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코엑스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열린 '2020 한국이미지상 시상식'(CICI Korea 2020)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가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정부의 남북관계 우선 발전론에 미국 측이 부정적 반응을 보이며 실현 가능성이 의문시되는 가운데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의 발언이 민감한 변수로 떠올랐다.
해리스 대사는 지난 16일 외신간담회에서 북한에 대한 개별관광 등 우리 정부의 독자적 남북협력 추진 방침에 대해 대북제재 저촉 가능성을 언급하며 사실상 제동을 걸었다.
그는 "향후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서 다루는 것이 낫다"며 한미 간 협의를 강조했다.
이는 남북협력은 북한 비핵화 진전과 보조를 맞춰야 한다며 한국의 독자적 대북접근을 경계하는 미국 측 입장을 반영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16일(현지시간) 미국의소리 방송(VOA) 인터뷰에서 한국 측 구상에 대해 "우리가 달성하려는 비핵화 노력을 약화시킨다"며 "부적절하다"고 비판했고, 크리스 밴 홀런 민주당 상원의원도 "(한국의 행동은) 실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미국이 강경 기류를 드러내고 북한은 우리의 전향적 태도에도 묵묵부답하면서 독자적 남북협력은 처음부터 난관에 봉착한 듯했다.
하지만 해리스 대사의 외신간담회 발언이 예상 밖 변수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관계 복원 신년구상을 사실상 정면 비판함으로써 한국의 주권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가 역풍을 부른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17일 해리스 대사의 발언에 대해 "대사가 주재국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언론에 공개적으로 언급한 부분은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경고성 발언을 했다.
통일부도 이날 언론브리핑에서 "대북정책은 대한민국의 주권에 해당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며 불쾌감을 표명했다.
여당은 물론 일부 야당도 비판대열에 합류했다.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해리스 대사는 본인의 발언이 주권국이자 동맹국인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의 오해를 촉발할 수도 있다는 깊은 성찰을 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박주현 민주평화당 수석대변인은 "또다시 외교적 결례를 범한다면 '외교적 기피 인물'로 지정하고 추방해야 할 것"이라고 했고 김정현 대안신당 대변인은 "해리스 대사는 외교관으로서 선을 넘는 발언을 취소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동북아평화협력특별위원장인 송영길 의원은 MBC 라디오에 출연해 "우리가 대사가 한 말대로 따라 한다면 대사가 무슨 조선 총독인가"라며 비판 강도를 높였다.
정부와 정치권이 이처럼 발끈한 반응을 보인 데에는 해리스 대사가 평소 외교관답지 않은 화법과 군림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온 탓이 크다.
그는 지난 문 대통령이 신년사를 발표한 지난 7일에도 KBS 인터뷰에서 미국과의 사전협의를 강조하며 우리 정부의 대북구상에 어깃장을 놨다.
해리스 대사는 특유의 콧수염이 일본계 혈통인 점과 연관되며 한국 내 부정적 이미지를 키우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테러 피습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양국 우호 증진에 기여했던 전임 마크 리퍼트 대사와는 여러모로 비교됐다.
해리스 대사의 발언은 단지 역풍에 그치지 않고 독자적 남북협력의 동력을 키우는 불쏘시개 역할도 예상된다.
인도적 지원을 위한 기본적 남북교류조차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현실에 불만이 높은 가운데 내정간섭과 주권침해 행태까지 더해지면서 한국 내 여론을 자극한 것이다.
청와대는 "남북협력 관련 부분은 우리 정부가 결정할 사안"임을 강조하며 추진동력으로 역이용할 태세다. 여당도 정부의 새로운 대북접근에 대한 본격 지원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