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맘껏 울고 힘내자!' 소치올림픽에서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윤재명 총감독(왼쪽)과 최광복 감독.(소치=임종률 기자)
한국 쇼트트랙은 어제까지 소치올림픽에서 세 번 울었습니다. 남자 1500m, 5000m 계주, 여자 500m에서. 메달이 무산되거나 결정되는 과정이 불의의 사고라 더욱 아프고 아쉬웠습니다.
10일(한국 시각) 남자 1500m에서 에이스 신다운(21, 서울시청)이 준결승에서 넘어지더니 13일 계주 5000m에서는 이호석(28, 고양시청)이 다시 미끄러졌습니다. 모두 기대됐던 종목들인데 메달은 따지 못하게 됐습니다.
13일 여자 500m의 박승희(22, 화성시청)는 더욱 아쉬웠습니다. 결승에서 출발이 좋았지만 뒤쪽에 있던 선수들이 벌인 몸싸움의 여파에 밀려 넘어졌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레이스를 펼치려다 마음이 급해 또 미끄러져 넘어지는 모습. 안타깝기 그지 없는 장면들의 연속. 4위로 경기를 마친 박승희는 다행히 억울함이 인정돼 동메달을 따냈지만 사상 첫 여자 500m 금메달 기회를 놓쳤습니다.
박승희는 경기 직후 4년 전 밴쿠버올림픽에 이어 또 다시 눈물을 콸콸 쏟아냈습니다. 인터뷰에서는 "가족들이 생각나서 울었고, 동메달도 감사한 마음이 더 크다"고 했지만 "금메달을 딸 수 있는 기회였는데 너무 아쉽다"고 했습니다.
신다운 역시 충격의 준결승 탈락 이후 펑펑 울었습니다. 그날 잠도 2시간밖에 못 잘 정도로 괴로움이 컸습니다. 마음이 여린 선수라 아픔은 더했을 겁니다. 맏형 이호석도 쓰라리기는 매한가지일 겁니다. 부상으로 하차한 노진규(22, 한체대) 대신 들어와 동생들을 위해 애썼는데... 이호석은 계주 경기 후 분을 참지 못하면서도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남겼습니다.
어디 이들뿐이겠습니까. 4년 동안 선수들과 함께 구슬땀을 흘리며 동고동락해온 지도자들은 오죽하겠습니까. 현장에서 4년 동안의 노력이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순간을 지켜본 애끊는 마음.
최광복 대표팀 감독은 신다운의 탈락 다음 날 훈련에서 "안아주고 펑펑 울었어요. 마음이 짠하죠"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다운이가 좀 참으려고 했지만 울어야죠. 울어야 가슴에 뭐가 쑥 내려가죠"라고 안타까움을 내비쳤습니다.
하지만 최 감독 본인은 절대 울지 않는답니다. "어떻게 울어요. 마음은 그렇지만 저까지 흔들리면 어떻합니까. 기둥인데..."
'승희야, 울지 마' 박승희(오른쪽)는 13일(한국 시각) 끝난 소치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500m 결승에서 값진 동메달을 따냈지만 상대 선수에 밀려 넘어지는 예기치 못한 악재에 금메달 기회를 놓쳤다. 왼쪽 사진은 최광복 감독이 믹스트존에서 인터뷰에 앞서 눈물을 쏟는 박승희를 안고 위로하는 모습.(소치=임종률 기자)
박승희의 값졌지만 아쉬운 동메달 이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 인터뷰에서도 최 감독은 "마음은 아픕니다. 그러나 선수들을 지켜줘야 하는 게 제 할 일입니다. 나머지 경기에 최선을 다해 집중하도록 해야 할 거 같습니다"고 다짐했습니다.
이어 믹스트존으로 들어선 박승희. 벌써부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최 감독은 박승희를 안아주면서 "괜찮아, 잘 했어" 달랬습니다. 한동안 최 감독의 품에서 감정을 정리한 박승희는 인터뷰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윤재명 대표팀 총감독의 마음도 어디 가겠습니까. 윤 감독은 "선수들이 넘어지는 순간 내 가슴도 무너집니다. 피눈물이 나죠"라며 속내를 털어놓습니다. "'죽이네, 살리네' 윽박지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지만 4년 동안 애들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 거든요."
"경기장이 부족해 대관해서 운동하려면 새벽 5시부터입니다. 그러면 매일같이 새벽 4시 반에는 일어나야 합니다. 학교도 가야 하는데 8시간씩 혹독한 훈련, 힘들죠. 또 효자 종목이라 당연히 금메달을 따겠지 라는 부담감. 메달 못 따면 죄인이 되는 현실입니다. 그 어렵게 훈련해온 걸 아는데 한순간 무너진 마음들이 오죽하겠어요. 울어야죠."
쇼트트랙은 아직 남아 있는 경기들이 적지 않습니다. 선수들은 물론 지도자들까지 마음 속에 참아온 눈물을, 안타까움이 아닌 기쁨의 눈물로 속시원히 털어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