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수사관들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이른바 고발사주 의혹과 관련, '키맨'으로 지목된 국민의힘 김웅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 압수수색에 나선 10일 국민의힘 유의동 의원이 김웅 의원실 측에서 작성한 압수수색 과정에 대한 '확인서'를 보여주며 불법적인 압수수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이른바 '윤석열 검찰'의 고발사주 의혹 사건에 고위공직범죄수사처(공수처)가 전면에 나섰다. 대검찰청이 진상조사를 진행하며 앞서 나가는 듯 했지만, 시민단체의 고발 이후 공수처가 전광석화처럼 압수수색을 진행하면서 사건의 주도권을 쥐게 됐다. 이례적으로 공수처의 수사가 빠르게 진행된 배경에는 제보자의 휴대전화 제출과 발빠른 분석 작업이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공수처, 9일 윤석열·손준성 입건…직권남용 등 4가지 혐의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 수사3부(최석규 부장검사)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윤 전 총장과 손준성 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現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을 9일 입건했다. 두 사람의 혐의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무상 비밀누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공직선거법 위반 등 4가지다. 이 가운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공무상 비밀누설 2가지 혐의만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다. 하지만 공수처는 나머지 혐의에 대해 '관련범죄'로 공수처가 수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공수처법 2조 4항의 라목에 따르면, '관련범죄'란 고위공직자범죄 수사 과정에서 인지한 그 고위공직자범죄와 직접 관련성이 있는 죄로서, 해당 고위공직자가 범한 죄를 관련 죄로 본다. 수사하는 사건은 하나이기 때문에 공수처가 수사 범위의 혐의로 수사를 하다가 관련사건의 혐의로도 언제든 적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의 경우 공수처 수사 범위인 직권남용 혐의로만 입건됐지만, 수사를 하면서 공수처 수사 범위가 아닌 국가공무원법 위반까지 혐의를 포함시켜 입건한 바 있다.
공수처 관계자는 "영장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공직선거법 위반까지 다 적시했는데 관련범죄를 (수사) 할 수 있으니까 영장을 발부 받은 것이지 않느냐"면서 "만약에 법상 문제가 있다는 판단이 있었다면 발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직권남용 혐의가 포착됐기 때문에 공수처가 수사에 나선 것이 아니라 실체적 사실 관계를 신속하게 규명할 필요성이 있다고 해서 하는 것"이라면서 "시작했다고 무조건 기소는 아니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예비후보가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교총회관에서 열린 한국교총 대표단과의 대화에 참석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제보자, 공수처에도 휴대전화 제출했었다
실제로 공수처는 9일 입건 후 이같은 4가지 혐의로 법원에 영장을 청구해 같은 날 밤 영장을 발부 받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10일 오전부터 손 검사와 의혹의 키맨으로 꼽히는 김웅 국민의힘 의원의 자택과 사무실 등 총 5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했다. 손 검사의 자택과 대구 고검 사무실, 김 의원의 자택 등은 비교적 빠른 시간 내 압수수색이 마무리됐다. 하지만 김 의원의 국회의원회관 의원실은 국민의힘 의원들과 김 의원의 반발로 대치 상태를 이어오다 압수수색을 집행하지 못하고 철수했다.
김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공수처가 압수수색 대상이 아닌 보좌진의 자료까지 들춰보려 했다면서 '불법 강제수사'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공수처는 보좌진의 자료도 압수수색 대상인 '사무실과 부속실, 대상자가 사용했거나 사용 또는 관리 중인 PC 및 서류'에 포함된다면서 법적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최종적으로 압수수색 집행에 실패한 공수처는 "법원이 필요성을 인정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을 적법 절차에 따라 집행하려는 수사팀의 합법적 행위를 다수의 힘으로 가로막고, 그 과정에서 검사에게 고성과 호통, 반말을 한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면서 "압수수색 영장 재집행 여부를 계속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공수처가 이처럼 신속하게 강제 수사에 나선 배경에는 제보자의 휴대전화 제출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제보자는 공수처로부터 먼저 연락을 받고 김 의원과 당시 텔레그램 대화를 나눴던 휴대전화와 텔레그램 대화방 캡처 사진 등을 모은 USB도 공수처에 제출했다. 공수처는 포렌식(디지털 증거 복원) 후 자료를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제보자는 대검찰청에 공익신고자 신청을 하고 관련 자료를 제출한 바 있다. 대검은 제보자의 휴대전화 포렌식을 통해 제보자가 '손준성 보냄' 문구를 임의로 변경했는지 여부를 확인한 결과 텔레그램 메시지에서 조작 흔적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10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 국민의힘 김웅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 압수수색에 들어간 가운데 김웅 의원이 사무실 앞에 잠시 나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윤창원 기자검찰, 수사 착수 '애매'…수사 하더라도 공수처 '이첩 요청'하면 따라야
공수처에서 발빠르게 정식 수사에 착수하면서 검찰의 수사 전환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대검은 감찰부에서 진상 조사를 마치고 수사로 전환하려고 고심 중이었다. 이번 고발사주 의혹에서 검찰이 직접 수사가 가능한 범죄는 공직선거법 위반이 유일하다. 대검 감찰부가 수사로 전환한다면 손 검사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입건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이유다. 이때 한동수 감찰부장이 전결로 수사 전환이 가능한지 김오수 검찰총장 승인이 있어야 하는지도 내부 논의 중으로,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대검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수사를 착수했더라도 공수처법상 공수처가 대검에 이번 의혹 사건의 이첩을 요구하면 대검 감찰부는 따를 수 밖에 없다. 공수처법 24조(다른 수사기관과의 관계)에 따라, 공수처의 범죄수사가 중복되는 다른 수사기관의 범죄 수사에 대해 처장이 수사의 진행 정도 및 공정성 논란 등에 비춰 공수처에서 수사하는 게 적절하다고 판단해 이첩을 요청하는 경우 수사기관은 이에 응해야 한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고발사주 의혹의 경우, 공수처가 먼저 수사를 시작한데다 검사의 공정성 논란 문제도 불거질 수 있기 때문에 검찰이 수사를 시작하기에는 애매한 상황"이라면서 "검찰도 수사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 건의 경우 공수처에 협조해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