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라팍런이 대세?' 지난 1, 2일 '2016 타이어뱅크 KBO 리그' 삼성-두산의 공식 개막 2연전이 열린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는 5개의 홈런이 터졌다. 사진은 1일 공식 개막전 모습.(자료사진=황진환 기자)
'2016 타이어뱅크 KBO 리그' 개막 시리즈가 마무리됐다. 1일 역대 금요일 개막 최다관중 기록(8만5963명)의 뜨거운 야구 열기가 주말을 달궜다.
개막 시리즈 중 특히 관심을 모은 것은 삼성-두산과 넥센-롯데의 경기였다. 올 시즌 첫 선을 보이는 새 구장에서 열리는 개막전이었던 까닭이다.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와 서울 고척스카이돔이다.
두 구장의 경기는 상반됐다. 뜨거운 접전은 매한가지였지만 경기 내용이 달랐다. 라이온즈파크는 시원한 홈런이 개장의 열기를 돋운 반면 고척돔은 큰 것 한방은 없었지만 끝내기 안타 등 접전으로 실내 구장을 달궜다.
막상 뚜껑을 여니 두 구장의 특징이 뚜렷하게 갈린 것이다. 아직 초반이라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홈런과 관련해 두 구장이 반대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잠실이면 이지 플라이" 홈런으로 둔갑?개막 시리즈에서 홈런이 나오지 않은 것은 고척이 유일했다. 3경기가 우천취소된 3일에도 끄덕없이 경기가 열린 고척은 주말 3연전 동안 홈런이 1개도 나오지 않았다.
반면 라이온즈파크는 가장 많은 5개의 홈런이 달구벌을 수놓았다. SK-케이티가 붙은 문학도 5개가 터졌지만 라이온즈파크보다 1경기가 더 많은 3경기였다. 라이온즈파크는 NC-KIA가 격돌한 마산구장과 같이 2경기에서 5개의 아치가 나왔다.
가장 큰 규모의 잠실은 2경기에서 2개의 홈런이 나왔다. 여기에 LG-한화가 연이틀 연장으로 5이닝을 더 치른 점을 감안하면 홈런 빈도는 더 떨어진다고 봐야 한다.
'얼떨떨하네?' 두산 민병헌이 1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과 '2016 타이어뱅크 KBO 리그' 개막전에서 8회 우월 솔로 홈런을 친 뒤 그라운드를 도는 모습.(자료사진=황진환 기자)
라이온즈파크의 장타 효과는 뚜렷했다. 국내 최초의 팔각 그라운드가 가져온 현상이다. 라이온즈파크는 타원형을 이루는 기존 외야 펜스와 달리 각이 져 있다. 특히 좌우 중간이 직선이라 홈플레이트부터 거리가 타원인 타구장보다 짧다.
라이온즈파크는 홈플레이트부터 중앙 담장까지 거리가 122m, 좌우는 99.5m, 담장 높이는 3.2m다. 지난해까지 삼성이 썼던 대구시민구장의 좌우 99m, 중앙 122m, 높이 3.1m와 거의 같다. 그러나 좌, 우중간까지는 107m로 시민구장보다 5m 정도나 짧다.
5m면 외야 뜬공이 될 타구가 넘어갈 수 있는 수치다. 실제로 1일 개막전 8회 나온 민병헌의 우월 홈런은 비거리가 딱 100m였다. 잘 맞긴 했지만 다른 구장이었다면 잡혔거나 2루타가 됐을 타구였다. 민병헌 본인도 "구장 덕을 봤다"고 인정했고, 류중일 삼성 감독은 "잠실이면 쉬운 뜬공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거리도 거리지만 심리적 요인이 더 크다물론 나머지 선수들의 홈런은 비거리 110m 이상이었다. 삼성 이승엽(125m), 최형우(110m)를 비롯해 두산 양의지(120m) 등이다. 2일 날린 민병헌의 홈런도 120m였다. 이 아치들도 라이온즈파크 덕을 봤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심리적인 요인이라는 게 있다. 조금만 치면 넘어갈 것 같은 생각이 자신감으로 연결될 수 있다. 특히 두 팀 선수들은 경기 전 타격 훈련 동안 심심찮게 홈런 타구를 날려댔다. 두산 민병헌은 "확실히 좌, 우중간까지가 짧다"면서 "여기가 홈런 공장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태형 두산 감독도 "외야에 나가서 보면 정말 짧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거들었다.
'정말 좀 짧은 듯?' 1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두산의 '2016 타이어뱅크 KBO 리그' 공식 개막전 모습.(자료사진=황진환 기자)
류중일 감독은 "두 팀이 훈련에서 파울까지 담장을 넘겨 잃어버리는 공이 200~300개 된다는데 여기는 더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이어 "너무 많이 넘어가면 내년에 담장을 더 올리든지 해야 할 것 같다"며 은근한 걱정까지 드러냈다.
이른바 '목동런'에 이어 '라팍런' 효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넥센이 지난해까지 홈으로 썼던 목동구장은 팬들 사이에서 '목동 탁구장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홈런이 많았다. 중앙 펜스까지 118m, 좌우 98m인 목동은 비교적 규모가 작은 데다 바람까지 외야로 부는 경우가 많았다.
여기에 외야 관중석이 없어 시야가 트여 상대적으로 담장까지 가까워 보이는 효과도 있었다. 잠실을 홈으로 쓰는 한 선수는 "정말 목동은 치면 넘어갈 것 같은 느낌"이라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박병호(미네소타)가 4년 연속 홈런왕에 오른 데는 본인의 타고난 힘과 노력, 실력도 있었으되 목동을 홈으로 쓰는 이점도 부인하기 어려운 요인이었다.
▲박병호 떠난 무주공산 홈런왕은 삼성?반면 고척에서는 이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고척돔은 홈에서 중앙 담장까지가 122m, 좌우까지는 99m로 라이온즈파크와 같다. 그러나 담장 높이는 3.8m로 60cm가 더 높다. 홈런 여부가 갈릴 만한 높이다.
더욱이 고척돔은 실내 구장이라는 특성상 상대적으로 담장까지가 더 멀어보인다는 게 적잖은 선수들의 평가다. 다른 구장과 달리 바람의 저항이 없다지만 심리적인 부담이 있는 것이다.
'왕년의 홈런왕, 올해 탈환?' 지난 2일 개막 두 번째인 두산과 홈 경기에서 나란히 홈런포를 쏘아올린 삼성 최형우(왼쪽)와 이승엽.(자료사진=삼성)
그렇다면 올해 홈런왕은 같은 조건이라면 삼성에서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박병호가 빠진 가운데 지난해 홈런 3위(47개) 에릭 테임즈(NC)가 일단 강력한 후보다. 그러나 라이온즈파크를 홈으로 쓰는 삼성 선수들도 충분히 대권에 도전할 만하다.
홈런왕 출신의 최형우와 이승엽 등이다. 최형우는 2011년 30홈런으로 타이틀을 맛본 바 있고, 2013년 2위(29개)와 최근 2년 연속 5위(31개, 33개)에 오를 만큼 꾸준하다. 올 시즌 뒤 FA(자유계약선수)가 되는 동기 부여와 '라팍런'을 감안하면 5년 만의 홈런왕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여기에 홈런의 살아있는 전설 이승엽도 올해는 컨디션이 좋다. 2일 삼성 선수로 라이온즈파크 1호 홈런을 날린 이승엽은 1일 개막전에서 새 구장 1호 타점 등 2경기 7타수 3안타를 올렸다. 이승엽은 "(일본에서) 복귀하고 5년째인데 가장 좋은 개막전 페이스"라면서 올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로 지난해 홈런 상위 3명을 빼면 나머지 선수들은 비슷했다. 53개를 때린 박병호와 48개를 친 야마이코 나바로(지바 롯데)는 모두 한국을 떠났다. 남은 1명이 테임즈인데 지난해 MVP와 최초의 40홈런-40도루를 올린 만큼 상대 집중 견제가 예상된다.
홈런 4위는 35개의 강민호(롯데)였다. 그 뒤를 각각 2개와 4개 차로 최형우와 최준석(롯데)가 쫓았다. 30홈런 이상 선수는 6명이었다. 라이온즈파크에서 72경기를 치르는 삼성 거포들이 상위권에 오를 가능성이 적잖다.
개막 시리즈에서 실체를 드러낸 라팍런 효과. 과연 올 시즌 홈런왕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