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송은석 기자)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과 수사기관의 부실 축소 수사를 규탄하는 대학가의 시국 선언과 촛불집회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일부 대학들은 '침묵'을 지키며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가장 눈길을 모으는 곳은 박근혜 대통령의 모교인 서강대학교다. 서강대 총학생회는 "너도 나도 시국선언이 트렌드가 되고 있다"며, 입장 표명을 유보한 채 시국토론회를 제안하고 나섰다.
서강대 김지호 총학생회장은 CBS노컷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대통령의 모교여서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언론들의 시선이 집중돼 조심스럽다"고 했다.
"성급하게 진행하기 쉽지 않고,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어 조심스럽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것.
그는 또 "시간이 좀 걸리는 건 인정하지만, 다른 학교 총학생회와 논의 중"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대한민국 학생사회 대표 총학생회장 시국토론회 △전문가 및 정당, 정부 관계자 공개 토론회 △대통령과의 대화 등 3차례에 걸친 시국토론회를 준비중이라고 했다.
박근혜정부 들어 국무총리와 법무장관, 다수의 청와대 참모진을 배출한 성균관대학교도 다른 주요 대학들과 달리 '암중 행보'를 이어가긴 마찬가지다.
자연과학캠퍼스의 경우, 총학생회가 아예 페이스북을 통해 "입장을 표명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못박았을 정도다.
성균관대 자연과학캠퍼스 임종민 총학생회장은 "남들이 한다고 우후죽순 따라갈 수 없다"며 "내용에 대한 이해 없이 거창한 말만 앞세워 남들이 한다고 그저 따라하는 것은 시국선언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시국선언 초반 총학생회장끼리 심야 회동까지 했던 연세대와 고려대의 발걸음도 더딘 편이다.
연세대학교 총학생회는 지난 21일 홈페이지 공지를 통해 "집행부는 시국선언을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부적으로 결정했다"면서도 "정치세력적인 흐름에 휩쓸리는 것을 지양하며 학내 의견 수렴과정을 거쳐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연세대 고은천 총학생회장은 "국정원 사건에 대해 전교생의 의견을 받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할 것"이라며 "이번 주 안에 학생 의견을 모으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또 "서울대학교 총학생회 등이 나서기 전에 스스로 논의를 하지 않아 준비가 길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통감하고 있다"면서 "학생들의 총의가 어떻게 모일지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고려대학교도 지난 23일 중앙운영위원회 차원의 규탄 성명서를 발표하기로 결정했을 뿐, 총학생회 차원의 가시적인 행보는 눈에 띄지 않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총학생회 역시 지난 24일 중앙운영위원회를 열어 입장을 밝히기로 했을 뿐, 총학 차원의 대응 여부나 구체적인 방식은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상태다.
각 대학 총학생회의 행보가 더디다 보니, 이를 참다 못한 학생들이 개별적으로 나서는 상황까지 불거지고 있다.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학생 4명은 지난 17일 개인 명의로 학교에 대자보를 붙여 "기본적인 민주주의의 규칙이 파괴됐다는 데 분노했다"고 입장을 냈다.
성신여대 학생 119명도 지난 22일 트위터에 "민주주의는 정치색에 관계없이 국민 모두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란 내용의 '평학생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입장을 밝히지 않은 총학생회를 대신해 시국선언을 한 것.
일부 대학 총학생회의 이같은 행보를 바라보는 기성 세대나 전문가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은 편이다.
4.19와 5.18, 6.10 등 현대사의 주요 순간마다 '도화선' 역할을 해온 상아탑의 기백과 지성을 이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특히 이들 총학생회가 학내 절차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국가 전체의 민주주의에 관한 문제 제기를 외면하는 '모순'에 빠져있다고 지적한다.
한신대학교 국제관계학부 조성대 교수는 "대학이 방학을 맞은 마당에 국면회피용, 립서비스용으로 표면적 사유를 대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조 교수는 "깨어있는 지성인으로서 국가공권력에 의한 정치개입 의혹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보수와 진보를 떠나 절차적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문제를 지적해야 할 일인데도 의지조차 없는 것 아닌가 싶다"고 우려했다.{RELNEWS:right}
가령 '생활 정치'를 표방한 총학생회들이 진영논리나 정치적 공방에 왜곡될 개연성을 우려했다면, 오히려 먼저 문제를 제기해서 스스로 판을 벌여야 했다는 것이다.
후마니타스 박상훈 대표도 "전쟁이나 개헌 등 국민투표에 준하는 사안이라면 학생 전체의 의견을 모을 필요가 있다'면서도 "국정원 선거 개입 사건은 총학생회 스스로 입장을 밝혀도 무방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