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 스틸컷(사진=KBS 제공)
2020년 새해가 밝으면서 이 해를 시대 배경으로 한 토종 공상과학(SF) 애니메이션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1989)가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앞서 2019년은 SF 걸작으로 꼽히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의 배경이 된 해였다.
물론 당연한 이야기로 여겨질 수도 있으나, 우리가 현실에서 맞이한 2020년과 이들 SF물이 그린 이맘때 사이 간극은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 사람들은 왜 이러한 미래상을 기대했을까라는 물음을 복기해 본다면, 지금 우리에게도 유의미한 가치를 길어 올릴 수 있을 것이다.
SF 평론가로 이름난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는 2일 "'원더키디'와 '블레이드 러너'의 공통점을 꼽는다면 우주 개발이 상당히 진행됐다는 전제가 깔렸다는 것"이라며 진단을 이어갔다.
"'블레이드 러너'의 경우 돈과 권력을 쥔 사람들은 모두 황폐한 지구를 떠나 우주 식민지에 간 것으로 묘사됐다. '원더키디' 역시 비슷한 문제의식을 우주 배경으로 풀어낸 모험물이다. 그 시절 사람들이 2020년대를 전망했던 것과 현실을 비교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우주 개발이 얼마나 진행됐는가에 있다. 기대치와 현실 사이 커다란 간극을 새삼 확인한 셈이다."
그는 "20세기에는 아폴로 달 착륙 이후 스페이스 셔틀, 우주 정거장 개발 등이 계속 진행되면서 2020년쯤이면 민간인들도 우주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며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고 부연했다.
앞에서 언급한 SF물이 만들어진 1980년대는 냉전으로 표현되는 미국과 소련 사이 치열한 체제 경쟁이 벌어지던 때다. 그 와중에 우주 개발은 양 진영이 체제 우월성을 선전하는 효과적인 도구 역할을 했다.
박 대표는 "지난 세기에는 국가 주도로 각 정부 차원에서 우주 개발을 진행해 왔다면, 2020년대는 '뉴 스페이스'(New Space)가 태동하는 시기로서 민간 기업들 중심으로 우주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주 개발은 첨단기술이 결합된 거대 장치 산업이다. 국가 주도 우주 개발은 체제 경쟁 측면이 강했기에 그것이 가능했다. 경제성이나 이윤이 당장 발생하는가를 따지기보다는, '우리 우주 개발은 이 정도 수준까지 왔다'는 우월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 흐름이 일반 국민은 물론 SF 작가들에게도 반영될 수밖에 없었고, 2020년쯤 되면 우주 개발이 상당히 진행돼 있을 것이라는 전제 위에서 관련 작품들을 만든 것이다."
◇ "과학기술과 윤리는 쌍둥이…SF 가장 큰 가치는 반면교사"
영화 '블레이드 러너' 스틸컷(사진=해리슨앤컴퍼니 제공)
그는 "현실에서는 미국이 압도적으로 우주 개발에서 앞서 나갔다"며 "물론 러시아, 유럽, 중국, 일본 등도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기는 했지만, 유인 우주 개발은 기대치만큼 진전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특히 "2020년이 된 지금은 민간 기업들이 우주 자원 개발, 우주 관광 등으로 영리를 창출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보고 우주 개발에 뛰어드는 시기"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결국 우리가 보고 자란 SF물의 배경이 됐던 2020년과 현실의 그것을 대비해 보면, 우리가 우주 개발에 대해 가졌던 기대와 전망이 이제는 다른 트랙을 타고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대치보다 늦어지기는 했으나, 2020년 현재 인류는 어느 때보다 우주 개발에 관심을 갖고 투자하려는 참이다. 화성에 사람을 보내겠다는 계획이 속속 발표되고, 우리나라 역시 자체 발사체 등을 개발해 달에 탐사선을 보내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박 대표는 "우리는 늘 새해가 되면 SF로 전망했던 것들이 현실에서 얼마나, 어떻게 구현됐는가를 뒤돌아보지만, 기대한 만큼의 과학기술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실망하거나 원천 기술 개발을 게을리했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다"고 역설했다.
"인류는 늘 SF에서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어 현실의 과학기술에 반영해 왔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과학 기술이 우리네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데 있다. 대개 SF물에서는 미래 사회를 긍정적으로 다루기보다는 부정적 디스토피아로 그리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단순한 비관이 아니라, '새로운 과학 기술을 잘못 쓰면 이렇게 될 수 있으니 조심하자'는 반면교사 측면이 강하다."
그는 "과학기술은 언제나 그로부터 촉발되는 윤리 문제와 쌍둥이로 태어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SF물에서 다루는 미래 사회의 여러 부정적이고 비관적이며 암울한 모습들은 우리가 미리 해석하고 성찰해야 할 과제"라며 "그러한 미래가 실제로 오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는 데 SF의 가장 중요한 교훈이 자리잡고 있다"고 강조했다.