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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칼럼]국민이 우습나!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연합뉴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연합뉴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 단장은 정곡을 찔렀다. 그러나 국방부는 고질병인 '제식구 감싸기'라는 돌림병을 떨치지 못하고 수해 작전 중 사망한 한 병사를 또다시 값 없이 보내려 하고 있다. 고 채수근 상병은 7월 19일 경북 예천군 내성천에서 장화를 신은 채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다 숨졌다.
     
    채 상병이 사망하기 전날인 7월 18일, 내성천은 어떤 상태였는가. 해병대 장갑차가 입수했다가 급류로 5분만에 나와야 할 만큼 물살이 거셌다. 물은 너무 혼탁해서 수색 이라고는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해병대 1 사단장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실종자 수색 작전에 나서는 병사들에게 구명 조끼,로프 어느 것 하나 안전 장비를 구비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심지어 장병들이 예천 현장으로 떠난 당일에야 임무가 수색 작전임을 알려주었으니 정상적인 지휘관이라 할 수 있을까.

    연합뉴스연합뉴스 
    임성근 1 사단장은 수색 작전 사진을 보고 받고 "훌륭하게 공보 활동이 이뤄졌구나. 내가 말한 대로 적색 티 입고 작업을 잘했구나"라고 스스로 고취되었다. 사고 발생 전만 해도 그에겐 모든 것이 아름다웠던 모양이다. 비슷한 시각, 내성천 현장에 도착한 대대장들의 카톡 대화가 뒤늦게 또 공개 됐다. 대대장은 선임 대대장에게 현장 자신을 찍어 보낸 뒤 "물이 아직 깊어 강변 일대 수색이 겁난다. 상반신까지 올라오는 잠수복이 필요하다"고 보고 했으나 "아무 대책 없이 와서 답답하다"는 선임 대대장의 탄식을 함께 했다.
     
    해병대 사건이 민간 경찰에서 제대로 수사가 될지 알 수 없다. '집단항명 수괴, 항명' 등의 난리법석을 떤 국방부가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를 완전히 번복했으니 경찰에게는 이미 가이드라인이 제시된 것이나 다름없다. 채 상병 사망 사고는 앞으로 경찰,검찰,기소 단계에서 수많은 논란을 야기할 '폭탄'이 되었다. 현재 분위기라면 정권이 바뀐 4년 후나 돼 서야 국민이 납득할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 윤창원 기자이종섭 국방부 장관. 윤창원 기자 
    그 정점에 이종섭 국방장관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위치하고 있다. 국방 장관의 이첩 보류 지시와 사유는 모호하고 불법적이다. 이 장관은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왜 보류 지시를 했냐"는 물음에 "결재 보고를 받은 다음날 보좌관에게 일정 보고를 받으며 초급 간부들에게 상당한 트라우마가 있어 짚어봐야 한다고 생각해 전화로 급하게 이첩 보류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는 답변이다. 초급 간부 트라우마와 1 사단장,여단장을 과실 치사 혐의자에서 뺀다는 것은 이율 배반적 조치다. 국방장관은 틀림없이 '무엇의 동기'를 감추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첩 보류 지시 이후, 국방부 검찰단과 조사단의 행위는 '서해 공무원과 강제북송 사건'을 뛰어넘을 만큼 불법적 요소가 넓고 크다. 국방부 검찰단은 해병대 수사단이 경북 경찰에 사건을 이첩한 당일, 9백 페이지가 넘는 수사 기록을 경찰로부터 모두 회수했다. 국방부는 박정훈 대령의 집단항명수괴죄 수사를 위해 증거로 회수했다고 주장한다. 현행법 상 국방부 검찰단은 회수 권한이 없는 주체다. 설사 항명 수사의 증거 자료가 필요하다면 해병대 수사단에 보관된 '원본'을 압수수색 했어야 했다. 경찰에 이첩된 자료를 회수한 건 직권남용 일 뿐만 아니라 명백히 공무집행방해 혐의에 해당한다.

    신범철 국방부 차관. 윤창원 기자신범철 국방부 차관. 윤창원 기자 
    신범철 국방차관의 말은 더 가관이다. 신 차관은 "국방부 장관이 해병대에 수사 결과를 보고하라 한 적이 없고, 해병대 스스로 보고했다"고 말했다. 이는 국방부가 수사에 관여할 수 없다는 점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발언인데, 그렇다면 이첩 보류 지시를 내릴 수 있는 권한 또한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심지어 그는 "장관 결재는 중간 결재다. 해병대는 왜 말을 하면 안 듣나"라고 말했다. 중간 결재라는 우스꽝스런 변명은 차치하고 보고 의무가 없는 것을 알아서 보고까지 했다는 건데 나중엔 '왜 해병대는 말을 안 듣나'라고 면박을 주었을까.
     
    해병대 사건은 전형적으로 아래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현 정부의 태도와 일치한다. "책임이라는 것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하는 것이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져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윤석열 대통령 인식과도 동일하다. 이태원 참사, 오송참사 모두 한결 같았다. 정부가 '하위직 공무원에게 책임 떠넘기기 경연 대회'라도 열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다.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해병대 고 채수근 상병. 연합뉴스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해병대 고 채수근 상병. 연합뉴스 
    일단 잡아 떼서 아래 사람에게 책임을 묻고, '내로남불 식' 국가 사업이라고 비판하면 '백지화'하고 사안을 뭉개 버리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공정과 상식으로 국민을 섬기겠다고 출범한 윤석열 정부다. 그런데 도리어 국민을 섬기는 정부가 아니라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정부로 보인다. '국민이 우습나'라는 생각이 민심의 바다 위에 흐르면 그 정권 운명은 예상하고 말 것도 없다. 제발 국민을 안중에 두기를 소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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