죠. 애매한 경계선이 있습니다. 문제 삼으려면 문제를 삼을 수도 있지만 또 딱히 문제 삼기도 뭐한 이런 게 있고요. 또 하나의 부분은 대작을 했다는 것을 알리는 거거든요. 보통 개념미술가나 팝 아티스트들은 공공연히 알리고 다니거나….
◇ 김현정> 뭘 알리고 다녀요? 내가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 진중권> 대행을 시킨다라는 걸요. 왜냐하면 대행을 시킨다는 사실 자체가 그 사람들의 예술의 콘셉트에 들어가 있거든요. 그런데 조영남 씨 같은 경우에는 그걸 안 했다는 말이죠.
◇ 김현정> 그런데 백남준 선생이 TV를 홀로 들 수가 없기 때문에 조수 도움을 받은 거 이해하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앤디 워홀이 프린트를 자기가 못하니까 기계의 도움을 받은 걸 이해를 하는데.
◆ 진중권> 조영남씨는 아마 그 이상의 도움을 받았을 겁니다. 그런데 그 작가한테 10만원 준 거잖아요.
◇ 김현정> 대신해서 그린 작가한테 작품당 10만 원을 줬죠.
◆ 진중권> 조영남 씨는 콘셉트는 내가 제공했고 예술은 내가 한 거고, 저 사람에게 노동을 시킨 거고 그 사람한테 공임을 줬다는 거죠. 그런데 그 작가가 스스로 볼 때는 공임 받은 것 이상의 작업을 한 거잖아요. 거기에 대한 마땅한 대우를 받고 싶은데 여기에 대해서 서로 견해가 다른 겁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사실 아무리 대작 작가의 작품을 그야말로 그냥 노동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하다 못해 저도 조교들한테 PPT 2시간짜리 시키는 데도 10만 원은 주거든요.
◇ 김현정> (웃음) 프리젠테이션 자료 만드는 데도요?
◆ 진중권> 그렇죠. 좀 심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노동법 위반이에요. 사기죄가 아니라. (웃음) 그리고 또 한 가지로요. '대행한다는 사실을 왜 알리고 다니지 않았을까?'입니다. 작가들한테 그런 의무는 없지만 알리게 하는 게 맞거든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윤리적 비판은 할 수 있는데 이걸 사기죄로 묶거나 이건 건 좀 과도한 것 같습니다.
◇ 김현정> 아니, 그런데 조영남 씨가 이 작품을 전시만 한 게 아니라 팔았거든요? 팔았다면 그때도 문제가 없습니까?
◆ 진중권> 당연한 거죠. 작품을 팔기 위해서 만들지, 안 팔기 위해서 만듭니까?
◇ 김현정> 아니, 왜냐하면 조영남 씨 작품을 돈을 주고 산 구매자들은 무명작가가 대신 99%를 그린 작품이라는 걸 모르고 샀을 가능성이 크고 그 사람들 입장에서 황당할 수 있거든요?
◆ 진중권> 그럴 수 있을 겁니다, 모르고 산 분들 같은 경우에요. 그런데 그 돈을 주고 작품을 살 분들이라면 알아야죠. 현대예술에서 중요한 건 콘셉트이라는 걸 알아야 되는 것이고요.
◇ 김현정> 현대미술, 개념 미술은 이렇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진중권> 그걸 알고 샀어야 되는 거고 그 부분을 가져다가 작가한테 책임을 떠맡기는 건, 물론 작가도 어느 정도 책임은 있겠지만 그게 본질적인 부분은 아니라고 봅니다. 실망은 할 수 있다고 해요. 그 마음은 내가 이해를 하겠는데, 어차피 현대예술이라는 게, 심지어 페인팅 하는 분들도 반복적인 덧칠 작업 같은 경우에는 미대생들을 사다 쓰거든요.
◇ 김현정> 아니, 이게 진짜 미술계의 일반적인 관행이에요?
◆ 진중권> 현대의 1960년대 이후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데 아까도 말씀을 드렸듯이 모든 분야에서 그러는 건 아니다라는 거죠.
◇ 김현정> 그런데 온라인 상에서 여러 가지 토론들을 하셨습니다마는 그중에 많은 분들이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문학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다 작가가 홀로 고통스럽게 완성해 가는 그 과정을 우리는 높이 사는 거고, 그래서 제품이 아니라 작품이라고 높여주는 건데 홀로 할 수 있는 그런 작업까지도 바빠서 다른 작가들에게 맡겼다면 그것을 고통스러운 작가의 창작물이라고 봐줄 수 있는 것이냐? 이건 제품에 가까운 것 아니냐?' 이런 의견이 있더라고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진중권> 그 관념은 굉장히 오래된 관념이거든요. 낭만주의적 예술 관념이고 바로 그걸 깬 게 현대미술이거든요. 일반적으로 대중은 예술은 고통스러워야 된다고 하는데 예술가들 중에서 고통스럽게 작업하는 사람 없어요. (웃음) 다들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고흐만 빼고.
◇ 김현정> 그렇습니까? 아니, 그런데 제가 미술에 문외한이고 일반적으로 그림을 못 그리는 범주 안에 들어가는 사람인데요. 어떤 미술가 한 사람을 잡고 '이러이러한 콘셉트로 작품을 만들어주세요'라고 하면 그게 미술 작품이 되는 건가요?
◆ 진중권> 될 수 있죠. 그렇죠. 그럼요. 얼마든지 할 수 있죠. 그걸 밝히고 한다면.
◇ 김현정> 그렇군요. 그러면 이번에 검찰이 수사를 들어갔어요. 지금 압수수색을 했고 사기죄 적용을 검토 중이라고 하는데 이 점은 어떻게 보십니까?
◆ 진중권> 대한민국 검찰이 좀 교양 수준을 갖췄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거 하기 전에 우리한테 좀 물어보면 되잖아요.
◇ 김현정> 미술계에?
◆ 진중권> 왜 한마디도 안 물어봅니까?
◇ 김현정> 그러면 이게 법적으로 문제될 건 아니라고 보십니까?
◆ 진중권> 문제될 게 없고요. 뭐랄까. 이런 섬세한 예술 문제에 접근할 때는 섬세하게 접근을 했으면 좋겠거든요. 교양수준을 좀 갖췄으면 좋겠습니다.
◇ 김현정> 송 씨라는 분도 예술을 하는 작가인데 이 분이 고소를 해서 이 문제가 시작이 된 거거든요?
◆ 진중권> 그런데 저는 그분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를 하거든요. 하지만 그런데 사실 그 콘셉트가 누구의 겁니까? 조영남 씨 거잖아요. 저작권은 조영남 씨한테 있는 겁니다. 할 수 없는 거예요. 만약에 자기가 그 그림을 그렸을 때 그렇게 높은 값에 팔렸겠느냐? 이런 부분도 좀 생각을 해야 되거든요. 다만 조영남 씨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충분히 주지 못한 건 분명해요.
◇ 김현정> 문제가 있다면 노동법에 적용받는 그 문제다, 이 말씀이시죠.
◆ 진중권> 그렇죠.
◇ 김현정> 알겠습니다. 오늘 여기까지 말씀 듣도록 하겠습니다. 진 교수님 고맙습니다.
◆ 진중권> 네, 감사합니다.
◇ 김현정> 동양대학교 진중권 교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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