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한 시위참가자가 8월 31일 교통 표지판을 방패로 쓰고 있다. (사진=AP 제공/연합뉴스)
홍콩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가 13주째 이어지면서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이 한층 더 격렬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시위대가 1일 도로와 공항철도 지하철역을 점거해 홍콩 국제공항을 완전 고립시키면서 공항 승객들은 발이 묶이는 큰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일부 공항 승객들은 홍콩 시내로 진입하기 위해 짐을 끌고 수km를 걸어서 이동했다.
◇ 송환법 반대 시위대 홍콩 국제공항 통하는 교통편 마비시켜
시위대는 이날 공항으로 통하는 도로와 철도를 통제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시위대는 지난 달 12~13일, 이틀간 홍콩 국제공항을 점거해 공항 기능을 마비시킨 전례가 있다. 이 시위로 홍콩 법원이 공항 내 시위를 제한하자 이제는 홍콩으로 통하는 교통편을 차단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오후 1시(이하 현지시간)가 되자 집결장소인 홍콩 국제공항 공항버스 터미널에는 검은 옷과 마스크를 착용한 시위대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천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는 공항 주변 도로에 장애물을 설치하며 차량 통행을 가로막기 시작했다.
홍콩 국제공항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승객들은 통상 버스가 아니면 지하철 통청(Tung chung)역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하거나 공항급행철도를 통해 직접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이날은 시위대에 의해 공항에 진입할 수 있는 대중교통 수단들이 차례차례 차단됐다.
우선 시위대가 공항과 도심을 연결하는 공항철도 선로에 쇠막대기와 벽돌들을 던져 넣는 방법으로 열차운행부터 방해했다. 홍콩 정부는 센트럴역에서 아시아월드 엑스포역까지 공항급행철도의 운행 중단을 공항 측에 요청했다.
공항 승객들이 많이 이용하는 통청역은 시위대에 의해 역기능을 상실할 정도로 아수라장이 됐다. 검은 옷의 시위대는 야구 방망이 등을 이용해 티켓판매기와 개찰구에 설치된 검표기계를 부쉈고 역 근처에 불을 질렀다. 불을 끄기 위해 소화전을 사용하면서 역내는 물바다가 됐다. 일부 시위대는 통청역 부근에 게양돼 있던 중국 국기, 오성홍기(五星紅旗)를 끌어내린 뒤 불태웠다.
시위대가 도로에 장애물을 설치하면서 지하철 통청(Tung Chung)선의 종점인 통청역에서 공항을 연결하는 버스들의 운행이 중단된데 이어 공항이 있는 란터우 섬과 홍콩섬을 유일하게 이어주던 칭마대교(靑馬大橋)도 시위대의 장애물 설치로 기능을 상실했다. 공항 주변의 상황이 험악해지자 공항 보안업체가 공항 출입문을 봉쇄하고 취재기자들의 접근마저 차단해 버리면서 홍콩 국제공항은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 상태로 빠져들었다.
◇ 공항 이용 승객 큰 불편, 수십 km 걸어서 이동공항이 고립되자 승객들의 불편은 극에 달했다. 칭마대교가 막혀 차량이 멈춰서자 차에서 내려 짐을 끌고 고속도로를 따라 공항까지 20km에 달하는 거리를 걸어가는 승객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통청역에 내린 승객들 역시 셔틀이 중단되면서 6km 가량을 걸어서 이동해야만 했다. 공항에 도착한 승객들의 홍콩 시내 진입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철도와 도로가 불통인 된 것을 몰랐던 승객들은 하염없이 버스와 열차를 기다렸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기다리다 못한 일부 승객들은 15km 밖에 위치한 디스커버리 베이까지 걸어가 여객선을 타고 홍콩섬으로 향해야만 했다.
비행기 탑승 승객들이 도착하지 못하면서 비행기 운항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날 밤 8시 현재 캐세이 퍼시픽 등 26편의 홍콩발, 17편의 홍콩행 항공기의 운항이 취소됐고 항공기 44편의 운항이 연기됐다.
저녁 7시쯤이 되면서 시위대는 홍콩 국제공항을 떠나 시내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대중 교통수단이 불통이 된 탓에 시위대 역시 고속도로를 따라 걸어서 복귀하는 방식을 택했다. 시위대가 공항 고속도로를 따라 행진하자 일부 차량 운전자들이 시위대에 물을 건네며 격려하는 장면도 포착됐다.
◇ 토요일 집회 불허에도 홍콩 시민들 거리로 곳곳에서 경찰 충돌한편 전날인 31일에는 경찰의 대규모 검거작전과 위협, 민간인권전선의 집회 전격 취소 선언에도 불구하고 수십 만의 홍콩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곳곳에서 경찰과 충돌했다. 이날 홍콩의 재야단체인 민간인권전선(민전)이 대규모 집회 장소로 공지했던 홍콩 센트럴의 차터가든 공원에는 집회 예정 시간이었던 2시 반쯤이 되자 검은 옷 차림의 시민들이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들은 한결같이 '종교 집회'와 '쇼핑'을 핑계로 도심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홍콩 시민들은 폭우가 쏟아지는 속에서도 '홍콩 독립' '홍콩 해방' 등 구호를 외치며 홍콩 섬 코즈웨이베이에서 센트럴까지 끝이 보이지 않는 행진을 이어갔다. 홍콩 사법부인 입법회 건물 주변에 모인 시위대가 시간이 지나자 경찰을 향해 욕설을 하고 레이저 포인터를 쏘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경찰은 저녁 5시 30분쯤부터 최루탄을 쏘며 시위대 해산에 나섰고 정부 청사 부근에서는 시위대와 경찰이 화염병과 물대포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경찰이 강력하게 시위대를 압박하자 시위대는 완차이 오조 호텔 앞에서 바리케이트를 치고 불을 지르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시위대가 바리케이트에 붙이 불이 호텔 입구까지 번지는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시위가 격화되자 경찰의 대응도 거칠어졌다. 빅토리아공원 인근에서는 시위대와 대치하던 경찰이 총구를 하늘로 향해 실탄 한 발을 경고 사격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보도했다. 경찰의 실탄 경고사격은 지난주에 이어 두 번째다. 홍콩 경찰이 최정예 특수부대인 '랩터스 특공대'를 지하철 객차 안에 투입해 시위대를 대거 체포한 소식도 알려졌다. 그간 안전사고를 우려해 지하철 역사 안으로 후퇴한 시위대를 쫓아 검거하지는 않았던 홍콩 경찰은 관례에 비춰볼 때 이례적인 조치였다.
홍콩 경찰은 홍콩 입법회의 제레미 탐 의원과 아우 녹힌 의원을 경찰의 시위대 해산을 방해한 혐의로 체포했다가 보석으로 석방했다. 또 조슈아 웡과 데모시스토당 당원 아그네스 초우도 체포돼 조사를 받은 뒤 법원의 보석 결정으로 풀려났다. 홍콩 민족당 창립자 앤디 찬과 홍콩대 학생회 전 회장 엘시아 순, 릭 후이 사틴구 구의원 등도 29일 밤부터 잇따라 체포됐다.
홍콩 경찰은 토요일 시위로 총 63명을 체포했다고 1일 밝혔다. 남성이 54명, 여성이 9명이었으며 13살의 남자아이도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 소년이 2개의 가솔린 폭발물과 2개의 라이터를 소지하고 있다 프린스 에드워드 역에서 붙잡혔다고 설명했다.
◇ 홍콩 시위 2일에도 이어져, 총파업 예고송환법 반대 시위는 2일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시위대는 이날도 전날과 마찬가지로 공항으로 통하는 교통 수단을 차단하곘다고 예고했다. 또 홍콩 내 10개 대학 학생회는 신학기를 맞아 2주간의 동맹 휴학에 들어간다. 일부 중·고교생들도 수업 거부, 침묵시위, 시사 토론 등의 방식으로 송환법 반대 의사를 나타낼 예정이다. 또 2~3일에는 의료, 항공, 건축, 금융, 사회복지 등 21개 업종 종사자들이 참여하는 총파업도 예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