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체질?' 국군체육부대 소속 이상수가 22일 제 71회 전국남녀 종합선수권대회 남자 단체전 1회전 승리를 이끈 뒤 파이팅 포즈를 취하고 있다.(대구=노컷뉴스)
현재 남자 탁구 대표팀 에이스는 이상수(27 · 국군체육부대)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비로소 기량이 활짝 폈다. 올해 세계 최강 중국의 톱랭커들을 잇따라 꺾으며 한국 탁구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이상수가 올해 이룬 업적은 간단치 않다. 지난 6월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남자 단식 선수로는 10년 만에 메달(동)을 목에 걸었다. 2007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대회 때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의 동메달 이후 처음이었다.
유 위원 이후 이렇다 할 재목이 나오지 않았던 한국 남자 탁구에도 서광이 비쳤다. 세계선수권에서 1991년 김택수(동), 2003년 주세혁(은), 2005년 오상은(동), 2007년 유승민(동)에 이어 메달 계보를 이었다.
특히 이상수는 6월 16강전에서 당시 세계 랭킹 4위이자 런던올림픽 챔피언 장지커(중국)를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세트 스코어 4-1의 완승이었다. 앞서 네 번의 패배 끝에 얻은 승리였다.
지난달 독일 마그데부르크에서 열린 '2017 독일오픈' 8강에서는 중국의 에이스 쉬신까지 4-0으로 제압했다. 비록 최종 3위로 금메달은 따내지 못했지만 이상수의 존재감을 알리기에는 충분했다. 이후 후배 정영식(25 · 미래에셋대우)과 복식 우승을 합작하기도 했다.
이런 활약으로 이상수는 세계 랭킹이 10위까지 올랐다. 현재 한국 남자 선수 중 가장 높은 순위다. 여기에 개인 통산으로도 최고 순위다. 그야말로 '이상수 전성시대'다.
지난 6월 독일 세계선수권대회 당시 이상수의 경기 모습.(사진=대한탁구협회)
최근 상승세에 대해 본인의 생각은 어떨까. 22일 대구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7 신한금융 한국탁구챔피언십 및 제71회 전국남녀종합선수권대회' 남자 단체전 1회전을 승리로 이끈 이상수를 만났다.
올해 성적에 대해 이상수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면서도 "기량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한 단계 더 자란 것 같다"고 자평했다. 이어 "무엇보다 기복이 없어지면서 안정감을 찾은 게 크다"고 강조했다.
사실 그동안 이상수는 들쭉날쭉한 경기력을 지적받았다. 힘이 넘치는 드라이브 등 이상수의 기술이 걸리는 날이면 중국 선수들도 두렵지 않지만 기술이 먹히지 않은 날도 많았다. 박창익 대한탁구협회 전무는 "때문에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잦았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올해 이상수는 달라졌다. 고비를 이겨내는 힘이 붙었고, 그러면서 필살기의 성공 확률도 높아졌다. 이상수는 "예전에는 당일 컨디션이 100과 0, 극과 극이었다면 올해는 안 좋은 날도 50~60의 경기력은 보인다"면서 "그러면서 지지 않고 이기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전무는 "예전에는 강으로만 갔다면 이제는 부드러움을 찾았다"고 분석했다.
계기가 된 것은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과 군 입대다. 리우올림픽에서 이상수는 제 실력을 보이지 못했다. 잦은 실수로 1988년 이후 한국 탁구의 첫 노 메달이라는 최악의 결과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후배 정영식이 에이스로 활약한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탁구 남자 단체전 독일과 동메달 결정전에 출전한 정영식(왼쪽)과 이상수가 아쉬워 하는 모습.(사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이상수는 좌절하지 않았다. 특유의 긍정적인 생각으로 다시 일어섰다. 이상수는 "메달을 따지 못했기에 어떻게 보면 실패라고 할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내가 부진했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할 결과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좌절할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 그런 생각은 없었고, 다시 해보자고 다짐했다"고 강조했다.
리우올림픽의 실패로 이상수는 올해 초 입대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게 전화위복이 됐다. 군 생활이 의외로 맞았다. 이상수는 "사실 선수 이전에 군인이기 때문에 제식과 내무 생활을 해야 한다"면서 "어떻게 보면 긴장된 상황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긴장된 생활을 하다 보니 익숙해져서 경기 때 오히려 집중력이 생기더라"고 귀띔했다.
보통 긴장을 하면 몸이 경직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상수는 다르다는 것이다. "입대 전에는 어쩌면 편하게 생활을 하다 갑자기 긴장하는 패턴이었다"면서 이상수는 "그러나 군에서는 항상 긴장해서 몸에 익었다"는 설명이다. 이어 "전과 달리 경기 때 수를 생각하고 기술을 떠올리게 되더라"면서 "또 전에는 실점할 상황에서 어려운 공을 받아내게 됐다"고 덧붙였다.
어떻게 보면 이상수는 리우올림픽의 노 메달로 군에 입대해야 했다. 병역 혜택을 받지 못했고, 이 현실에 좌절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상수는 긍정의 힘으로 현실을 받아들였고, 그것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흡수해 발전을 이뤄냈다.
2013년 부산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혼합 복식 우승을 차지한 박영숙(왼쪽)-이상수.(사진=대한탁구협회)
사실 한국 탁구는 주세혁, 오상은, 유승민 등 2012년 런던올림픽 단체전 은메달 멤버 이후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남자 대표팀 사령탑이었던 유남규 삼성생명 여자팀 감독은 "그 세대 이후 스타가 나오지 않는다"고 했고, 현정화 렛츠런파크 감독도 "예전에는 한국 1등이 세계 1등과도 대등했는데 지금은 몇 수 아래"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상수가 새로운 기둥으로 희망을 키우고 있다. 언젠가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때를 기다린다. 이상수는 "중국의 기량이 한 수 위인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그러나 이제는 넘지 못할 벽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10번 싸워 1번 이기더라도 그게 언제가 될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리우올림픽의 실패와 상무 입대 이후 대표팀의 버팀목으로 성장한 이상수. "그렇다면 말뚝을 박는 건 어떠냐"는 농담에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이상수는 "내년 제대하면 결혼을 할 생각"이라고 답을 대신했다.
이상수는 최고의 혼합 복식 호흡을 뽐냈던 박영숙(29 · 렛츠런파크)과 교제 중이다. 남자는 역시 군대에 가야 비로소 진정한 남자가 되고, 이제 이상수는 한국 탁구는 물론 한 가정의 어엿한 기둥이 될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