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굶기면 몸은 더 많이 탐한다!
<왜, 살이="" 찌는가="">는 미국의 저명한 다이어트-체중 과학자 린다 베이컨이 미 국립보건원의 지원을 받아 수행한 다이어트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쓴 책이다. 78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장기 실험을 마치고 "다이어트는 살찌게 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그 이유는 사람마다 다른 설정체중(set point) 때문. 즉 영양, 호르몬, 혈당, 체지방 등 몸 상태를 가장 이상적으로 반영한 최적의 체중이 있다는 것이다. 모순처럼 들리지만, 뚱뚱한 체중도 어떤 사람에겐 생리학적으로 이상적이며, 아주 비쩍 마른 몸도 사람에 따라 이상적인 체형일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열망하는 날씬한 몸이 모든 이에게 좋을 거라는 통념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우리 몸을 조절하는 체중 메커니즘은 증가나 감소를 막기 위해 매우 부지런하게, 때론 아주 필사적으로 일을 한다. 생리적으로 최적화된 건강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 설정체중을 흔들어대는 주인을 만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굶기 다이어트로 체중이 설정체중 이하로 떨어지면 체중 조절 장치가 작동하기 시작해 섭식을 유도하는 호르몬을 분비해 입맛을 바꾸면서까지 지방을 당기게 만들고, 더 심하게는 칼로리를 잃지 않으려고 방바닥에서 시체놀이만 하게 만들 수도 있다.
게다가 몸이 굶주릴 것에 대비해 설정체중을 더 높게 재설정하면서 지방을 더 많이, 더 많이 저장하라고 몸에 명령을 내린다. 이것이 바로 상습적인 다이어터들이 "물만 먹는데 왜 쪄?"라고 말하는 이유다.
우리의 의지력은 결코 체중 감소에 저항하는 메커니즘을 이길 수 없다. 이런 체중 메커니즘의 효율적 작동을 위해 가장 열심히 일하는 호르몬이 바로 '먹어라' 혹은 '먹지 마' 메시지를 들고 온몸을 돌아다니는 렙틴과 그렐린이다. 이 모든 것이 체중의 교란을 막아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이상적인 체중과 건강한 몸을 유지시키기 위한 일이다.
체중은 엄마 자궁에서 결정된다우리의 체중 메커니즘은 수백만 년에 걸쳐 형성된 아주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이를 '검약 유전자thrifty genotype' 가설로 설명할 수 있다. 이 가설을 이해하면 '단 1g의 칼로리도 놓치지 말라'는 우리 조상들의 유전적 명령을 알 수 있다. 식량이 귀하고, 또 식량을 구하려면 어마어마한 칼로리를 소모해야 했을 과거 환경에서 우리 몸은 가장 알뜰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진화했다. 앞으로 닥칠 기근에 대비해 고열량 지방은 최대한 저장하고, 저장된 지방은 쓰지 않는 방식으로 가장 알뜰하게 보존하며, 가능하면 고열량 음식을 탐하도록 말이다. 이런 유전적 명령에 부합하지 않는 말라깽이들은 인류의 유전자 풀에서 점차 줄거나 사라졌다. 여기서 살아남은 인류가 바로 지금의 우리들이다.
과거의 유전적 성향은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하루 종일이라도 만찬을 즐길 수 있는 환경에서, 그것도 칼로리를 축적하기는 쉬워도 쓸 일은 별로 없는 우리에게 다이어트로 대변되는 몸의 비극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그래서 살을 빼겠다는 다이어트가 당연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수백만 년에 걸쳐 형성된 몸의 시스템을 외면한 채 반기아, 절식, 식이 제한을 앞세우는 다이어트가 성공할 리 만무하다.
체중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는 유전, 그리고 사람마다 다른 신진대사 능력과 생활습관이다. 따라서 몸의 소리를 외면하는 식이 제한 다이어트는 체중 조절 기제를 훼손하여 살을 더 찌우므로 허기를 돌보는 생활습관이 중요하다.
우리 몸은 고장 났다. 이게 모두 조작된 입맛 때문오늘날 우리에겐 음식과 섭식 문제를 둘러싼 시끄러운 얘기들이 너무 많아서 몸의 소리에 제대로 귀 기울일 수가 없다. 우리는 음식이 감정과, 그리고 상황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게 된 문화 속에서 산다. 배고픔과 배부름의 신호를 무시하고 끊임없이 날씬함의 성배를 좇으라고 부추기는, 혹은 생명 유지와는 전혀 무관한 필요들을 채우는 데 음식을 쓰라고 종용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심심해서 먹고, 슬퍼서 먹고, 즐거워서 먹는다. 축하할 일이 생기면 외식을 한다. 연인과 헤어져 슬픔에 잠기면 달콤한 아이스크림으로 슬픔을 녹인다. 누가 아프거나 세상을 떠났을 때도 음식은 우리의 슬픔과 위로를 보여주는 방식이 된다. 이런 것들이 전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몸의 영양적 필요가 아닌 외부 신호에 따라 결정되는 식이 습관은 우리 몸의 허기 및 포만 신호 체계를 무력화하여 결국 체중 조절 기제를 훼손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산업(식품회사와 의료계, 정부당국)이 사람들의 입맛에까지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브로콜리가 좋다는 전문가의 말이 흘러나오면 다음 날 브로콜리 품귀 현상이 빚어지는 코미디 같은 현실 속에서 미디어와 식품업계에 휘둘려 우리는 몸과 미각을 저당 잡히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과 미국은 몸에 대한 집착이 강한 만큼 음식을 몸에 '좋고 나쁨'으로 구분하는 대표적인 나라다. 이는 몸이 원하는 진정한 미각을 잃게 했다. 우리는 '길들여진 미각', '조작된 입맛'으로 음식을 열심히 즐기고 있는 중이다. 이는 생리적으로 이상적이지 않다. 그리고 체중에도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우리에게 ‘배고픔’은 생명을 유지하게끔 만드는 생물학적 프로그래밍의 토대다. 따라서 배고픔과 배부름 내부 신호를 듣고 진정한 미각을 찾는 솔루션이 필요하다.
식품회사, 다이어트 전문가, 의사, 언론의 거짓 메시지에 당하지 말라우리를 이런 유해한 다이어트로 내몬 일등 공신은 '비만'과 '과체중'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비만을 무슨 질병 내지 죽음의 병으로 둔갑시키는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현행 체질량지수에 따른 정상 체중군보다 과체중에 속한 사람들이 실제로 더 오래 살고, 당뇨병, 고혈압, 동맥경화증 같은 성인병 발병 확률도 더 낮다. 과체중, 즉 지방은 오히려 신체 보호 기능도 한다. 이런 사실은 학계에서 오래전에 입증된 사실이지만 외면당하고 있다. 그것은 비만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되레 자기 이익으로 작동하는 다이어트 산업계의 오랜 카르텔 때문이다. 식품업계, 제약회사, 의사, 다이어트 전문가, 언론, 정부가 이런 카르텔에 열심히 동참하고 있다.
불가능에 가까운 마른 몸매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을 수용하지 않고 ‘체중’에 낙인을 찍는 우리 사회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몸에서 희망을 얻으려는 우리들의 결핍과 불안, 그리고 체중으로 인한 자기부정에서 빠져나와 몸을 새롭게 인식하고, 자기 몸에 맞는 과학적인 체중 관리와 건강 솔루션을 찾아야 한다.
자, 이제 어떡할 것인가. 남의 말에 휘둘려 평생을 몸매 감시자로 살 것인가? 내 몸의 주인이 되어 몸과 함께 건강한 삶을 누릴 것인가? 우리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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