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춘 인천해양경찰서장(왼쪽)과 윤형진 국방부 국방정책실 정책기획과장이 지난 16일 인천시 연수구 인천해양경찰서에서 각각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최종 수사 결과 브리핑과 추가 설명을 마친 뒤 취재진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해양경찰이 2020년 9월 서해 연평도 인근에서 실종된 뒤 북한군 총격에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사건에 관한 수사 결과를 1년 9개월 만에 뒤집은 것에 대해 조직 내부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21일 해경 등에 따르면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해경 게시판'에 지휘부를 성토하는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이 게시판은 해경 소속 이메일 계정을 인증한 사람만 글을 올릴 수 있다.
"우리의 무능력을 우리 입으로 소문낸 셈"
글은 대부분 북한군 총격으로 사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사망 당시 47세)씨 사건의 수사결과를 번복한 지휘부를 비난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한 해경 직원은 "이번 번복으로 우리의 무능력을 우리 입으로 동네방네 소문낸 셈이 됐다. 조직에 충성심이 없어진다"고 밝혔다. 다른 직원은 "2014년에 (해경이) 해체될 때 억울했는데 지금은 해체된다 해도 그러려니 할 듯"이라고 맞장구쳤다.
또 다른 직원은 "해경은 세월호 사건도,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도 본인들의 수사판단 결과보다는 정부의 결정과 판단에 앵무새처럼 답을 읊어대고 있는 한심한 조직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적었다. 이씨 사건에 대해 전 정부 때는 '자진 월북'으로 발표했다가 현 정부에서는 '월북이 아닐 수 있다'라고 번복한 점을 두고 수사결과가 정권의 입맛에 따라 바뀐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씨는 2020년 9월21일 오전 2시쯤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어업지도선 무궁화10호에서 당직근무를 서다 실종됐다. 그는 다음날 오후 3시30분쯤 북한 장산곶 해역에서 발견됐으며 같은 날 오후 9시40분쯤 북한군 총격으로 숨졌다.
해경은 이씨가 숨진 뒤 2개월여 동안 세 차례 브리핑을 열어 이씨가 자진 월북했다고 발표했다. 해경은 당시 월북의 근거로 △실종 당시 신발(슬리퍼)이 선상에 남겨진 점 △구명조끼를 착용한 점 △과도한 채무에 시달려 왔던 점 △월북의사를 표명한 점 △군 당국이 북한의 통신 신호를 감청한 첩보 △전문기관을 동원해 분석한 해상 표류 예측 결과 등을 꼽았다.
월북 기자회견 해경간부 "지휘부 검토 거쳐 발표" 해명
연합뉴스그러나 사건 1년 9개월이 흐른 뒤 수사결과는 180도 달라졌다. 인천해양경찰서는 지난 16일 별다른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이씨의 자진 월북 의도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기존 수사 발표 내용을 뒤집었다.
김대한 인천해경서 수사과장은 지난 16일 브리핑에서 "당시에는 국방부 자료를 신뢰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정황 등으로 그렇게 판단했지만, 지금은 입증 단계인데 (월북을) 인정할 만한 게 없었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그때는 국방부 자료를 신뢰했는데 지금은 신뢰하지 않느냐. 해석이 달라졌느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사건 발생 직후 중간 수사 결과를 언론에 브리핑한 해경청이 아닌 인천해경서가 이번 최종 수사 결과 발표를 맡은 상황을 두고도 뒷말이 나온다.
한 해경 직원은 블라인드에 "인천서장(에게) 총대 메도록 한 것을 보니 정말 실망스럽더라"며 지휘부를 비판했고, 또 다른 직원은 "월북 발표는 본청, 번복 발표는 인천(해경)서. 지휘부는 충성이라는 경례를 받을 자격이 있을까요"라고 되물었다.
1년 9개월 전 이씨의 자진 월북을 발표한 윤성현 전 해양경찰청 수사정보국장은 당시 발표문에 대해 "지휘부 검토를 거쳐 작성됐다"고 말했다.
한편 박상춘 인천해경서장은 최종 수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중간 수사 결과 발표는 본청이 했는데 왜 민감한 최종 발표는 우리보고 하라느냐"며 본청에 문제 제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김 과장은 브리핑에서 "이 사건을 취급한 경찰서가 인천해경서"라며 "중간 (수사 결과) 발표는 본청이 했지만, 마지막으로 (사건을) 종결한 곳이 인천해경서이기 때문에 우리가 브리핑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