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중국 중부 허난성 성도인 정저우 시내 거리가 폭우로 침수된 모습. 연합뉴스정저우를 중심으로 중국 중부 허난성 일대에서 수해 피해가 발생한 지 보름이 지나고 있다. 정저우에서는 1년에 내릴 비가 단 3일 만에 내리면서 커다란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지난달 20일 저녁 달리던 전철이 지하 터널 속에서 멈추면서 인명피해가 컸다. 하마터면 열차에 갇혀 있던 500여 명이 모두 희생될 뻔했다.
이 소식이 중국 전역에 알려진 것은 21일 아침이 되어서다. 중국 땅이 아무리 넓고 밤 시간대가 포함돼 있다손 치더라도 인구 1천만 명의 대도시에서 벌어진 물난리가 반나절이 돼야 알려졌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당시 아침만 해도 뭐가 뭔지 잘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 최고'에 도취돼 나사가 빠져있었을 수 있다.
지난달 20일 허난성 정저우에서 폭우로 지하철에 승객들이 갇힌 모습. 연합뉴스인명피해 집계를 보면 더 어처구니가 없다. 21일 아침에 지하철 승객 12명이 숨졌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그 이상의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 수해로 인한 사망자 숫자도 날이 갈수록 늘기 시작해 25명, 50명, 99명으로 증가하더니 지난 2일 허난성 당국은 이날 정오 현재 폭우에 따른 사망자가 302명, 실종자는 50명이라고 발표했다. 이마저도 복구 작업이 진행되면서 사망자 숫자는 훨씬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사망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들이 왜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를 밝혀내고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게 교훈으로 삼아야 하지만 이에 대한 당국의 발표나 중국 매체들의 보도는 거의 없다.
기록적인 폭우 속 희생된 중국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 지하철 승객들을 기리는 추모공간에 당국이 가림막을 설치해 비판이 제기됐다고 홍콩 명보가 지난달 28일 보도했다. 연합뉴스대신 중국 텔레비전과 신문, 온라인 매체들은 수마가 쓸고 간 도시에서 인민해방군과 소방관, 경찰 등이 구조·구호활동을 펴는 모습을 비장한 음악과 함께 전한다. 그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로 감동에 겨워 눈물이 나기도 한다. 여기에 전국에서 수재의연금이 답지한다는 미담이 곁들어지면 물난리 대처가 적절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절로 씻겨 나가는 느낌이다.
중국의 이런 모습은 어딘가 익숙하다. 기시감이 느껴진다. 지난해 춘제 당시 코로나19가 우한을 중심으로 확산될 때도 그랬다.
연합뉴스당과 정부의 통제 하에 있는 중국 매체들은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죽어 가는 환자들은 거의 다루지 않은 채 코로나 전장에 투입되는 인민해방군과 전국에서 모여든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만 집중적으로 조명하며 애국심을 고취하는데 바빴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 보면 다행일 수도 있는 게 코로나19는 우한과 중국에서 그치지 않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졌다. 우한에서 코로나가 창궐할 때 납작 엎드렸던 중국은 이제 미군이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뜨렸을 가능성이 있다며 큰소리까지 치고 있다.
하지만 정저우 일대의 물난리는 다른 곳으로 흘러가지 않고 그 쪽 지역에 엄청난 피해를 끼친 채 끝이 났기 때문에 남 탓을 할 수가 없다. 기후 변화에 의한 국지성 강우라는 말로 넘어가기에는 중국인들도 너무 깨어 있다.
이 부분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 넘어갈 경우 인민들이 당장에 들고일어나지는 않겠지만 가슴에 담아두게 되면서 정국 정부로서는 두고두고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 때문인지 중국 정부는 거의 보름이 지나서야 허난성 폭우 피해 조사를 위한 진상조사팀을 꾸려 현지에 내려보냈다. 그러면서 과학적이고 종합적인 조사를 통해 공무원의 직무 유기가 확인되면 법에 따라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중국공산당 100주년 행사서 손 흔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본보기나 분풀이 식으로 중간급 이하 당간부나 공무원들이 징계를 당하고 당에서 쫓겨날 가능성이 있다. 이번에 코로나19가 일부 지역에서 수십 명씩 발생하자 하급 관리들만 징계를 받고 있다.
3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을 정도라면 허난성 당서기나 성장, 정저우시 당서기나 시장 정도는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만 아직 없다. 시진핑 주석은 아니더라도 총리 같은 링다오(지도자)가 위문차 방문할 만도 하지만 베이징 중난하이의 그 누구도 정저주로 달려갔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남의 나라 일이지만 열이 받고 한숨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결론은 우리나라로 향한다. 우리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는 등의 재해가 발생할 경우 다르게 잘 대처할 수 있을까. 우리도 그렇지 못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