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를 받고 있다. 윤창원 기자"치안 업무에 대한 지휘, 또 필요하다면 감독 업무를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해석하고, 제 해석이 맞다고 그렇게 생각합니다."(2022년 7월 26일 행정안전부 업무보고 사전 브리핑 중)
"(장관님이 현재 법으로 경찰사무를 지휘할 권한 있습니까?) 지금 현행 법령상은 없습니다.", "(행안부는 경찰청을 지휘·감독합니까 안 합니까?) 지휘·감독 권한이 지금 없습니다."
(2022년 11월 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 질의 중)
행정안전부 이상민 장관의 '경찰 지휘·감독 권한'에 대한 생각은 이태원 핼러윈 참사 전과 후로 나뉘는 듯 보인다. 참사 전 경찰국 신설을 강행할 때는 "경찰을 지휘·감독할 권한이 있다"고 강조하더니, 참사가 터진 이후엔 "지휘·감독할 권한이 없다"고 말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행안부는 "경찰국 신설 당시 반대가 심해 애초 계획대로 시행령을 만들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경찰국을 통한 경찰을 지휘·감독할 권한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 장관이 말을 바꾼건 아니라는 취지다.
하지만 이 장관은 애초부터 경찰국과는 관계없이 본인에게 치안 업무에 대한 지휘·감독 권한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행안부 설명과는 배치되는 대목이다. 이 장관의 말 바꾸기를 두고 '권한만 갖고 책임은 회피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이 장관이 경찰국 신설을 강행하면서 내세웠던 명분인 '경찰 지휘·감독'을 참사 이후 스스로 약화시키면서 경찰국 존속을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장관이 경찰 지휘·감독 권한을 인정하면 참사의 책임을 떠안게 되는 반면, 면피를 위해 권한을 부정하게 되면 경찰국 존치의 명분도 희석되기 때문이다.
15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행안부는 지난 6월 27일 보도자료를 통해 "역대 정부에서는 청와대 민정수석 또는 치안비서관이 행안부를 건너뛰고 비공식적으로 경찰을 직접 통제했다. 그러나 이는 헌법과 법률이 정한 시스템을 무시하는 것이 될 수 있다"며 "행안부 내 경찰 업무 조직을 신설해 경찰에 관한 국정운영을 정상화한다"고 밝혔다.
이어 "행안부장관은 정부조직법에 따라 치안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고 있다. 정부조직법은 제34조에서 행안부장관의 사무를 열거하면서 별도의 항을 만들어 경찰청을 통해 치안사무를 관장하게 하고 있다"며 "이러한 정부조직법 규정에 따라 행안부장관은 치안업무를 직접 수행하지는 않더라도 경찰청의 업무가 제대로 수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지휘·감독할 책임과 권한이 있다"고 강조했다.
또 "정부조직법 제7조 제4항 역시 행안부장관은 경찰청의 중요 정책수립에 관해 직접 지휘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경찰법 등 개별 법률에도 행안부장관의 경찰 고위직 인사제청권 등 경찰에 대한 여러 권한을 규정하고 있다"며 "헌법과 법률에 부여된 권한을 행사하기 위해 조직을 신설하는 것은 입법자가 부여한 의무를 실행하려는 것이므로 정부의 시행령으로 추진 가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이 장관은 브리핑에서 "행안부 장관의 관장 업무에서 치안 업무가 빠진 것이 아니다. 별도의 항을 만들어서 치안 업무는 경찰청을 통해서 관장하도록 한 것"이라며 "우리가 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이 사무 관장의 주체가 누구인가는 바로 명백하게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조직법 규정에 따라서 행안부 장관이 치안 업무를 직접 수행하지는 않더라도 경찰청의 업무가 과연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하고 지휘·감독할 책임과 권한이 있다"며 "그러한 업무를 위한 조직을 당연히 행안부 안에 둘 수 있고 오히려 두는 것이 마땅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리하면 현행법 해석상 행안부 장관에게 경찰청을 지휘·감독할 권한이 있고, 과거 청와대에서 비공식적으로 경찰을 직접 통제한 것은 비정상이었으므로 행안부 내 새로운 조직을 신설해 경찰을 지휘·감독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 '경찰 통제' 등 비판이 일었고, 이 장관은 "이번에 신설되는 경찰국은 치안 업무하고는 전혀 상관없다"며 "치안 업무에 대한 지휘나 감독을 함에 있어서는 굳이 조직이 필요 없을 수도 있다. 적어도 경찰국을 통해서는 그러한 업무를 하지 않겠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치안 업무에 대한 지휘, 또 필요하다면 감독 업무를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해석한다. 제 해석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장관의 경찰 지휘·감독 권한은 애초부터 존재하고, 별도의 조직 없이 직접 행사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지난 8월 시행령을 통해 행안부 내 경찰 관련 지원조직으로 '경찰국'이 신설됐고, '행안부장관의 소속 청장에 대한 지휘 규칙' 등이 제정됐다.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있다. 윤창원 기자하지만 핼러윈 참사 이후 이 장관은 '경찰 지휘·감독 권한이 없다'며 돌연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 장관은 지난 7일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이형석 의원으로부터 '행안부는 경찰청을 지휘·감독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지휘·감독 권한이 지금 없다"고 답했다. 이어 8일 국회 예결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으로부터 "경찰에 대한 지휘 권한과 책임이 있느냐"는 질문에 "없다"고 말했다. 또 "일체의 지휘 권한이 없다"며 "법적 책임은 당연히 없다. 도의적이나 정치적인 책임은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말을 바꾼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자 행안부는 10일 반박자료를 내고 "경찰 지휘·감독 권한을 행사하려면 감찰과 징계권이 필요하고 최소한 경찰로부터 경찰 업무를 보고받아야 한다"며 "다만 감찰과 징계권은 법률 개정사항으로 즉시 실시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6월에 의도했던 내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지휘 규칙 및 경찰국이 만들어졌고 결국 행안부 장관에게는 이번 이태원 사고와 같은 치안상황에 대한 지휘·감독을 수행할 조직과 권한 및 보고체계가 없게 됐다"면서 "현재의 행안부 경찰국은 출범 당시부터 치안상황을 지휘·감독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이와 관련한 보고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행안부는 경찰 내부 반대로 경찰국을 통한 경찰 지휘·감독 권한을 시행령에 포함하지 못했다는 입장이지만, 이 장관이 줄곧 경찰국 신설과는 관계없이 현행 법률 해석상 장관에게 경찰에 대한 지휘·감독 권한이 존재한다고 반복 강조해 온 점을 고려하면 경찰국에 국한된 행안부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이 장관이 참사 책임을 피하기 위해 말을 바꾸면서 경찰국 존속에 대한 명분도 사라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 내부의 강한 반대에도 경찰국 설치를 강행할 때는 '경찰 지휘·감독을 위한 조직'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는데, 이제 와서 '경찰 지휘·감독과는 무관한 조직'이라고 선을 그은 셈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태원 사고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전날 브리핑을 통해 "행안부장관이 경찰에 대한 지휘·감독 권한이 있는지에 대해 정부조직법, 행안부장관 소속 청장에 관한 규칙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